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진 한예종 총장 "음악 등 6개원 융합 활성화…국내외 대학과도 교류 늘릴 것"

[서경이 만난 사람] 김대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피아니스트·예술감독·음악원 교수서 한예종 첫 직선제 총장 취임
예술가는 '나'를 찾는 게 중요…개개인 성향·창의성 교육에 방점
내년 개교 30주년 맞아 제2 도전, 제대로 예술하는 학교 만들겠다

김대진 한예종 총장이 한예종 석관동 캠퍼스의 총장 집무실에서 서울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오승현 기자

지난 8월 26일 서울 석관동의 한국종합예술학교 예술극장. 은발의 중년 남성이 피아노 앞에 앉았다. 차분히 누르는 건반을 타고 흘러나온 음악은 바흐의 칸타타 ‘예술, 인간 소망의 기쁨’이다. 이날 연주는 피아니스트 김대진이 29년간 교수로 몸담아온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제9대 총장으로 취임하며 “진심을 담아 기도하는 마음”으로 학생과 교직원들에게 건넨 인사였다. 그렇게 연주자도, 호랑이 선생님도 아닌 교육 행정가로서 4년의 항해를 시작한 김대진은 최근 취임 100일에 즈음해 서울경제와 만나 “낯선 시대가 내미는 도전에 적극 맞서는 ‘제2의 도약’”을 강조하며 “학생 개개인이 저마다의 창의성을 발산할 수 있는, 제대로 예술 하는 예술 학교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한예종은 1990년 국립 예술 학교 설립 계획이 공포되고 한예종 설치령에 따라 1992년 개교했다. 1993년 음악원을 시작으로 매년 전공 원을 늘려 지금은 6개 원(음악원·연극원·영상원·무용원·미술원·전통예술원) 체제로 운영되고 있는 4년제 특수 국립대학이다. 1994년 음악원 교수로 합류한 김 총장은 그동안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 교향악단 예술감독으로 활약해온 예술가인 동시에 피아니스트 김선욱·손열음·문지영·박재홍 등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젊은 연주자들을 키워낸 교육자이기도 하다.


새로 맡은 ‘총장’직은 그동안 그가 걸어온 예술가나 예술 교육자로서의 길과는 확연히 결이 다르다. ‘가르치는 사람’으로 오는 2027년 퇴임을 맞으려 했던 그의 계획은 지난해 세상을 떠난 고(故) 이강숙 초대 총장의 추도사를 쓰며 바뀌었다. 김 총장은 “추도사를 쓰면서 자연스레 학교가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게 됐다”며 “자리 하나 맡겠다는 생각은 없었지만 이 초대 총장님의 뜻을 되새기고 발전시키는 누군가가 있어야 하지 않나 하는 마음에 총장에 출마했다”고 설명했다. 한예종 총장은 교내 선거에서 선출된 후보자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제청해 대통령이 최종 임명한다. /대담=신경립 문화부장 klsin@sedaily.com




한예종 개교 이래 처음으로 직선제로 치러진 이번 선거에서 김 총장은 ‘창의’와 ‘융합’을 강조했다. “본인을 믿고 가장 자신답게 마음껏 발산할 때 비로소 창의성이 나옵니다. 이런 발산이 가능하도록 하고 그 결과물을 수정해나가는 것이 제가 생각하는 지금 시대의 예술교육입니다.” 융합은 이렇게 개인이 축적한 체험과 감정이 전제돼야 비로소 가능해진다. 김 총장은 “개개인에게 저장된 인풋(input)이 화학작용을 일으켜 예상치 못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며 “6개의 다른 장르가 모여 있는 학교인 만큼 각 원 사이의 예술적 교류를 통해 또 다른 인풋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원 간에 실험적인 융합 프로젝트를 활성화할 것”이라며 “‘시스템’이 아닌 ‘실질적인 작업’이 학생들에게 좋은 자극이 되고, 이렇게 다 보면 자연스럽게 교육의 방향도 잡힐 것”이라고 기대했다. 학교 전체가 유기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이 거대 협업 프로젝트는 과거 몇몇 졸업생들의 시도를 통해 일찌감치 그 가능성을 엿본 구상이기도 하다. 그는 “학교 초창기에도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비슷한 시도를 한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자기 전공에만 매달려도 벅찬 상황에서 이런 ‘자치적인 마인드’가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당시 참여한 분들은 지금도 각 분야에서 선두로 활약하고 있다는 점에서 (필요성과 효과가) ‘증명된 프로젝트’라는 생각이 든다”고 전했다.




학내에서의 경험과 노하우가 쌓이면 국내는 물론 해외 유수의 대학들과도 교류 프로그램을 확대해나갈 생각이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전공생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예술교육이 되려면 대학 간 협력 체계 구축이 절실하다는 게 김 총장의 생각이다. 그는 “전공생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학교 간 협력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서로 호환되는 공통의 ‘플러그’가 있어야 한다”며 “앞으로 다른 대학들과 전개해나갈 크고 작은 프로젝트가 전 세계적으로 통용 가능한 플러그를 찾는 작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계획을 뒷받침하기 위한 법안(한예종설치법) 마련도 최근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다. 설치령에 근거해 설립된 한예종은 실질적인 대학원 과정(예술전문사)을 운영하고 있음에도 고등교육법상 ‘각종학교’로 인정돼 현재 석·박사 학위 부여가 불가능하고 이로 인해 타 대학과의 교류·협력이나 국내외 학생 유치에도 어려움을 겪어왔다.


