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의료보험 적자를 방치하면 보험료를 계속 올려도 10년간 100조 원이 넘는 막대한 누적 적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업계는 이 같은 상황이 이어지면 다른 상품에서 이익을 내더라도 보험사 파산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15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정성희 보험연구원 산업연구실장이 앞으로 10년간 실손보험 재정 전망을 분석한 결과 지난 4년간(2017~2020년) 평균 보험금 증가율과 보험료(위험보험료) 증가율이 계속 유지된다면 내년부터 오는 2031년까지 실손보험 누적 적자가 112조 3,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됐다.
지난 4년간 보험료 인상률은 실손보험의 출시 시기(1~4세대)에 따라 다르지만 연평균 13.4%였다. 보험금은 그보다 더 빠르게 연평균 16.0% 증가했다. 이 추세가 앞으로 10년간 유지된다면 내년에는 위험보험료(보험료에서 사업 운영비를 제외하고 보험금 지급에 쓰이는 몫)로 보험금을 지급하는 데 3조 9,000억 원이 모자라고 부족한 보험료는 2023년 4조 8,000억 원, 2025년 7조 3,000억 원, 2027년 10조 7,000억 원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으로 예측됐다. 10년 후 2031년에는 한 해 적자가 무려 22조 9,000억 원에 달해 10년간 적자의 합계는 112조 3,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며 2031년의 위험손해율은 166.4%로 예상됐다.
실손보험 시장점유율이 85.3%인 손해보험업계만 놓고 보면 연간 적자 규모는 2022년 3조 3,000억 원에서 2025년 6조 2,000억 원으로 뛰고 2031년에는 19조 5,000억 원으로 급증하게 된다. 이 시나리오대로 실제 상황이 전개되고 다른 일반 보험과 자동차보험, 개인연금 등에서 이익이 2018~2020년 평균 수준으로 유지된다고 가정한다면 손해보험업계는 2025년부터 업계 전체적으로 당기순손실로 전환하게 된다. 다른 모든 부문의 이익으로 실손보험의 적자를 메우기에도 부족해지는 것이다. 생명보험·손해보험을 합쳐 전체 실손보험 재정이 2031년까지 위험손해율 100%, 즉 손익분기점에 도달하려면 이 기간 보험료를 연평균 19.3% 인상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내년 갱신을 앞두고 각 보험사는 내년 1월 갱신을 앞둔 고객들에게 20% 내외 인상률이 적용될 수 있다는 내용으로 갱신 안내문을 발송하기 시작했다. 실제 인상률은 금융 당국과 협의를 거쳐 확정된다. 지난해에도 각 보험사는 비슷한 수준으로 안내문을 발송했으며 실제 올해 인상률은 실손보험 종류에 따라 6.8~23.9%로 적용됐다. 단 출시 후 5년이 경과하지 않은 신(新)실손은 동결됐다.
보험업계는 현재의 심각한 경영 위기가 계속되면 실손보험이 아닌 다른 보험 계약자에게 비용 부담이 실질적으로 전가될 수 있고 더 나아가 보험사가 파산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로 1997~2001년에 일본에서는 고이율 저축성보험의 손실로 7개 보험회사가 연쇄 파산하는 사태를 겪었다.
실손보험의 막대한 적자를 기록하는 원인 중 하나는 통제 불능에 빠진 비급여 진료비 탓이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의료의 적용·가격·빈도 등은 전적으로 의료기관의 자율에 맡겨져 있다. 업계 관계자는 “실손의료보험을 매개로 모럴해저드가 일상화된 소수의 가입자와 정부의 보장성 강화 정책의 빈틈을 편법적으로 이용하는 일부 의료기관의 부도덕한 행태로 인해 비급여 과잉 진료는 통제 불능의 지경”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백내장 수술의 경우 보험설계사가 브로커로 개입되는 등 일부 안과 병·의원에서 관련 불법 의료 영업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