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구경이' 김혜준의 빌런은 통한다

'구경이' 김혜준 / 사진=앤드마크 제공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킹덤' 시리즈에서 빌런을 맡아 사랑받은 배우 김혜준이 '구경이'를 통해 색다른 빌런으로 만들었다. 그것도 천진하고 카타르시스를 자극하는 매력적인 빌런이다. 천진한 미소 뒤에 섬뜩함이 감춰져 있고, 해맑은 얼굴로 살인을 일삼아 시청자들에게 반전과 충격을 준다. 김혜준의 빌런은 어딘가 묘한 매력이 있다.


김혜준이 사이코패스로 변신한 JTBC 토일드라마 '구경이'(극본 성초이/연출 이정흠)는 게임도 수사도 버벅대는 걸 참지 못하는 전 강력팀 형사 구경이(이영애)가 살인사건을 추적하는 이야기다. 그는 무해한 인상을 갖고 무차별적인 살인을 저지르는 케이를 연기했다. 케이는 모든 죽음을 사고사, 자살로 위장하는 완벽한 살인을 저지른다. 경찰들조차 일련의 사건들이 케이와 연결돼 있다는 걸 몰랐지만, 유일하게 케이의 정체를 알아차린 구경이의 등장으로 위기에 빠진다.


"제가 원래 한자리에서 대본을 진득하게 못 보는 스타일이에요. 한 부 읽다가 쉬고 다른 짓을 하다가 다시 대본을 보는 편이죠. 그런데 '구경이'는 앉은 자리에서 5부까지 후루룩 읽었을 정도로 재밌었어요. 그런데 역할 자체의 난도가 높았고 도전할 부분이 많아서 고민하다가, '내가 살면서 언제 이영애 선배님과 연기하겠나'는 마음이 들어 출연을 결정했죠."


케이는 '해맑은 사이코패스'였다. 한 쪽 얼굴은 아이처럼 천진한 미소를 지었지만, 다른 얼굴은 미동도 없이 사람을 죽일 정도로 극악무도했다. 김혜준은 케이의 극단적인 양면을 연기하기 위해 어딘가 작위적이고 삐거덕거려야 했다. 또 케이의 만들어진 사회성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해야만 했다.


"케이의 오버스러우면서 서툰 느낌을 연극 톤을 이용해 표현하려고 했어요. 제 대사 중에 연극적인 대사도 많고, 만화 같은 설정들이 많았기에 가능했죠. 감독님도 케이가 원초적일 정도로 순수하게 웃길 바라시더라고요. 케이는 일상에서도 영혼이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오직 살인을 할 때만 재미를 느끼는 아이죠. 케이는 자신이 괴롭히는 사람을 직접적으로 괴롭히지 않아요. 그 사람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걸 망가트려요. 이럴 때 정말 못됐다고 생각했어요."



'구경이' 스틸 / 사진=JTBC 제공

케이는 궁극적으로 세상이 조금 더 깨끗해졌으면 좋겠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처음에는 자신이 애착을 갖고 있는 사람이 원하는 걸 들어주기 위한 수단이 살인이었다. 마치 사탕을 바라는 아이처럼 시작됐다. 그러나 신념은 어느덧 놀이로 바뀌었고, 케이의 유일한 즐거움이 됐다.


"케이가 살인을 한 다음, 재채기를 하는 연출이 나와요. 이건 케이에게 살인이 재채기하듯 쉽다는 걸 의미해요. 재채기는 참을 수 없는 거잖아요. 그전에는 이모(배해선)라는 존재가 선을 넘지 않도록 막아줬지만, 이제 이모가 죽고 살인은 재채기처럼 막을 수 없는 게 된 거죠. 케이는 참고 싶지도 않았을 거예요."


어릴 시절 케이는 산에서 일련의 일들을 겪고 사이코패스가 됐다. 김혜준은 케이가 산에서 무슨 일을 겪었기에 지금의 독특한 모습을 갖추게 됐는지 궁금했지만, 빌런에게 당위성을 주고 싶지 않아 전사를 따로 만들지 않았다. 빌런은 그저 빌런으로 남아야 된다고 생각했다고.


