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치열한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에서 10년 내 일본과 유럽연합(EU)을 뛰어넘는 수준의 기술 주도권을 확보한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특히 인공지능(AI), 5G·6G, 첨단바이오, 반도체, 첨단 로봇, 양자, 우주·항공 등 10개 분야 기술을 ‘국가 필수전략기술’로 지정하고 기술 우위 확보를 위한 총력전을 전개하기로 했다.
정부는 22일 김부겸 국무총리 주재로 ‘제 20회 과학기술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국가 필수 전략기술 선정 및 육성·보호전략’을 의결하고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했다.
이번 육성전략은 주요 선도국들이 기술 우위 확보를 목표로 국가적 역량을 결집하고 있는 기술패권 경쟁에서 ‘기술주권’ 확보가 승패를 결정지을 열쇠라는 인식에서 출발했다. 특히 기술패권 경쟁에서 전략기술에 대한 국가차원 우선순위 설정과 전략 마련이 시급하다는 판단이 배경이 됐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미국은 ‘무한 프런티어 법(Endless Frontier Act)’ 등을 통해 AI, 반도체, 생명공학, 자율 주행 등 10대 핵심기술을 전략 기술로 선정해 5년간 1,500억달러를 집중투자하며 기술우위 확보 전략을 본격화 하고 있다. 또 중국과의 기술 패권 전쟁을 위해 국무부에 기술협력국과 미국 국립과학재단(NSF) 내 기술혁신국을 신설하며 지원사격을 하고 있다. 중국도 ‘14차 5개년 계획’을 통해 AI, 양자, 뇌과학 등 7대 과학기술과 신소재, 스마트제조 등 8대 산업을 중심으로 국가 연구개발(R&D) 투자를 연 7% 이상 확대하고 있다.
이러한 치열한 경쟁구도에서 주도권과 협상력을 갖기 위해 정부는 상대국이 필요로 하는 전략기술 분야 기술력 확보를 최우선 과제로 선정했다. 반도체와 이차전지, 5G 등을 제외하면 기술패권 경쟁에서 국가 간 경쟁·협력의 지렛대로 쓸 원천기술이 많지 않은 실정이기 때문이다. 실제 대표적 전략기술 수준과 R&D 투자 규모는 절대적 열세다. 양자 분야의 경우 중국은 최고 기술국 대비 93.2%, 일본은 90.4% 수준이지만 한국은 62.5%에 그친다. R&D 투자 규모도 2019년 기준 미국은 224조원, EU는 124조원, 중국은 77조원인데 반해 한국은 일본(39조원) 보다 뒤쳐진 20조원에 불과하다.
이에 정부는 필수전략기술 수준을 현재 60~80% 수준에어 오는 2030년까지 최고국 대비 90% 이상 달성을 목표로 국가역량을 집중해 나갈 계획이다. 이는 EU와 일본 등을 능가하는 수준이다. 또 필수전략기술 분야는 정부 R&D투자를 지속적으로 늘리기로 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인공지능(AI), 5G·6G, 첨단바이오, 반도체·디스플레이, 이차전지, 수소, 첨단 로봇·제조, 양자, 우주·항공, 사이버보안 등 10개 기술을 집중 육성·보호 해야 할 ‘국가 필수전략기술’로 선정했다. 정부 R&D 투자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해 선정 과정에서 산업·연구 현장의 전문가 평가와 관계부처 간 정책 협의 등도 거쳤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해당 분야를 기술경쟁력에 따라 △기술·산업을 주도하는 민간혁신활동 집중 지원하는 ‘선도형’(반도체·디스플레이, 이차전지, 5G·6G) △도전적 R&D로 신속한 기술확보 및 상용화를 준비하는 ‘경쟁형(AI, 첨단로봇·제조, 수소, 사이버보안)’ △공공주도로 중장기적 육성을 하는 ‘추격형(양자, 우주항공, 첨단바이오)’ 등으로 분류하고 맞춤형 전략 방향을 짜기로 했다. 예를 들어 경제·안보 패권경쟁에서의 핵심기술로 시급한 경쟁력 확보가 필요한 AI의 경우 우수한 민간역량을 활용하고 R&D 및 인력육성에 집중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머신러닝 원천기술 및 자율주행 통신시스템, 차량용 반도체·센서·소프트웨어(SW) 등 핵심기술 투자를 확대한다. 또 민간의 AI컴퓨팅시설투자에 대한 세제지원과 거대 AI 공공 인프라 구축·개방 등을 통해 민간역량 강화를 지원한다. AI서비스 활성화와 자율주행 실증·상용화를 위한 법·제도 개선과 산학 프로젝트를 통한 고급인재 양성 확대도 나선다.
이밖에도 지속 가능한 추진체계 및 제도기반 구축을 위해 민간이 대폭 참여한 범정부 추진체계를 마련할 계획이다. 특히 대통령이 의장인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를 정점으로 산하에 장관급 ‘국가필수전략기술 특별위원회(가칭)’ 및 기술분야별 ‘민관 합동 협의회’도 신설한다.
여기에 이와 같은 전략을 일회적으로 끝내지 않고 꾸준히 추진해 성과를 얻을 수 있도록 ‘국가 필수전략기술 육성에 관한 법률’ 제정도 추진한다.
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기술경쟁력이 국가의 흥망을 결정하는 기술패권 경쟁시대, ‘기술주권’은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닌 국가적 임무”라며 “미래 국익을 좌우할 필수전략기술 분야에 국가 역량을 결집시켜 대체 불가한 독보적 원천기술 확보를 통해 기술주권을 확보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