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억이요? 저랑은 상관없는 돈이라고 생각했죠. ‘은퇴 전 통산 상금이 그 정도만 돼도 정말 좋겠다’ 이런 느낌이었는데….”
‘역대급’ 성적으로 올해 국내 여자 골프 1인자로 우뚝 선 박민지(23·NH투자증권)를 지난 17일 서울 마포구의 한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그가 올 시즌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서 번 상금은 약 15억 2,100만 원. 2016시즌 박성현의 약 13억 3,300만 원을 훌쩍 넘어 역대 한 시즌 최다 상금 기록을 썼다. 다승왕(6승)과 대상(MVP)까지 3관왕을 차지하면서 연말 시상식에서도 주인공 대접을 받을 박민지는 “이 상황이 다 꿈같다”며 배시시 웃었다.
구름 위를 달린 한 시즌이었지만 돌아보면 어느 때보다 힘든 시간도 있었다. 박민지는 “계속 잘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컷 탈락을 하고 나면 무척 힘들었다. ‘왜 이렇게 퍼트가 안 들어갈까’ 하며 우는 날도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박민지는 전반기에 6승을 몰아쳤다. 첫 11개 대회에서 6승이니 승률이 무려 54%였다. 후반기에는 조금 주춤하기는 했지만 준우승과 3위를 두 번씩 하면서 무너지지 않았다. 후반기에 번 약 3억 8,800만 원으로도 올 시즌 상금 순위 19위에 오를 수 있을 정도다. 박민지는 “전반기에 워낙 잘 풀렸다 보니 주변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생각에 자꾸 신경 쓰였다. 컷 탈락이 크게 다뤄지는 것도 부담이었다”며 “하지만 전반기 성적이 있었기에 잘했을 때 어떤 느낌으로 했는지 그때 생각을 끄집어내면서 후반기에도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
사흘 동안 침대에 누워만 있을 정도로 허리가 아팠던 박민지는 9월 2개 대회를 쉬고 나선 복귀전에서 컷 탈락하며 슬럼프 조짐을 보였는데 곧바로 준우승·3위 성적으로 일어선 끝에 대상 타이틀까지 거머쥐었다.
컷 탈락 바로 다음 대회에서 우승 아니면 준우승이 많은 데 대해서는 “못할 때 동기부여가 강하게 된다”고 했다. “계속 잘되면 ‘라면 한 번 먹어볼까, 탄산음료도 괜찮겠지?’ 이런 생각이 생겨나는데 잘 안 되면 ‘다시 잘해야지’ 외에는 다른 생각이 안 나요. 잘했을 때의 흐름을 유지하고 의지를 이어가는 게 내년 숙제입니다.”
올해 박민지의 키워드 중 하나는 ‘폭포수’였다. 시즌 4승을 해낸 뒤 기자회견에서 “폭포수 쏟아지듯, 미친 듯이 우승을 많이 하고 싶다”고 강렬한 포부를 밝혀 화제가 됐다. 폭포수는 어떻게 떠올렸던 것일까. 박민지는 “엄청 거대하고 웅장하게 한꺼번에 많이 쏟아지니까 폭포에 비유했다. 매년 1승씩만 했다 보니 더 많이, 계속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저도 모르게 그런 말이 나왔다”며 웃었다.
곧 친구들과 부산 여행, 친언니와 제주 여행을 떠날 거라는 박민지는 오는 12월 중순부터 또 다른 폭포를 꿈꾸며 물줄기를 모을 계획이다. 국내에서 강도 높은 체력 훈련 위주로 새 시즌을 준비한다. 국내에서만 뛰면서도 세계 랭킹을 21위까지 끌어올린 그는 “미국 본토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대회에는 한번도 나가본 적 없다. (초청 출전 기회가 많은) 내년에는 한 번 이상은 꼭 나가보고 싶다”고 했다.
박민지는 2017년 데뷔 첫 우승 뒤 “골프 하면 바로 떠오르는 선수가 되고 싶다”는 말을 했다. 그 목표에 몇 %쯤 도달했을까. “아직도 90%는 남은 것 같아요. 골프 선수 하면 한 50번째 정도로 떠오르는 선수 아닐까요. 5년간 통산 10승 했으니 이제 다시 1을 보고 뛰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