"작가, 감독님에게 케이에 전사에 대해 따로 물어보지 않았어요. 사이코패스라는 게 어떤 계기로 인해 만들어질 수 있지만, 그냥 성격처럼 무의식으로 생길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작가님 역시 작품에서 케이의 과거를 그리지 않았어요. 이건 '빌런에게 서사를 부여하지 않아야 된다'는 작가님의 의도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도 '케이는 그냥 원래 그런 사람이야'라고 믿고 연기했어요. 물론 이모의 죽음이 케이에게 중요한 사건이긴 했지만, 여기에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김혜준은 최근 각종 작품에서 빌런 캐릭터가 시청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는 것을 보고, 도덕적인 고민에 빠졌다고 털어놨다. 다만 케이의 살해 대상이 악행을 저지르는 인물로 한정돼 있기에 시청자들의 응원을 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케이를 안쓰럽게 표현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어요. 결국 케이는 나쁜 사람이라는 걸 확실히 보여주는 게 맞다고 생각했죠. '구경이'가 말하고 싶었던 건 사람의 생명에 대한 가치예요. '누군가 살아갈 가치가 있는가'를 개인이 판단할 수 없다는 걸 보여주는 거죠. 아무리 케이가 살아갈 가치가 없다고 여기는 인물을 살해한다고 해도, 당연한 가치는 침범할 수 없으니까요."



김혜준 / 사진=앤드마크 제공

케이와 케이를 둘러싼 주변 인물들의 관계는 독특했다. 케이는 구경이를 동경하지만 동시에 미워했다. 일각에서는 "케이와 구경이에게 동성애 코드가 깔려 있는 게 아니냐"고 평가할 정도였다. 인물관계를 단순하게 정의 내릴 수 없다는 게 '구경이'의 매력이었다.


"나와 닮은 사람에게 끌리기 마련이죠. 케이가 누군가를 동경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구경이를 보면서 자신을 느끼고, 내 마음을 알아줄 것 같으니까 집착하는 것 같아요. 실제로 구경이가 케이 마음을 알아주잖아요. 그때 케이는 아이처럼 매달리기도 해요. 그런데 구경이는 절 그런 시선으로 보지 않고, 하나의 목표 취급해요. 재밌는 관계죠. 동성애 이야기가 나온 건, 그만큼 저와 이영애 선배님의 케미가 좋았다는 거니까 기분 좋게 받아들이려고요. "


조력자 건욱(이홍내)과의 관계도 특이했다. 케이가 건욱에게 애착을 가진 건 맞지만, 무조건 아랫사람 취급했다. 케이에게 건욱은 있을 필요는 없는데, 없어선 안 될 존재라고. 건욱이 케이를 마약범으로 신고했을 때도 케이는 배신당했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오히려 건욱을 더 챙겼다.


"이홍내에게 고마운 점이 정말 많아요. 케이가 빛나야 건욱이 빛난다고 생각하더라고요. 건욱이 케이를 무서워할수록 건욱의 부드러운 면이 살아나는 거예요. 케이가 덩치나 외모에 밀리지 않도록 도와줬어요. 어떻게 보면 배우들은 현장에서 자신의 연기가 빛나길 원하잖아요. 이홍내는 그걸 내려놓은 거죠. 많이 배웠어요."



'구경이' 스틸 / 사진=JTBC

김혜준은 케이와 만난 후 일상이 바뀌었다. 6개월 동안 케이로 지냈고, 촬영을 마친 지 얼마 되지 않아 더욱 영향을 받은 것 같다고. 김혜준은 케이의 해맑음에 영향을 받아 더 장난스러워졌고 밝아졌다. 케이가 "죽이고 싶다"는 말버릇이 있는 것처럼, 김혜준 역시 "죽인다"는 말을 많이 하게 돼 NG까지 나기도 했다.


김혜준은 '킹덤'에서 빌런인 중전 역을 맡아 시청자들에게 존재감을 각인시키고, '구경이'에서도 빌런으로 눈도장을 찍었다. 그는 영화 '미성년'처럼 가장 평범한 얼굴을 담은 영화를 좋아하지만, 대중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은 건 빌런 역을 맡았을 때라고 자평했다.


"악한 행동을 할 것 같이 생기지 않은 인물이 사이코패스 같은 일들을 하고 다니니까 반전과 충격이 생겨서 대중들이 좋아하는 것 같아요. 다음 작품에서도 이런 반전을 주고 싶어요. 제가 체구가 크거나 세 보이지 않잖아요. 그런데 작은 체구로 정통 액션을 하면 또 다른 반전이 되지 않을까요?"


한편으로 부담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김혜준은 아직은 이미지에 구애받지 않고 도전을 이어가기로 마음먹었다. 작품 미팅을 하거나 오디션을 보면 항상 새로운 역할에 끌렸던 만큼, 자신 안에서 다양한 모습을 찾아내 자신의 목소리로 이야기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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