이 초대 총장이 꿈꿨던 한예종은 ‘해외 유학을 가지 않아도 되는 학교’였다. 30주년을 앞둔 한예종은 그 목표를 이미 달성했다. 지금은 ‘외국 학생들이 유학 오는 학교’로 그 위상을 다져가고 있다. 무엇이 오늘의 한예종을 가능하게 했을까. 김 총장은 ‘눈에 보이는 커리어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커리어가 중요하고 그 분위기는 교수들이 만드는 것’이라던 초대 총장의 말을 인용하며 한예종의 남다른 교육 시스템을 강조했다. “한예종에서는 대부분의 교수님이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창작 활동도 활발하게 합니다. 학생들은 자연스레 그 준비 과정을 지켜보며 일반 수업에서와는 다른 무엇을 배우고 교수와 유대감을 형성하죠. 이것은 제도적인 커리큘럼으로는 얻을 수 없는 교육입니다.” 그 자신도 음악원 교수로 재직하면서 많은 공연 무대에 섰고 연주자로서 제자들의 평가 대상이 되기도 했다. 스승에게 그 누가 냉정한 평가를 할 수 있겠나 싶지만 예술 앞에서 학생들은 솔직하다. “처음에는 다 ‘좋아요’라고 하죠. 나중에 레슨할 때 슬쩍 물어보면 그제야 이야기를 해요. ‘좋은데, 그날 조금 흥분하신 거 아닌가 싶고요…’ 이런 식으로 말이죠. 전 학생들 앞에서 연주하는 것이 제일 떨렸어요.(웃음)”




세계적인 연주자를 키워낸 교육자이기도 한 김 총장이 품고 있는 교육철학은 ‘학생 개개인이 자신을 찾을 수 있도록 비춰줘야 한다는’ 이른바 ‘거울론’이다. 장점이든 단점이든 자기 자신도 몰랐던 ‘나’를 파악하는 것이 예술가에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강하지 못하면 무대에서든 어디서든 무게를 감당하지 못합니다. 무대에서 일어날 모든 현상을 경험하고 이겨내려면 스스로를 잘 알고 그에 맞춰 훈련해야겠죠.” 그래서 김 총장은 교수 시절 정기적으로 학생들이 서로의 연주를 평가하고 피드백하는 시간을 갖도록 했다. 긴장할 때 나오는 습관부터 곡 해석에 대한 의견까지 ‘저렇게 적나라해도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학생들은 이 시간에 적극적으로 임했다. “요즘 학생들은 ‘다음 주까지 완성해 오라’는 과제는 웬만하면 다 해냅니다. 곡에 대한 지식과 레슨보다 중요한 것은 학생마다 다른 성향을 파악해 그에 맞는 방법으로 가르치는 것이죠. 그렇게 개개인인 자신을 마주하는, 부담되고 무섭기까지 한 상황을 이겨내야 강해질 수 있습니다.”


30년 전 피아노 한 대 없이 시작한 학교에서는 세계적인 클래식 연주자들이 탄생했고 음악뿐 아니라 연극·영상·무용·미술·전통예술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에서 실력파 문화예술인이 배출됐다. 김 총장은 “목표였다면 ‘열심히 해보자’는 것뿐 거창하게 뭔가를 이루겠다는 생각은 특별히 없었던 것 같다”면서 “멀리 안 보고 땅만 보고 열심히 걸어온 것”을 학교가 이뤄낸 성과의 배경으로 꼽았다. 그는 “초창기부터 교수님들은 각자의 생생한 현장을 학생들에게 전수해줬고 학생들은 자신과 교수를 믿고 마음껏 예술적 끼를 발산했다”며 “이 에너지가 합쳐지면서 한예종의 오늘이 가능했던 것 같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이어 “이제 고개를 들어보니 옛날(개교 초기)과 많이 바뀌었다 싶다”고 웃어 보였다.


훌륭한 오케스트라는 단일 악기, 특정한 개인 연주자의 역량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각자의 다름’ 없는 획일적인 선율은 그 어떤 감동도 선사할 수 없다. “각자의 다름이 만드는 아름다움을 지원하며 조화로운 합주를 이끌어내는” 지휘자를 자처한 김 총장이 요즘 매일 마음에 새기는 단어는 ‘소통’이다. 임기를 마칠 때 어떤 총장으로 기억되고 싶으냐는 질문에 그는 망설임 없이 말했다. “저는 갈등보다 안 좋은 게 무관심, 소통이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말이 통했던 총장’으로 기억된다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He is… △1962년 서울 △1991년 줄리아드음악학교 박사 △1994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 부임 △2008~2017년 수원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 △2016년 퀸엘리자베스 국제 피아노 콩쿠르 심사위원 △2017년 베토벤 국제 피아노 콩쿠르 심사위원 △2019년 센다이 국제 피아노 콩쿠르 심사위원 △2017~2021년 창원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 △2021년 8월~ 한예종 제9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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