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불·수당 민원 쏟아져…고용행정 '비명'

■ 고용부 천안지청·센터 가보니
업무 늘어 1인당 4,000명꼴 소화
새벽에도 독촉·재해 트라우마까지
"획기적 인력 확충 없인 해결 안돼"

민원인이 지난 23일 천안지청 고용센터에서 상담을 받고 있다. /사진 제공=고용부

천안지청 고용센터를 방문한 국민취업지원제 수혜자가 요양보험사 시험 합격을 알리는 문자메시지를 지난 23일 기자에게 보여주고 있다. /천안=양종곤 기자

“4년 전에는 한 사람이 담당하는 사건이 100건을 넘었습니다. 최근에 많이 줄기는 했어도 여전히 밀린 업무를 처리하느라 허덕이는 실정입니다.”


11월 23일 대전지방고용노동청 천안지청. 이곳에서 만난 공무원 A 씨는 “획기적인 인력 확충이 이뤄지지 않으면 현재로서는 방법이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과거 임금 지급 여부만 따졌던 임금 체불 사건에 연차 수당, 초과근무 수당 등이 포함된 것이 업무 강도가 세진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사건을 담당 공무원들은 ‘종합선물세트’라고 부른다. 관련 민원이 늘고 있지만 조사가 늦으면 이를 다그치는 민원인들의 전화가 잇따르고 있어서다. 민원 처리가 만족스럽지 못하면 국민신문고 홈페이지에 글을 올리거나 담당 부서로 전화하는 일도 다반사다. 하지만 몇 개월을 매달려도 ‘완전한 사건 해결’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게 고용·노동 담당 공무원들의 가장 큰 고충이다.


고용노동부의 행정 현장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이 과도한 업무 부담으로 비명을 쏟아내고 있다. 이대로라면 기본적인 업무 외에 임금 체불과 같은 부당 노동 행위 감독, 취업 지원, 산업재해 예방 등 곳곳에서 차질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30일 고용부에 따르면 천안지청의 관할구역은 천안시·아산시·당진시·예산군 4개 시군이다. 관할 면적 2,525㎦에 상주인구는 127만 명이다. 천안지청이 직접 담당하는 사업장만 9만 6,295곳이고 근로자 수는 70만 3,700명에 달한다. 지청 정원이 175명인 점을 감안하면 공무원 1명이 근로자 4,021명을 맡는 셈이다. 이마저도 17명은 아직 발령을 기다리고 있다.


4년 전인 지난 2016년은 더 심각했다. 현재의 61%인 104명이 현재 수준의 업무를 나눠 맡았다. 천안지청 소속 공무원 B 씨는 “직원이 처음 업무 배정을 받아 숙달하는 기간과 각종 사고, 중대 재해 사고로 갑자기 업무가 생기는 것까지 고려하면 실제 업무량은 몇 배에 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더 큰 우려는 인명과 직결된 안전 감독 업무다. 아산시를 담당하는 산업안전감독관 C 씨의 주요 업무는 하루에 4~5곳씩 건설 현장 등을 순찰하는 일이다. 타워크레인 운영권을 두고 노동조합끼리 다툼이 벌어지는 건설 현장에서 노조원에게 둘러싸여 위협을 당하는 일도 흔하다. 새벽 시간에는 “일 처리를 왜 빨리 안하느냐”며 노조원들이 문자메시지를 보내기 일쑤다.


C 씨는 담당 지역의 인력이 부족한 탓에 순번을 정해 산업재해 접수를 나눠 받고 있다. 그럼에도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 중대 재해 사고가 발생했다는 알림이 뜰까 항상 긴장하고 있다. 그는 “8월 감독관이 다녀간 지 한 달 만에 대전의 한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실명하는 사고가 발생했다”며 “감독관 모두 ‘내가 감독하는 현장에서 사고가 발생하지 않을까’ 하는 트라우마에 시달린다”고 말했다.


올해 1월 도입된 국민취업지원제를 담당하는 천안고용센터도 과부하가 걸렸다. 저소득 구직자와 청장년층의 취업을 돕는 이 제도의 올해 목표 인원은 64만 명이다. 천안센터의 경우 근무 인력 30명이 200배가 넘는 6,548명을 담당한다. 1명당 100명까지만 상담하라는 고용부의 가이드라인까지 무너지면서 현재 센터는 1명당 150명을 담당하고 있다.


담당 인원도 적지만 업무 부담도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고 있다. 국민취업지원제는 지원자 개별 심리상담, 취업 과제 제공, 다른 복지사업 소개 등 일종의 ‘취업멘토제’ 방식을 통해 1명을 최장 1년 동안 담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날도 국민취업제를 통해 요양보호사 시험 자격을 획득한 한 60대 주민이 센터를 방문했다. 첫 근무지로 천안센터에 발령받았다는 새내기 공무원 D 씨는 “모든 분들께 도움과 용기를 드리고 싶지만 과도한 업무량 때문에 미안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최근 들어 규정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인력을 확충하며 급한 불을 끄고 있지만 인력 부족은 모든 지청에서 겪고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고용부는 최근 3년간 정원을 1,833명 더 늘렸고 1,786명을 신규 채용했다. 내년 1월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과 국민취업제 확대에 대응해 1,000명을 더 뽑을 계획이지만 현재 주무 부처와 협의 단계에 머물고 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