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원 모두 신불자 된다"…둔촌주공 또 다른 갈등 왜? [집슐랭]

지난해 ‘공사비 증액 계약’ 두고 파열음 커져
시공단 "사업비 대여 중단하겠다" 공문 발송
조합 "대여 중단땐 조합 파산" 집단행동 예고
내년 상반기 분양 잠정 계획도 차질 불가피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 현장에서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국내 최대 재건축 단지로 꼽히는 서울 둔촌주공아파트(둔촌 올림픽파크 에비뉴포레)의 일반 분양 일정이 또다시 지연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증액 공사비를 둘러싼 조합과 시공사업단(시공단) 사이의 갈등이 격화하면서다. 시공단은 최근 조합에 사업비 대여를 중단하겠다는 공문을 보냈고, 조합은 이에 반발해 집단행동을 예고하는 등 파열음이 커지는 모양새다."


서울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현대건설·HDC현대산업개발·대우건설·롯데건설로 구성된 시공단은 지난 18일 조합에 사업비 대여 중단을 예고하는 공문을 보냈다. 공문에는 “시공단이 3차례에 걸쳐 최고(催告·재촉)했음에도 조합이 일반분양 계약 업무 이행을 하지 않아 사업비의 대여를 중지할 예정”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조합은 이에 반발해 민원 제기와 시위 등 집단 행동을 준비 중이다. 조합 핵심 관계자는 “사업비 대여가 중단되면 조합은 파산하고, 조합원 이주비를 연체해 6,000여 명의 조합원이 모두 신용불량자가 될 수 있다”며 “이는 시공단 측의 협박 공문”이라고 했다.


공사비 증액 둘러싼 갈등 고조…조합 “법적 하자 있다”

시공단이 조합에 사업비 대여 중단 공문을 보내고, 조합은 이에 반발하는 등 양측이 갈등을 빚고 있는 배경을 이해하려면 지난해 체결된 공사비 증액 계약을 살펴봐야 한다. 지난해 6월 25일 둔촌주공 전 조합장 A씨와 시공단은 공사비를 기존 2조6,000억 여 원에서 3조2,000억원 대로 5,244억 원 증액하는 내용의 계약을 맺었다. 당시 조합장은 계약서를 작성한 날 조합원들로부터 해임됐다. 시공단은 해당 계약서에 기초해 서둘러 일반분양을 진행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조합은 당시 계약이 위법하게 진행됐다며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2020년 6월 25일 체결된 공사비 증액 계약서의 연대 보증인 서명란. 6개 중 5개가 공란으로 비워져 있다./이덕연 기자

조합이 당시 계약을 인정하지 않는 근거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공사비 증액 계약의 근간이 되는 2019년 12월 관리처분총회에서 관련 법령에 따라 한국부동산원 공사비 검증 결과를 공개해야 했지만, 당시 총회에는 공사비 검증 내역이 없었다는 것이다. 아울러 계약서 자체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계약 내용에 따르면 계약서에는 연대보증인의 개인 서명이 있어야 하지만 지난해 계약서에는 이 같은 서명이 없다는 것이 조합의 주장이다.


둔촌주공 조합은 현재 분양가 상한제에 따라 일반분양을 준비 중이다. 분양 과정이 진행되려면 조합이 건축비와 가산비 등을 계산해 구청에 제출해야 하는데, 가장 최근 공사비 계약에 절차적 하자가 있는 만큼 이에 기초해 분양 일정을 진행할 수는 없다고 조합은 주장하고 있다. 조합 관계자는 “절차적 하자가 있는 지난해 계약을 토대로 건축비 계산을 할 수는 없다”며 “분양을 하려면 적법하게 체결된 2016년 계약을 바탕으로 재협상을 해 이후 일정을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즉, 자재 값 상승이나 임금 인상 등에 따른 공사비 증액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2016년 계약을 토대로 협의를 해야 공사비 협상 및 일반분양 돌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시공단 “계약 체결은 적법, 일반분양 빨리 해야”


2019년 12월 7일 둔촌주공아파트 관리처분총회 책자. 이 총회에 기반해 2020년 6월 25일 계약이 체결됐다./이덕연 기자

이에 대해 시공단은 상반된 의견을 내놓고 있다. 우선 2020년 계약과 관련해 쟁점이 되는 한국부동산원의 공사비 증액 검증은 총회 전 신청을 했으며, 법적 의무 사항도 아니라 계약 자체가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계약서 연대보증에 대해서도 비슷한 의견을 내놓고 있다. 시공단 핵심 관계자는 “연대보증은 착공 전 조합 해산 등 리스크가 클 때 받는 것”이라며 “2020년 계약 당시는 이미 착공이 들어간 상태로 연대보증을 받을 필요가 없었다”고 말했다.


사업단은 당시 계약이 적법하게 개최된 관리처분총회를 기반으로 대의원회의 의결을 거쳤고, 이후 강동구청의 관리처분인가까지 받은 만큼 조합 집행부가 바뀌더라도 유효성이 인정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사업비 대여 중단 공문과 관련해 시공단 관계자는 “지난해 착공에 들어선 이후 일반분양이 되지 않아 아무런 수입 없이 막대한 공사비를 홀로 감당해왔다”며 “금융기관이 조합에게 해준 사업비 대출의 보증을 시공단이 맡고 있어 분양이 계속 미뤄지면 모든 부담을 시공사에서 져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정리하면 지난해 공사비 증액 계약은 적법한 과정을 통해 체결됐으며, 일반분양이 되지 않아 현재 모든 재정적 부담을 시공단이 지고 있는 상황이므로 조합이 서둘러 일반분양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 시공단의 입장이다.


이견 좁히지 않으면 일반분양 차질 불가피

계약에 대한 이견이 좁혀지지 않으면서 내년 상반기로 잠정 계획됐던 둔촌주공아파트의 일반분양 일정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공사비 계약이 일반분양은 물론 시공과 사업비 대여 등 사업 전반 과정의 기초가 되는 만큼 이에 대한 합의 없이는 사업 진척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만약 시공단이 공문대로 사업비 대출을 중단할 경우 법적 분쟁이나 공사 중단 등 갈등이 더 격화할 가능성도 남아 있는 상황이다.


아직 협상을 통한 합의 여지는 남아 있지만, 양측은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둔촌주공 조합 관계자는 “협상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면서도 “시공단 측이 진정성 있는 협상안을 내놓기 바란다”고 했다. 시공단 관계자는 “아직 구체적인 추후 행보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며 “조합이 가장 최근 계약인 지난해 계약을 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