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닥친 코로나19라는 공포로 우리의 생활은 확연히 달라졌다. 약 2년간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서로 접촉하는 것을 멀리하면서, 이웃이나 동료와 함께 살아가는 일이 적어졌다. 반면 누군가의 이기심 때문에 잘못 없는 이가 피해를 입기도 하고, 잘잘못을 따지는 일은 많아졌다. 그럼에도 ‘나’ 혼자 만이 아닌 ‘함께’ 살아가는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있었기에 세상이 돌아갈 수 있었다. 이런 시대상을 반영한 티빙 오리지널 ‘해피니스’는 우리의 모습을 거울처럼 비춘다.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지며, 진정한 행복을 찾아가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해피니스’는 근미래인 2023년을 배경으로 계층 사회 축소판인 아파트에 고립된 이들의 생존기를 그린 뉴노멀 도시 스릴러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는 시대가 지나가고 있는 때, 실패한 폐렴 치료제 ‘넥스트’가 유출되면서 사람이 사람을 물어뜯고 피를 빠는 신종 감염병 ‘광인병’이 출몰한다.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광인병의 존재에 대해 발표하지 않은 가운데, 박새봄(한효주)과 정이현(박형식)이 이사 간 아파트 내에서 광인병에 걸린 사람이 발견되고 아파트 입주민들은 코호트 격리 조치로 인해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된다.
작품은 겉에서 보면 여느 좀비물과 달라 보이지 않는다. 광인병에 걸린 사람들이 좀비 같은 모습으로 변해 이성을 잃고 사람의 피를 갈구한다는 점, ‘어딘가에 갇혀 괴물에게 쫓기는 사람들’이라는 소재가 최근 인기를 얻은 작품들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피니스’의 뚜껑을 열고 보면 확실히 여타 작품들과는 결이 다르다. 감염병을 맞닥뜨린 사람들의 태도나 자세가 지금의 우리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아파트 입주민들은 갑작스러운 격리에도 익숙한 듯 일상을 이어간다. 602호 변호사 부부는 입주민 회의를 기회로 삼아 영업까지 하고, 401호 소설가는 감염자를 감시하는 상황에서도 노트북에서 손을 떼지 못한다. 공포와 혼란 속에서도 먹고사는 일에 대한 걱정이 더 큰 것이다.
현실을 적극 반영해 다양한 사회적 메시지를 던지는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작품 곳곳에서는 코로나19로 바뀐 일상에 대해 언급한다. “실내에서는 마스크를 착용해달라”며 엘리베이터에서 마스크를 건네는 입주민, 재택근무가 익숙해진 사람들, 집합금지, 그리고 전자출입명부 등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비대면이 익숙해진 시대에 한 노인이 패스트푸드점 키오스크 앞에서 우물쭈물하다 결국 주문을 하지 못하고 돌아서는 모습은 먹먹하기도 하다.
작품의 배경을 아파트로 설정한 것 또한 이유가 있다. 사회적 계층구조를 뜻하는 것. 내 집 마련의 꿈에 부풀어 있던 윤새봄은 신혼부부 가산점을 얻기 위해 정이현과 위장결혼을 하고 경찰 공무원 특별공급 아파트 입주에 성공한다. 이후에 만난 고층의 일반분양 입주민들은 윤새봄을 ‘임대주택 입주민’이라는 프레임으로만 판단한다. 그들에게 임대주택 입주민은 마치 영화 ‘설국열차’의 꼬리칸 사람들과 같다. 임대주택 입주민들이 함께 비상계단을 쓰는 것도, 헬스장 혜택을 받는 것도 차별을 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계급 차별은 봉쇄 상황에서도 계속된다.
다양한 인간 군상도 볼 수 있다. 윤새봄과 정이현은 가장 인간적인 면모가 돋보이는 인물이다. 각각 경찰특공대 전술요원, 강력반 형사인 이들은 아파트에서 일어나는 일에 먼저 나서서 사건을 해결하고 수습한다. 601호 오주형(백현진)은 아파트 내 최고 빌런으로 꼽힌다. 그는 피부과 의사 아내의 병원 직원과 외도를 하고, 아내 살해 혐의까지 받고 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누구든 쉽게 꾀어내고, 필요 없으면 죽어도 된다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 1202호 동대표(배해선)는 남들에게 보이는 이미지를 중요하게 생각했지만, 입주자 대표가 되겠다는 열망에 사로잡혀 인간성을 잃어간다.
극한의 상황에서도 자극적인 콘텐츠에만 혈안이 된 유튜버도 있다. 302호 노부부의 아들(강한샘)은 입주민들의 안전이나 심경은 신경 쓰지 않고 콘텐츠 수익을 위해 촬영에만 몰두한다. 나이 많은 어머니의 감염이 의심되자 두려움에 집부터 뛰쳐나온다. 입주 청소를 왔다가 졸지에 격리를 당하게 된 청소업체 부부는 입주민들에게 의식주를 의지하면서 예의를 차렸지만, 코너에 몰리자 자신들이 마트에서 가져온 음식을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팔기 시작하고 인간의 목숨보다 물질에 대한 집착이 커져간다.
작품은 점점 감염병보다 무서운 인간의 광기에 집중한다. 예상했던 것보다 봉쇄 기간이 길어지자 사람들은 겉치레를 걷어치우고 민낯만 남는다. 그럴수록 저마다의 욕망은 뚜렷해진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곧 자신만의 행복을 찾기 위해 다양한 선택을 한다.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인간성을 지키기 위해, 물질 혹은 명예를 얻기 위해.
윤새봄과 정이현은 끝까지 ‘나’만이 아닌 ‘함께’ 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정이현은 살인자 앤드류로부터 윤새봄을 지키기 위해 아파트에 홀로 남고, 자신도 감염된 상태에서 공포에 빠진 입주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윤새봄은 하나 남은 치료제를 감염으로 인해 죽어가는 502호 박서윤(송지우)의 어머니에게 사용한다. 정이현에게는 자신이 있지만, 박서윤은 홀로 남게 된다면서. 한태석(조우진) 중령은 자신의 아내를 살리기 위한 치료제 개발이 우선이고, 다수보다 소수의 희생이 맞다고 생각하며 냉정함을 유지해왔던 인물. 그러나 매번 ‘함께’를 우선으로 생각하는 윤새봄을 보고 마음이 움직여 그의 선택을 따른다. 윤새봄과 정이현의 선택 덕분에 사람들은 다시 제자리를 찾고 행복한 일상을 이어간다. 인간성을 상실하고 부와 명예만을 따른 선택을 했던 입주민들의 처참한 말로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