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는 특혜 논란이 일고 있는 성남시 백현동 토지 개발 사업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처음으로 본격적인 보도가 나올 9월 말께 한 언론은 백현동 사업을 가리켜 ‘대장동보다 더한’이라는 제목을 달았습니다. 이는 부동산 개발 업자들 사이에서 오가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대장동보다 반박의 여지가 없다는 뜻입니다. 주목할만한 건 감사원이 두 번이나 이 사건에 대해 칼을 꺼내 들었다는 사실입니다. 2018년 토지 매각 과정을 샅샅이 훑었던 감사원이 이번에는 용도 변경에 초점을 맞추는 모양입니다.
감사원은 2018년 공공 기관인 식품연구원이 지방 이전을 위해 원래 있던 성남시 백현동 부지를 매각하는 과정에서 문제를 짚었습니다. 한 마디로 식품연구원이 부동산 개발 업자를 대신해 규정을 어기고 모든 편의를 봐줬다는 게 감사원의 결론입니다.
2011년 식품연구원이 처음 부지를 매각할 때는 이 부지가 자연녹지였습니다. 자연녹지는 용적률 50~100%, 4층 이하 건축물만 지을 수 있습니다. 사업성이 없겠죠. 매각 입찰은 8번이나 실패했습니다.
식품연구원은 매각을 성사 시키기 위해 이 땅의 용도를 4단계 뛰어 올려 준주거지역으로 바꾸고자 했습니다. 준주거지역은 용적률 200~500%, 건축물 층수 제한 없는 건물을 지을 수 있습니다. 아파트 등 주거 시설과 상업 시설을 고루 갖출 수 있습니다. 과밀 개발이 우려되지만, 역 주변처럼 수요가 많은 곳에 한정적으로 허가하는 유형입니다. 사업성은 말할 것도 없이 높아지게 돼 있죠. 당시 감사원은 이 부문을 더 이상 파고들지 않았는데, 현재는 이 부분이 쟁점이 되어 있죠.
아무튼 용도 변경을 허가권자인 성남시가 확정하기 한 달 전인 2015년 1월 식품연구원은 갑자기 입찰 없이 민간업자 A에 자연녹지 가격인 2,187억 원에 팔기로 했고 실제 계약은 2월에 체결합니다.
공공기관의 매각은 입찰이 원칙인데 이를 어긴 것도 수상하지만, 1월 매각을 결정할 때, A는 만약 자연녹지에서 준주거지역이 되지 않으면 계약을 물리고 계약금도 되돌려주는 조건을 걸었습니다. 식품연구원은 이를 수용했고, 결국 준주거지역으로 바뀔 것을 서로 확신하는 상태에서, 입찰 없이 자연녹지 가격에 토지를 사들였습니다.
A는 준주거지역이 된 후 그 해 9월 이 땅을 다른 민간업자 B에게 매수인 지위를 넘깁니다. B는 잔금을 치르고 이 땅의 진짜 주인이 되죠. 2월에 계약하고 9월에 잔금을 치를 때, 이 땅의 값어치는 4,869억 원으로 뛰어오릅니다. 이것도 전체 땅 중에서 기부 채납할 땅을 뺀 아파트 용 부지만 따져서요. 몇 달 만에 2,682억 원의 차익이 생긴 셈입니다.
감사원이 문제를 지적한 것은 식품연구원의 행보입니다. 식품연구원은 토지를 헐값에 매각한 후, 임대아파트를 짓기로 한 계획을 분양아파트로 변경할 수 있도록 성남시를 설득하는데 나섰습니다. 식품연구원은 민간업자가 주문한 내용을 담아 24차례 공문을 보냈습니다. 실제로 이 부지는 임대아파트에서 분양아파트로 용도가 바뀌면서 1,100세대 규모의 아파트를 분양하게 됩니다. 요즘 거론되는 ‘옹벽 아파트'의 시작이죠.
식품연구원은 그 밖에도 연구개발 용지 기부채납 책임과 해당 지역 초등학교 증축 책임을 부담한다는 확약서를 써줬습니다. 모두 토지를 매각한 식품연구원이 책임질 일은 아니었습니다. 감사원은 “공공기관 명의를 이용해 사기업체의 영리활동을 지원한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요. 당시 직원들은 감사원의 감사 결과에 따라 문책을 받았습니다. 감사원 보고서는 식품연구원이 ‘토지를 매수한 것이 고마워서 도와주게 됐다’고 답변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부동산 개발 사업에서 흔히 용도 변경으로 불리는 ‘종상향’은 사업성의 핵심입니다. 엄청난 이권이기 때문에 중앙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모두 좀처럼 해주지 않고, 해준다면 막대한 대가를 요구합니다.
예를 들어 쌍용차를 인수하려는 에디슨모터스 컨소시엄은 쌍용차 평택 공장 부지를 종상향해 1조 원짜리 땅을 7조원 이상 가게 만들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허황된 것 같지만, 공장 땅이 아파트 땅이 되기만 한다면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역대 가장 대규모 토지 거래 였던 현대차그룹의 서울 삼성동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개발 과정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현대차는 10조 5,500억 원에 이 땅을 샀는데, 서울시는 3종 일반주거지역이던 이 땅을 일반상업지역으로 올려줬습니다. 서울시는 이에 따른 가치 상승을 1조 7,491억 원으로 추산하고 현대차로부터 고스란히 공공기여금으로 받았습니다. 땅값의 17%를 더 낸 것입니다.
용도가 4단계 뛰어오른 백현동은 어떨까요. 이 땅의 개발 업자는 임대아파트를 짓겠다는 계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연구 개발용 건물을 기부 채납 하겠다는 약속도 토지를 주는 것으로 바꿔버렸습니다. 용도변경 과정에서 성남시의회 반대가 일자 이를 설득하기 위해 했던 말을 어긴 셈입니다.
당시 성남시에서 사업의 주무부서였던 성남도시개발단(현재 문화도시사업단) 단장을 지낸, 이 과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인물은 김낙중 씨 입니다. 이제는 공직에서 은퇴한 그에게 몇 차례 전화와 문자로 용도 변경과 임대아파트 계획 무산에 관한 입장을 물었습니다. 그는 “전혀 내 일이 아니었다”는 말 뿐 더 이상 답변을 들을 수는 없었습니다.
백현동 아파트는 지자체가 용도 변경으로 맹지나 다름 없는 높은 산을 깎아 아파트를 짓는 길을 열었습니다. 위험천만한 옹벽 아파트는 그렇게 태어났고, 주민들은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이런 결과에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고 있습니다. 감사원의 두 번째 감사가 잘잘못을 명백히 가릴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