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왜 후보 옆에서 자기가 튀는 옷을 입고 서있습니까”
“철저하게 참모들은 뒤로 숨어야하는데 후보 옆에서 유권자와 셀카를 찍는 의원들이 한 둘이 아닙니다”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가 출범한지 보름여가 지난 뒤 민주당 안팎에서 터져나오는 이야기들입니다. 쉽게 말해 이재명 후보 옆에서 ‘광팔이’참모들이 너무 많다는 겁니다.
보다 못한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이 입을 열었습니다. 17일 ‘영입인재·비례대표 의원 모임’간담회에 참석한 양 전 원장은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는 이성복 시인의 시 '그날'의 대목을 언급하며 “대선을 코 앞에 두고 위기감이나 승리에 대한 절박함 절실함이 안 느껴진다. 게다가 선대위도 희한한 구조”라며 민주당을 호되게 질책했습니다.
무엇보다 양 전 원장의 발언 가운데 “책임 있는 자리 맡은 분들이 벌써 마음 속으로 다음 대선, 다음 대표나 원내대표, 광역 단체장 자리를 계산에 두고 일하는 것, 도대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탄식이 나온다”고 쏘아붙였습니다. 여당 출입 기자들이 선대위 출범 전부터 우려했던 바를 양 전 원장이 현역 의원들 앞에서 정확하게 지적한 셈입니다.
일각에서는 “재집권 못해도 180석 거대 여당 임기는 3년이나 남았다. 의회 권력은 민주당이 쥐고 있다”라는 말도 나옵니다. 솔직히 정권재창출의 의지보다 다음 당권, 다음 지방선거에 이번 대선은 거쳐가는 ‘자기정치’의 수순밟기라는 사고에 빠져있는 현역의원을 만나기가 어렵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실제 내년 경기지사 선거의 유리한 위치선점을 위해 이재명 후보 경선캠프 자체를 자기 지역구 중심으로 운영하려 했던 당내 인사가 있는 가 하면, 지금도 후보 곁에서 내년 원내대표 선거운동에 혈안이 돼 있는 의원도 있습니다. 송영길 대표를 둘러싸고도 차차기 대선 후보가 되기 위해 당대표를 연임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주변에서 흘러나오는 것도 여당의 어수선함을 보여주는 예들입니다. 111일 남은 대선을 앞두고 ‘염불보다 잿밥에 눈이 멀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운지 자문해 볼 일입니다.
오죽하면 오랫동안 이 후보 곁을 지킨 참모는 “이재명 혼자 뛰고 혼자 싸우고 있다”는 말까지 내놓을까 싶습니다.
이 후보를 둘러싸고 아직도 진행중인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이 대표적입니다. 지난달 송영길 대표는 ‘당지도부-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 상견례’를 가진 자리에서 “당내 경선이 되다 보니 제대로 대응하기가 좀 부족했지만 당내에 바로 대장동과 관련된 TF, 국민의힘 토건 세력 비리에 대한 대책위원회를 구성해서 대응해 나가겠다”며 “얼마나 국민의힘에 의해 왜곡됐고, 잘못된 일부 언론에 의해 왜곡됐는지 하나하나 밝혀내겠다”고 호언장담했습니다. 이후 TF활동 한달 여 동안 대장동 의혹 프레임을 바꿀만 한 결정적 단서가 있었는지 묻고 싶습니다.
한달여 만에 TF를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일가 가족비리 검증특위로 확대 개편하겠다고 밝혔지만 성과에 기대를 거는 건 민주당 내부에도 없어 보입니다. 이 후보가 두 차례 국정감사에 직접 출석해 야당의 질의에 조목조목 답변하며 정면돌파를 했던 게 그나마 가장 효과적인 대응이었습니다. 송 대표는 이 마저도 만류했었습니다.
정책 측면의 지원도 매끄럽지 않았습니다. 이 후보가 공언하고 있는 전국민재난지원금은 변죽만 울리는 모습입니다. 기획재정부를 겨냥해 집권당이 국정조사까지 압박하고 있지만 기재부는 완강하게 버티고 있습니다. 올해 걷을 세수를 내년으로 미뤄 재원을 교묘하게 조달하는 방식의 ‘납세유예’도 ‘이재명스럽지는 않다’는 반응이 과거 캠프인사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전형적으로 청와대 하명을 받아 공무원식으로 일을 처리하는 집권당의 무거운 모습”이라는 비판입니다.
급기야 이 후보가 지난 15일 선대위 회의에서 "제가 느끼기로는 기민함이 좀 부족하지 않느냐. 해야 될 일들에 대해서 좀 더 민감하고 신속하게 반응해 작은 결과라도 만들어야 한다”고 불만을 표출했습니다. 직전날 밤에는 대변인단 텔레그램 대화방에서 신속한 언론 대응을 요구하는 글을 이 후보가 역시 직접 올려 답답함을 토로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선대위 개편론부터 별동대 구성 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조직을 바꾸면 효과는 있을까요. 최병천 민주연구원 부원장은 최근 SNS에 “이 후보는 장점은 살리지 못하고 단점을 극대화하는 선거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선대위 조직 개편이나 별동대 구성도 이 후보의 장점을 살리지 못하는 조직이라면 별다른 효과를 낼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럼 이 후보의 장점은 무엇일까요. 잦은 스캔들과 말 실수와 파란 만장한 개인사에서 오는 비호감도를 극복하고 집권여당 대선후보까지 오를 수 있었던 장점. 반대진영에서 공격하는 ‘포퓰리스트’라는 이유만으로 그 자리 오르기엔 한계가 있습니다. 돈만 풀었다고 지지를 얻을 수는 없습니다. 최근의 전국민재난지원금을 국민들이 크게 반기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입니다. 이 후보가 스스로 지칭하듯 ‘변방의 장수’가 중원 장악에 나설 수 있었던 진짜 장점은 ‘시스템 실행력’입니다.
대통령학 권위자인 함성득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는 최근 서울경제와의 통화에서 “적폐청산은 모든 정부에서 시스템에 따라 진행됐지만 현 정부에서는 사람을 통해 사람을 청산하려 했다는 차이점이 있다. 그러다 청산 수행을 하던 사람에게 발등이 찍힌 형국”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면서 김영삼 정부의 금융실명제, 노무현 정부의 과거사진상위원회 같은 제도와 기구를 사례로 설명했습니다. 윤석열 후보에게 쏠리는 지지는 매끄럽지 못한 적폐청산으로 도리어 적폐가 돼버린 현 정부를 심판할 수 있는 ‘칼잡이’가 필요해서라는 이야기도 덧붙였습니다. 다만 함 교수는 “국민들이 사람을 통해 사람을 청산하려는 데 피로감이 크다”며 “시스템으로 관료를 장악하고 성과를 올린 이 후보의 경쟁력을 무시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공룡민주당이 관료화됐다는 지적은 지난해부터 꾸준히 지적됐습니다. 이번 당 안팎의 반발만 키운 전국민재난지원금의 재원조달 방식으로 내놓은 ‘납세유예’아이디어 역시 기재부 출신 당내 인사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원팀’에 매달려 이 후보의 최대 장점을 잃어버려서는 안됩니다. 관료를 제압하고 시스템적인 적폐청산을 민주당 내부에서부터 실행해야 합니다.
국민이 기대하는 건 ‘이재명의 개혁’이 당에서부터 이뤄지는 모습일 수 있습니다. ‘파란’색 점퍼를 벗는다고 차별화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민주당 적폐를 시스템적으로 해소하는 이재명식 차별화가 진짜 ‘파란’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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