“우리가 특별한 존재 되지 않는 날을 기다리죠”

[인터뷰]공연 수어 통역사 김홍남·최황순
국립극단 온라인극장 ‘스카팽’ 배리어프리 버전
속사포 대사·노래·랩 비트 살린 수어로 눈길
미세한 차이로 의미·화자 바뀌는 수어 동작
“존재 드러나지 않는 소통의 도구로 쓰이길”

수어 통역사 김홍남(왼쪽), 최황순씨가 연극 ‘스카팽’의 대표 대사인 ‘도대체 군함엔 왜 탔어’를 수어로 표현하고 있다./사진=성형주기자

국립극단이 그간 무대에 올린 대표작을 영상화해 선보이는 ‘온라인 극장’ 화면에는 쏟아지는 배우들의 말과 노래를 일사불란한 동작과 변화무쌍한 표정으로 전달하는 두 사람이 등장한다. 장애인 관객들도 무대 영상을 즐길 수 있도록 극단 측이 제공하는 일부 작품의 수화언어(수어) 통역 버전에서 수어 통역을 하는 20년차 베테랑 김홍남·최황순 씨다. 현재 상영 중인 온라인 극장의 연극 ‘스카팽’과 최근 막 내린 ‘로드킬 인 더 씨어터’에서 수어 통역을 담당한 두 사람은 극중 현란한 랩의 리듬감까지 고스란히 전달하며 ‘배우 못지않은 존재감’을 발휘한다. “농인들이 문화 예술을 ‘잘 향유할 수 있게’ 하는 소통의 도구”를 자처하는 두 사람이 합을 맞춘 공연만 20편이 넘는다.


공연 팬들 사이에서 회자될 만큼 주목을 받고 있지만, 최근 명동예술극장에서 서울경제와 만난 두 사람은 정작 이러한 칭찬에 손사래를 쳤다. “저희는 언어의 도구로서 쓰이는 존재일 뿐이에요. 우리가 최대한 드러나지 않게 극을 전달해야 하는데 그 수위를 찾아가는 일이 늘 어렵죠.”(김)


공연의 수어 통역은 단순히 글과 말을 동작으로 옮기는 작업이 아니다. 두 사람은 배우들의 연습 과정에 늘 함께 하며 상황과 장면, 캐릭터의 감정의 맥락을 파악하는 데 공을 들인다. 최씨는 “대본상 텍스트에 쓰인 내용과 현장에서 대화로 진행되는 이야기는 전혀 다르다”며 “대본을 보고 전체 구조를 확인한 뒤 배우들과 틈틈이 소통하며 디테일한 번역에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수어는 청인의 언어 체계와 다른 부분이 많아 무대 위 배우가 어순을 바꿔 말하는 ‘티 안 나는 실수’를 해도 내용 전달에 큰 영향을 받는다. 단순한 장면 묘사에 있어서도 복잡하고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새가 창문에 부딪혀서 떨어진다’는 장면만 해도 새가 날아오는 방향, 창문의 위치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가 되어버리고 청자와 화자도 바뀌어 버린다”(김)는 것이다. ‘배우의 실수와 상관없이 대본에 있는 대로 수어를 하면 되지 않느냐’는 생각이 들 법하지만, 이 같은 물음은 우문이다. 두 사람은 “우린 배우가 아니고 통역사”라며 “무대 위의 배우가 잘못 이야기했는데, 농인은 왜 그 배우의 대사가 아닌 대본 상의 말을 전달받아야 하느냐”고 되물었다.


끊임없는 연구로 새로운 표현을 계속 만들어내야 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김씨는 “예컨대 ‘걷다’라는 언어를 바탕으로 ‘취해서 걷다’, ‘외발로 걷다’ 등 이미지를 실현할 수 있어야 한다”며 “이 감각이 없으면 수어 통역이 어렵다”고 말했다. 동음이의어가 없는 수어의 특성상 대사에 언어유희가 등장할 때는 이를 수어 식의 농담으로 대체하는 센스도 필요하다. 최씨는 “유행어나 동음이의어를 활용한 언어유희는 직관적인 수어로 통역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며 “통역사에 따라 전혀 다른 수어로 그 느낌을 살려 표현해야 한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통역사가 드러나지 않게 전달한다.’ 통역의 이 ‘기본 원칙’을 지키기는 늘 고민하며 업무에 임하는 두 사람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말과 동작, 공간이 존재하는 공연 수어 통역은 더욱 그렇다. 최씨는 “지금은 공연에서의 수어 통역이 신기해서 우리의 존재가 눈에 띄는 것”이라며 “신기하다는 것은 보편화되지 않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우리가 이런 고민을 하지 않게 될 때 더 많은 농인들이 공연을 편하게 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립극단 온라인 극장에서 선보이는 연극 ‘스카팽’의 수어 통역 버전/사진=국립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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