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진도 명량 해역의 수중 발굴 조사 과정에서 다량의 청자, 기와 파편들과 함께 ‘청자 수키와’가 발견됐다. 진도 북동쪽으로 해남과 강진에 청자 가마터가 있는데 발견된 청자 기와는 강진에서 제작된 청자들과 함께 배에 실려 가던 중 침몰하면서 바닷속에 묻혔던 것으로 보인다.
명량 해역에서 발견된 청자 기와의 겉면에 새겨진 모란과 넝쿨 무늬는 그 문양이 뚜렷하지 않다. 제작 과정에서 유약이 제대로 녹지 않아 제 색깔을 갖추지 못한 까닭에 푸른색이 아닌 밝은 회색에 가깝다. 안쪽에는 ‘남면서동원이(南面西東元二)’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으나 뜻은 밝혀지지 않았다. 이 같은 명문이 새겨진 청자 기와는 강진 사당리 청자 가마터에서도 발견됐는데 ‘서루(西樓)’ ‘누서면남(樓西面南)’ ‘남북동일(南北東一)’ 등이 있다. 이것은 건물의 위치를 표시했던 것으로 추측되고 있어 명량 해역의 청자 기와도 비슷한 의미로 여겨진다. 이러한 명문은 굽기 전에 새겼던 것이니 사용처와 위치를 미리 계획했던 것으로 보인다.
청자 기와는 강진 월남사지, 고창 선운사 동불암 등 절터에서도 발견됐는데 주로 고려 왕실 건물에 사용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고려사’에는 의종이 궁궐 동쪽에 지은 수덕궁 안 ‘양이정(養怡亭)’의 지붕을 청자로 덮었다는 내용이 있다. 실제로 강진 사당리에서는 많은 청자 기와가 출토됐다. 수덕궁 내의 ‘태평정(太平亭)’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이는 명문을 가진 청자 기와도 있다.
고려청자는 실생활에서 음식기뿐 아니라 실내의 장식, 각종 왕실 의례와 종교 행사에까지 널리 사용될 정도로 고려인의 생활 속 깊이 스며들었다. 고려 왕실에서는 지붕에까지 청자를 사용했으니 고려를 온통 ‘청자 빛’으로 구현하고자 했던 열망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보여준다. 바닷속 깊이 잠들어 있던 청자 기와는 이렇듯 ‘청자의 나라 고려’의 모습을 우리에게 생생히 전하고 있다. /이명옥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