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북경제] ‘불로소득’이라더니…다주택자 양도세 완화 '간보기'

與 "일시 인하 배제 않고 검토" 발언에
홍남기 "논의된 바도 계획도 없다" 반박
靑 "차기 정부에서 검토할 문제" 선 그어
보유세 높이고, 거래세 낮추는 트렌드에도
시장 다시 자극할까 외면하는 정부
찔끔 중과율 낮춰서는 매물유도 효과 없어

뒷북경제

여당이 1가구 1주택 양도소득세 비과세 기준을 9억 원에서 12억 원으로 상향한 데 이어 다주택자 양도세를 한시적으로 인하하는 카드를 던졌습니다. 그동안 다주택자를 투기세력으로 보고 ‘불로소득’을 고스란히 가져갈 수 없다는 기조였는데 대선을 앞두고 느닷없이 바뀐 셈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만 해도 집을 갖지도, 팔지도, 사지도 못하게 취득세·양도세·종합부동산세 세율을 모두 징벌적 수준으로 대폭 올린 바 있습니다.


박완주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국회 기자 간담회에서 다주택자 양도세 인하 방안과 관련해 “배제하지 않고 검토하고 있다”며 “현장에서 의견들을 수렴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성환 원내수석부대표도 라디오 인터뷰에서 “다주택을 양도하는 과정에서도 상당한 세금을 내야 하는 상황이라 갖고 있어도 부담, 팔기도 어려운 상황”이라며 “다주택자 양도세를 일시 인하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양도세율을 낮춰 주택 거래를 활성화해 매물 잠김 현상을 해소하겠다는 건데요. 현행 세법상 2주택자는 기본 세율(6~45%)에 20%가 중과되고, 3주택 이상과 조정대상지역 2주택자는 최고 75%의 양도세율을 적용받습니다. 올해 6월부터 다주택자 중과율이 20%에서 30%로 올라갔기 때문입니다. 종부세와 양도세 부담이 너무 높아 일부 다주택자는 증여로 돌아서는 모습도 최근 1년 사이 많았습니다. 다만 여당 내 ‘집토끼’ 반발이 강하고, 사실상 올해는 법안을 처리할 시간이 없어 ‘간 보기’에 그친다는 비판도 나옵니다.


정부와 청와대 모두 즉각 강한 반대 입장을 나타냈습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일 “정부 내에서 논의된 바가 전혀 없고 추진 계획도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기재부는 1일에는 국토교통부와 공동으로 긴급 보도자료를 통해 공개적으로 반대 목소리를 냈습니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도 한 인터넷 방송에 출연해 “민주당 당론 수준으로 나온 얘기가 아니고 개인적 의견으로 잠깐 거론된 것일 뿐”이라며 “다음 정부에서 검토할 문제”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3일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아파트 단지. /연합뉴스


정부가 반대하는 건 어렵게 부동산 시장 안정화 흐름이 자리 잡은 상황에서 규제를 풀면 시장을 자극하는 시그널이 될 것을 우려해서 입니다. 홍 부총리는 “최근 주택시장 안정화 흐름이 지속되고 매물도 증가하는 상황에서 다주택자 양도세를 한시 인하할 경우 입법 과정에서 절세를 기대한 기존 매물 회수 등으로 다시 부동산시장 불안을 초래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정부 말을 믿고 이미 집을 판 다주택자와의 형평성 문제도 있습니다. 기다리면 결국 정부 정책이 바뀐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다주택자 양도세 완화 방향 자체는 시장에서도 맞는 방향으로 봅니다. 보유세는 두텁게 하고 거래세는 낮추는 글로벌 트렌드일 뿐 더러 문재인 대통령도 수 차례 말한 바 있습니다.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까지 나서 여당이 강행하면 당정 충돌도 불가피합니다.


오랜만에 여야는 1가구 1주택자 양도세 비과세 기준을 12억 원으로 높이는 합리적인 결정을 했습니다. 물가 수준과 주택가격 상승을 감안해 13년 만에 고가 주택 기준을 고친 것입니다. 정부는 정책의 일관성과 신뢰도를 해칠 수 있다고 우려하지만 대주주 양도세 기준 10억 원 유지, 가상자산 과세 2023년으로 1년 연기 등 깨진 사례는 숱하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신 기본 세율 자체가 높은 상황에서 10%~20%포인트 찔끔 중과율을 낮추는 정도로는 시장에 매물을 쏟아내는 효과는 크지 않습니다. 임대차 3법으로 인해 임대 기간이 사실상 4년으로 늘어난 만큼 오히려 장기간 큰 폭의 양도세를 인하해야 다주택자 물량을 풀 수 있을 전망입니다.


이제 대선이 3개월 가까이 남았습니다. 표를 의식해 갈지(之)자로 움직이는 여당의 행보, 이번엔 어느 방향일까요.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