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국방 예산이 50조 원을 돌파한 데 이어 내년에는 53조 원대에 이르지만 국방 분야의 정책 및 기술 분야 연구진의 표정은 밝지 않다. 국방 예산이 늘면 그만큼 연구개발(R&D) 일감도 증가하지만, 정작 관련 근로자들의 업무 환경은 갈수록 빠듯해지고 있다.
10일 방산 업계 등에 따르면 국내 방위산업 및 국방 정책 분야 R&D 인재들은 고질적 인력난, 행정 업무 가중, 일감 절벽 불안의 3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보다 선진적이고 도전적인 연구를 하고 싶어도 이 같은 요인들로 인해 주저하게 된다는 것이다.
인력난 문제 해소가 시급하다. 민간 기업은 최저가 낙찰제, 공공기관은 인력 정원 규제로 인해 충분한 연구자 확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앞서 정부는 지난 2015년 국가계약법을 개정해 그동안 주로 최저가 낙찰제로 운용되던 조달 입찰 방식을 ‘종합심사 낙찰제’로 개편했다. 방산 분야에도 종합심사 낙찰제가 적용됐다. 그럼에도 여전히 국방 무기, 장비 개발, 획득 관련 입찰에는 비용(가격)이 결정적인 심사 항목이어서 사실상 최저가 낙찰제를 중심으로 운용되고 있다는 게 방산 업계의 전언이다. 주요 방산 업체의 한 간부급 연구자는 “최저가 낙찰제에 맞춰 무한 경쟁을 하다 보니 원가 절감을 위해 인건비를 아끼게 되고 대부분의 방산 업체들이 연구 인력 증원은커녕 현상 유지도 쉽지 않다”고 전했다.
국방 분야 공공기관에서는 정부의 공공기관 총원 규제로 연구 인력 확충이 더딘 경우도 있다. 한국국방연구원(KIDA)은 그나마 현 정부 출범 이후 임직원 수가 증가하기는 했으나 증가 폭은 7.6%(2017년 473명→2021년 3분기 509명)에 그쳤다. 그에 비해 수행해야 했던 연구 일감 부담은 크게 늘어 궁여지책으로 우선순위가 다소 낮은 과제들을 중심으로 수행 과제량을 줄여 선택과 집중식 운영을 하고 있다.
국방과학연구소(ADD)의 경우 같은 기간 임직원 증가 폭이 16.6%(2,972명→3,466명)에 달해 KIDA보다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하지만 이 중 무기계약직을 제외하고 고급 두뇌들을 채용하기 위한 일반 정규직만을 감안하면 증가 폭은 훨씬 더 작아진다. 그에 비해 북핵에 대응하기 위한 첨단 전략무기 R&D 과제는 급증해 고질적 인력난이 풀리지 않은 상황이다. ADD의 무기 개발이 국가 안보를 좌우한다는 점과 같은 기간 국내 전체 공공기관 총원 증가율이 28.2%(34만 5,923명→44만 3,301명)인 것을 감안하면 정규직 중심의 젊은 연구자 증원이 필요해 보인다.
이처럼 인력난이 지속되는 가운데 R&D의 본연 업무와 무관한 행정 업무까지 겹치면서 공공 및 민간 부문 연구자들은 한층 격무에 시달리고 있다. 또 다른 방산 기업 연구자는 “북한의 방산기술 해킹 탈취 사태로 정보 보안 절차가 매우 까다로워졌는데 그 취지는 좋지만 보안 절차를 지켰다는 근거를 남기기 위한 서류 작업이 과도해 관련 페이퍼워크를 하느라 R&D에 집중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시간을 빼앗기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일감 절벽’ 걱정도 방산 업계 연구자들을 불안하게 하는 요소다. 또 다른 방산 업체 연구자는 “어렵게 선진 기술을 개발해도 군 획득 사업의 경쟁입찰에서 떨어지면 무위로 돌아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설령 입찰을 따낸다고 해도 후속 사업에서 다시 업체가 바뀌거나 아예 후속 사업이 없어 기술 개발의 명맥이 끊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미국의 경우 무기 개발 입찰에서 특정 업체가 탈락하더라도 해당 기술 인력은 입찰을 따낸 기업이 승계해 최소한 프로젝트 종료 시까지 끌어안고 갈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을 해 무한 경쟁을 해도 연구 인력과 개발 노하우가 사장되지 않는다. 우리나라도 연구 인력 사장화를 막기 위한 보호 장치가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