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증시에는 6,000개가 넘는 회사가 있는데 ‘서학개미’들을 보면 모두 애플이나 테슬라 등 똑같은 종목만 사고 있죠. 이런 ‘한국식 종목 투자’로는 미국 증시에서 계속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데이비드 리 미국 테일러투자자문그룹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최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모건스탠리와 메릴린치 등 유수의 투자은행을 거치며 23년간 미국 증시를 통해 고객들의 자산을 관리해온 ‘미국 주식’ 전문가다. 약 1년 전부터 미국 실리콘밸리 소재 미디어 그룹 ‘더밀크’의 유튜브 채널 등을 통해 미국 현지 시황과 기업 분석, 투자 정보 등을 전달하는 ‘미국 형님’으로 유명세를 탔다.

미국 사정에는 누구보다 해박한 그는 최근 한국의 서학개미 열풍이 반갑다면서도 투자 행태에 대해서는 조금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리 대표는 “서학개미들을 보면 한국 주식에 투자할 때처럼 ‘단타’하는 습관을 못 버리는데 미국은 굉장히 안정돼 있는 사회이고 증시 역시 마찬가지”라며 “변동성이 있어도 장기적으로 투자하게 되면 미국 주식은 웬만하면 오르고 유망한 주식이라면 더욱 그렇다”고 조언했다. 종목 중심의 투자는 그가 가장 걱정하는 부분이다. 그는 “개인적으로 미국 주식 투자의 몇 가지 원칙을 세우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종목으로 어프로치하게 되면 백번 실패한다는 것”이라며 “특히 소수 종목에 올인하는 식으로 투자한다는 건 내 집을 팔지는 않으면서도 집값이 오르면 좋아하는, 그런 실속 없는 상황을 반복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종목·단타를 대체할 투자법으로 포트폴리오, 장기 투자를 강조했다. 리 대표는 “쉽게 말해 다양한 기업군을 발굴해 계좌에 넣는 것이 중요한데 듬직한 가치주(리스크가 작고 보상이 작은) 중심으로 짜되 자신의 투자 목적과 감당할 수 있는 리스크의 수준에 맞춰 성장주(리스크가 크고 보상도 큰) 비중을 가져가기를 권한다”며 “변동성은 언제든지 올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고 최적의 타이밍을 찾기보다 중장기적인 성장을 볼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내년 증시를 대비해 포트폴리오에 담을 만한 기업·산업군은 무엇일까. 그는 우선 금융·보험 산업을 주목했다. 리 대표는 “4차 산업혁명을 구현해내는 과정에서 파이낸셜 부문이 강해지고 있는 데다 인플레이션으로 금리 인상도 예고돼 은행주의 수혜가 예상된다”며 “또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상황에서 미국에서 보험료를 깎아줬는데 경기가 재개되면 보험료가 상승해 보험사들의 실적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암호화폐 등 가상자산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조 바이든 미국 정부가 코인베이스 등 암호화폐거래소를 합법화하면서 기관들의 포트폴리오 비중이 3개월 전 2%에서 지금은 30%가 넘었다”며 “이제 웬만한 기관들이 코인베이스를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암호화폐는 유망 자산으로 자리매김한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메타버스에 대해서는 아직 크게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메타버스가 대단한 기술인 것처럼 얘기되지만 사실 다 나온 이야기”라며 “한국 증시는 상황을 자꾸 트렌디한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 같은데 미국 증시에서는 결국 퍼포먼스가 큰 기업들의 주가가 오른다. 향후 좋은 실적을 낼 기업들을 고르는 것이 관건이지 메타버스 등 테마에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리 대표는 내년에도 신흥국보다는 미국 등 선진국 증시가 유망할 것으로 전망한다며 지금이라도 관심 갖기를 권했다. 그는 “원래 선진국은 신흥국(한국) 대비 위험이 작은 만큼 리턴도 작었지만 최근 산업구조가 4차 산업 중심으로 재편되고 부양책 등이 나오며 (선진국은) 리턴조차 큰 나라가 됐다”며 “글로벌 투자 자금이 미국으로 돌아오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라고 했다. 이어 “특히 미국 증시는 제로섬게임(이득과 손실의 합이 0이 되는 게임)이 아니다. 시장을 제대로 이해하고 몇 가지 원칙을 지킨다면 모든 사람이 돈을 벌 수 있는 시장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며 자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