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선' 건드리지도 못했는데 실체규명 암초…좌초위기 몰린 檢수사

■'대장동 키맨' 잇따른 극단선택
유동규 측근인 김문기 처장 등 숨져
특혜의혹 관련 증언확보 어렵게 돼
고위급 소환 등 수사 차질 불가피
김문기 유족 "실무자인데 책임전가
이 나라 이 정권 모든게 원망스럽다"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이 지난 10월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고 있다. /성남=연합뉴스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이 사무실에서 숨진 채 발견된 가운데 22일 경찰 관계자들이 현장 감식 등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성남=연합뉴스

대장동 개발 사업 특혜 의혹을 둘러싼 ‘윗선’의 실체를 규명할 핵심 관계자들이 연이어 숨진 채 발견되면서 검찰 수사에 제동이 걸렸다. 유한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사업본부장에 이어 김문기 개발1처장까지 사망하는 예상치 못한 암초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당초 대장동 개발 사업에 관여한 고위급 인사에 대한 수사에 대대적으로 착수하겠다는 검찰의 계획에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석 달여에 걸친 수사 기간에 사건 관계자들이 연거푸 극단적 선택을 하면서 검찰이 무리하게 강압 수사를 했다는 비판에도 직면했다. 게다가 내년 1월 1일부터는 검찰 피의자 신문조서의 증거 능력이 제한되는 등 사법 환경도 대대적으로 바뀔 예정이어서 대장동 개발 사업 특혜·로비 의혹을 겨냥한 검찰 수사가 ‘삼중고’에 빠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22일 경찰 등에 따르면 김 처장은 지난 21일 오후 8시 30분께 성남도시개발공사 1층 사무실에서 쓰러져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김 처장이 극단적 선택을 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부검 등 정확한 사망 경위를 파악하고 있다.


대장동 특혜·로비 의혹을 겨냥한 검찰 수사 과정에서 주요 관계자가 사망한 것은 유 전 본부장에 이어 두 번째다. 김 처장 사망에 대해 이날 김 처장의 동생 A 씨는 “부서장이라고 하더라도 결정권자 없이는 (사업을 추진할) 힘이 없다”며 “형이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든 이 나라, 이 정권, 모든 것이 원망스럽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김 처장 동생인 A 씨는 빈소가 마련된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형은 ‘나는 줄곧 실무자로서 일한 것밖에 없다’고 억울해했다”며 “사측이 자신에게 중징계하는 것도 모자라 형사 고발하고 손해배상 청구까지 한다는 얘기를 나에게도 해줬는데 회사의 이런 조치로 충격을 크게 받으셨던 것 같다”고 말했다. 성남도시개발공사가 중징계 및 형사 고발로 책임을 김 처장에게 떠넘기려 했다는 게 A 씨의 주장이다.


성남도시개발공사는 전날 김 처장에게 중징계 의결서를 보냈다. 또 형사 고발 등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김 처장이 사망한 지 하루가 지났으나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다만 경찰 조사 결과 등 향후 상황을 예의주시하는 모습이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유 전 본부장에 이어 김 처장까지 사망하면서 검찰 수사가 사실상 좌초된 게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두 사람이 대장동 개발 사업 특혜 의혹 수사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는지에 대한 의혹을 풀어줄 핵심 실무 관계자로 꼽혔기 때문이다.


김 처장의 경우 2015년 2월부터 대장동 개발 사업 주무 부서장을 맡았다. 또 그해 3월 성남도시개발공사가 성남의뜰 컨소시엄을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할 당시 1·2차 평가에 참여했다. 특히 앞서 구속 기소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의 측근으로 초과이익환수 조항을 대장동 사업협약서에 삭제한 핵심 인물이라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다만 김 처장은 그동안 사법 처리 대상에 오른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지 않았다. 그가 마지막으로 검찰 조사를 받은 9일에도 참고인 신분이었다.


유한기 전 본부장의 경우 성남도시개발공사의 2인자로 불린 인물이다. 검찰은 ‘대장동팀’으로부터 2억 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등 수사에 속도가 붙는 듯했다. 하지만 유 전 본부장은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나흘 앞두고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검찰 사정에 밝은 한 법조계 관계자는 “성남시 고위 공무원 등 윗선이 대장동 개발 사업 특혜 의혹에 관여했는지를 규명하기 위해서는 유 전 본부장과 김 처장의 진술을 확보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며 “하지만 두 사람이 사망하면서 증언 확보는 물론 추가 증거 확보를 위한 압수 수색 등 강제 수사에도 나서지 못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윗선 관여 여부를 수사하려고 해도 증언·증거 확보 등 필요충분조건이 갖춰지지 않아 수사 동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또 다른 법조계 관계자는 “최근 검찰이 대장동 개발 사업 당시 성남시장이었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측근인 정진상 민주당 선대위 비서실 부실장을 불러 조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됐으나 이 역시 쉽지 않은 상황에 몰렸다”며 “오히려 검찰은 형사소송법 개정에 따른 변화와 수사 장기화 우려, 강압 수사 비판까지 홀로 감수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고 말했다.


유 전 본부장이 극단적 선택을 한 지 2주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김 처장이 사망한 만큼 수사 과정에 문제가 없었는지 등에 대한 비난과 지적까지 검찰이 홀로 감당해야 할 처지가 됐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개정된 형사소송법에 따라 내년 1월 1일 이후 기소된 사건부터 피고인이 동의하지 않으면 검찰 피의자 신문조서를 법정에서 쓸 수 없게 되는 등 사법 환경의 변화도 검찰이 떠안아야 할 부담이다.


대장동 개발 사업 특혜·로비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사면초가에 놓이면서 법조계 안팎에서는 특별검사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하나의 사건을 두고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는데도 검찰이 제대로 소명하지 못하고 핵심 인물까지 연거푸 사망해 조속한 특검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시민 단체 한반도인권과통일을위한변호사모임은 이날 “건국 이래 최악의 개발 비리 의혹 사건과 관련한 핵심 인물들의 의문스러운 죽음이 이어지고 있다”며 “하루빨리 특검을 실시해 이 정권에서 계속되고 있는 죽음의 행진을 끝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장동 게이트 특검 촉구 전국 변호사 서명운동’에 이날 오전 11시 기준 전 대법관과 법원장, 지검장, 변호사 단체 회장 등 주요 법조인을 포함해 전국 512명의 변호사들이 동참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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