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선 이미 출시됐는데…1년 반만에 빛보는 LG '전자식 마스크'

■시대 동떨어진 규제의 민낯
작년 7월 첫선 '퓨리케어 웨어러블'
CES '혁신상'까지 받은 제품이지만
식약처 심사만 6개월 가까이 걸려
LG전자, 결국 규제샌드박스 신청
예비기준 제정 끝 내년초 국내 출시


“안경에 김이 서리지 않고 무엇보다 숨쉬기가 편합니다.”


LG전자의 전자식 마스크 ‘퓨리케어 웨어러블 공기청정기’를 써본 사람들의 한결같은 평가다. 특이한 점은 LG전자가 만든 이 제품을 국내에서 살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LG전자 국내 홈페이지에서도 이 제품의 밴드나 필터·커버 같은 소모품은 구매할 수 있지만 정작 본체는 찾아볼 수 없다. 국내 소비자들의 후기는 모두 태국이나 싱가포르·인도네시아 같은 동남아 해외 직접 구매(직구)를 통해 올린 것인데 한국이 수출한 제품을 다시 사 오는 기이한 일이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


19일 산업계 등에 따르면 LG전자는 지난해 7월 전자식 마스크를 공개한 지 1년 반 만인 내년 초 국내에 정식으로 출시한다. 오는 22일부로 국가기술표준원이 ‘전자식 마스크 제품 예비 안전기준’을 시행하면서 국내에서도 안전인증(KC) 마크를 단 전자식 마스크 판매가 가능해진 것이다.


LG전자가 처음으로 전자식 마스크를 내놓은 건 지난해 7월이다. 지난해 초 세계적으로 코로나19가 대유행하며 마스크가 일상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 마스크는 방역에 가장 효과적이고 간편한 제품이었지만 바이러스와 유해 물질을 여과하는 필터를 겹겹이 두르다 보니 호흡이 어렵고 원활한 의사소통도 방해했다. 이런 가운데 LG전자가 내놓은 전자식 마스크는 호흡할 때 발생하는 압력을 감지해 공기 흐름을 조절하는 팬과 헤파필터를 장착해 평상시처럼 숨을 쉬면서 바이러스로부터 내 몸을 보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가쁜 숨을 몰아쉬어야 하는 운동 상황에도 적합할 뿐만 아니라 마이크와 스피커를 갖춰 마스크 밖으로 목소리를 내보내기 위해 언성을 높일 필요도 없었다. 올해 초 열린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 ‘CES 2021’에서도 이 제품이 혁신상을 받을 정도로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지난 2년 코로나19가 확산과 재확산을 수도 없이 반복하는 동안 이 제품은 국내에서 빛을 보지 못했다. LG전자는 지난해 9월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의약외품’으로 허가를 신청했는데 6개월 가까이 진전이 없었다. 이 제품이 기존에 없던 새로운 발명품이다 보니 심사는 더디게 진행됐고 식약처는 두 차례 자료 보완도 요구했다. 결국 LG전자는 이듬해 2월 식약처에 낸 신청서를 스스로 철회한 뒤 계획을 바꿔 올 5월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에 규제 샌드박스(기술 혁신 제품에 대해 임시 허가 등을 부여하는 제도)를 신청했다. 이 과정을 통해 관계 부처와 전문가들이 예비안전기준을 만들기로 합의했고 올 10월 전자식 마스크의 안전 요건과 시험 방법, 표시 사항 등을 규정한 예비기준이 제정돼 이달 시행을 앞뒀다. 결과적으로 LG전자가 이 제품을 처음 공개한 뒤 국내 출시까지 꼬박 1년 반이 걸린 셈이다.


그사이 LG전자는 올 7월 1세대 제품보다 제품 무게를 줄이고(94g, 부속품 제외 시) 배터리 용량을 1,000㎃로 늘려 최대 8시간까지 쓸 수 있는 2세대 제품을 내놓으며 우선 태국 등 동남아로 출시 지역을 확대했다. 지난 7월 열린 도쿄올림픽에 참여한 태국 선수단 120명은 방콕 공항에서 LG전자 마스크를 착용하며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재계의 한 관계자는 “한국 선수단이 착용했다면 국내외에 신기술과 제품을 알리는 더 좋은 계기가 됐을 텐데 아쉽다”고 전했다.


이같이 혁신 제품이 규제에 발이 묶여 상품화가 늦어지면서 기업은 물론 사회 전체가 적지 않은 비용을 낭비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LG전자 안팎에서는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절정에 달하던 시기를 놓쳤다는 탄성이 흘러나온다. 영국이 7월 ‘위드 코로나’를 선언하는 등 백신 접종률이 높아지면서 전자식 마스크 구매력이 있는 선진국 대부분은 방역 강도를 낮췄다. 최근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 출현으로 다시 방역이 강화하고 있지만 지난해 말부터 올해에 이르는 시장 적기는 놓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해외부터 출시를 먼저 할 수 있었다고 하지만 자국 시장에서조차 출시가 안 된 제품으로 선진 시장을 공략하기는 무리수라는 분석이다.


국내 소비자 역시 첨단 마스크를 이용하며 편리하게 호흡하고 쾌적하게 생활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해외 직구에 나선 소비자들은 불필요한 시간과 물류비용을 지출해야만 했다. 환경 측면에서도 처치 곤란인 1회용 마스크 쓰레기를 줄일 수 있었다는 아쉬움이 제기된다.


이규석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정부가 포괄적 네거티브 규제 혁신 정책과 규제 샌드박스를 추진하고 있지만 여전히 산업계는 체감하지 못한다”며 “기술 발전 속도와 산업 현실에 맞는 규제 완화를 통해 신성장 산업과 기업들이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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