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수요일] 노년



- 허영자



아무리 당신이


고개를 저어도


손사래를 쳐도



빨간 윗도리를 입어도


큰 소리로


아니라고 말해도



당신은 결국


세상에서 제일


외로운 동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노을이 아름다운 것처럼, 묵은 술이 향기로운 것처럼, 오래된 장이 맛난 것처럼, 고목이 피운 매화를 최고로 치는 것처럼 늙음이 꼭 외로운 것만은 아니었지요. 빨간 옷 입고 손사래 칠 일이 아니었지요. 나이가 들수록 젊은이들이 묻고 섬기던 시절 있었지요. 자부심 서린 눈빛으로 경험과 지식과 지혜의 상징이었던 적이 있지요. 절기마다 농사짓는 법을 알려주고, 오랜 전통을 알려주며, 공동체의 기둥이던 노인들이 있었지요. 어느 날 텔레비전이 아버지가 되더니, 인터넷이 만인의 스승이 되더니, 당신의 몫이 사라졌지요. 말하면 꼰대, 말 없으면 잉여가 되었지요. 당신 탓이 아닙니다. 당신은 모든 사람의 마지막입니다.


-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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