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핀테크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

금융부 김현진 기자


“은성수 전 금융위원장님은 현 금융위원장님과 비교하면 저희 핀테크사들의 입장을 정말 잘 이해해주신 ‘천사’였던 것 같습니다.”


최근 만난 한 핀테크사 대표의 토로다. 고승범 금융위원장 취임 후 ‘동일 기능 동일 규제’를 강조하는 등 기존 금융권에 친화적인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으며 핀테크 육성을 위한 방안들은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은행권의 반발에 핀테크들이 참여하는 대환대출 플랫폼 출시가 무기한 연기됐고 금융소비자보호법 시행 속 금융 당국은 핀테크의 금융 상품 추천 서비스를 ‘중개’ 행위로 해석하면서 많은 서비스들이 중단됐다. 서비스를 재개한 곳들도 있지만 특히 보험 상품 비교가 주력 서비스인 인슈어테크들은 서비스 재개가 어려워 우회로를 찾아 ‘금융 규제 샌드박스’ 신청을 준비하는 상태다. 금융 당국은 핀테크 육성 기조가 수정되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지만 금융 당국이 한때 줄기차게 외치던 혁신은 희미해지는 모습이다.


핀테크들에 유독 팍팍한 분위기 속 최근 한국핀테크산업협회는 기자 간담회를 열고 “한국 핀테크사들에는 규제보다는 육성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목소리를 냈다. 글로벌 리서치업체 핀덱서블이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한국의 핀테크 생태계 순위는 지난해 18위에서 올해 26위로 8계단 하락했다. 전 세계 핀테크 유니콘(기업가치 1조 원 이상 비상장사)은 총 94개지만 이중 한국 기업은 1개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도 육성보다는 규제가 여전히 강한 상태다. 류영준 핀테크산업협회장은 “이대로 가다가는 ‘핀테크 후진국’이 될 수 있다”며 핀테크 산업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로 금융·정보기술(IT) 관련 규제 불확실성과 배타적·폐쇄적인 금융 관행 등을 꼽았다.


한 중소형 핀테크사 관계자는 “금융소비자들의 보호를 위해 만들어진 금소법이 금융소비자들의 편의성을 오히려 저하시키면서 핀테크사들의 시계는 오히려 거꾸로 흐르고 있다”고 말했다. 규제가 혁신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소비자들의 피해를 방지하는 소비자보호도 중요하지만 소비자의 선택권을 넓히는 것도 다른 의미에서 소비자보호다. 규제는 핀테크의 다양성과 혁신성을 살리는 방향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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