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터리] 정보의 적법한 활용을 허하라

이경권 엘케이파트너스 대표변호사


1990년대 초 베스트셀러였던 앨빈 토플러의 ‘권력이동(Powershift)’이라는 책을 읽었다. 내용이 신선하고 충격적이어서 모자라는 영어 실력임에도 원서를 사서 다시 읽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식이 권력의 원천이 될 것이라는 점과 다국적기업이 국가보다 강대해질 것이란 주장이 매우 낯설게 다가왔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 저자의 놀라운 통찰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FAANG(페이스북·아마존·애플·넷플릭스·구글)’ 또는 ‘MAGA(마이크로소프트·애플·구글·아마존)’의 시가총액은 1조 달러 이상으로 웬만한 국가의 국내총생산(GDP)보다 많다. 이들 기업이 본사를 어디에 둘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될 정도로 전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도 커졌다. 오죽했으면 최근 다자간 조세 합의를 통해 법인세율을 15% 이상으로 맞추고 디지털세를 도입하기로 했을까.


이들의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 플랫폼을 통해 광범위한 정보를 수집·분석함으로써 지식을 갖추고 이를 마케팅에 활용함은 물론 정보 주체의 행동을 예측한다는 데 있다. 앨빈 토플러가 말한 권력의 원천인 지식의 바탕이 되는 정보를 독점해 수집·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일개 국가가 국경의 벽을 넘지 못하는 데 반해 이들은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들고 있다. 국가가 개인의 각종 정보를 수집하는 데에는 심한 거부감을 보이지만 일반 기업들이 개인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활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반감이 덜한 면도 있다. 에드워드 스노든이 폭로한 PRISM 프로그램을 통한 민간인 정보 수집과 사찰에 대해서는 전 세계가 분노했지만 일상적으로 이뤄지는 구글 검색을 통한 마케팅 명목의 정보 수집·분석은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 정보가 권력의 원천이 된 상황에서 이들 간의 헤게모니 싸움은 부각되는 반면 정보 주체의 의사나 이익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 것 같아 아쉽다. 정보 주체의 의사를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정보 주체의 동의’를 국가 또는 기업의 정보 수집·제공·이용의 면죄부로 활용하는 구조에 그치고 있다.


민감한 의료 정보에도 큰 차이가 없다. 특정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거나 보험 가입, 취업 여부 등과 같은 차별에 활용하지 않는다는 전제로 정보 주체의 적극적 의사를 반영할 필요가 있다. 정보 주체가 원한다면 의학이나 산업 발전을 위해 자신의 정보를 익명화해 사용할 수 있도록 기부하는 제도도 요구된다. 디지털세를 징수하는 대신 정보 주체에게 직접 보상할 수 있는 구조도 검토해야 한다. 또한 정보의 수집·활용 주체가 위법적인 행위를 해 처벌해야 할 경우 형사처벌은 물론 징벌적 손해배상과 같은 실효적인 제재 수단도 마련해야 한다.


IMF라는 국가 위기 사태에 장롱 속 금도 내놓은 국민들이라면 의학과 제약 발전을 통한 국민 전체의 건강 증진 및 산업 발전을 위해 특정인을 확인할 수 없는 형태의 정보 제공을 받아들일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보 수집 및 활용이 절실한 상황임에도 적법한 절차가 없거나 빈약하니 암흑의 유통 경로만 늘어나고 있다. 다소 늦었지만 지난해 입법을 통해 마이데이터 사업이 금융·의료 등 여러 분야에서 제도화되고 있다. 초기인 현 단계에서 정보 주체의 의사가 적극적으로 반영될 수 있는 방향으로 제도의 설계 및 구축이 이뤄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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