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근면·순박·신중(誠勤樸愼)’ 대만 위안둥그룹(遠東集團)이 추구하는 기업가 정신이다. 이 그룹의 설립자는 쉬유상이다. 그는 1937년 중국 상하이에서 친구 두 명과 함께 조그마한 식품업체를 창업했다. 장사가 잘 되자 쉬유상은 방직공장을 짓는 등 사업을 확장했다. 하지만 중국을 공산당이 점령하자 본토에서 사업하기 힘들다고 판단한 그는 1949년 대만으로 이주했다.
대만에서도 쉬유상은 뛰어난 수완을 발휘해 석유화학·시멘트·유통·금융·건설·운송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했다. 현재 계열사가 100여 개에 달하고 연 매출은 2018년 기준 7,200억 대만달러(약 31조 원)다. 지금 위안둥그룹을 이끌고 있는 쉬쉬둥 회장은 쉬유상의 장남이다. 쉬 회장은 중국 대륙에 28개 계열사의 근거지를 둘 정도로 본토 공략에 적극 나섰다.
중국 사법 당국이 법규 위반을 이유로 위안둥그룹 계열 아시아시멘트와 위안둥신세기방직 등 두 기업에 총 8,862만 위안(약 165억 원)의 벌금을 부과하고 미사용 건설 용지도 회수했다고 중국 언론이 23일 보도했다. 실제로는 ‘대만 독립’을 주장하는 집권 민진당에 자금을 댄 것에 대한 보복 차원으로 보인다. 환구시보가 “위안둥은 2020년 대만 총선에서 민진당 후보 47명에게 모두 5,800만 대만달러(약 25억 원)의 자금을 지원한 최대 후원자”라고 지적한 것에서 중국의 의도가 드러난다. 중국 국무원 대만판공실도 “대만 독립 지지자들이 대륙에서 돈을 버는 것은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국 정부가 정치적 이유로 대만 민간기업을 제재한 것은 유례없는 일이다. 현지에 투자한 외국 기업에 ‘대만 독립 반대’ 입장을 밝히라고 압박할 수도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장기 집권 기반을 마련하면서 중국의 팽창주의가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일련의 움직임을 보면 2016년 사드 사태 때처럼 한국을 겨냥한 중국의 경제 보복이 언제든지 재연될 수 있다. 이럴 때일수록 교역·투자의 과도한 대중 의존도를 줄이고 자강 능력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는 점을 실감한다. 그래야 대한민국을 누구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나라로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