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기저 질환이나 장기간 복용하는 약이 있나요. 오늘 입소하면 열흘 정도 있게 됩니다. 속옷 두세 벌을 준비해두세요. 저녁 식사를 하지 않았으면 도시락을 방 앞에 놓아두겠습니다. 초콜릿이나 캔디 같은 것을 준비하면 좋습니다.”
서울의 한 모텔에 마련된 코로나19 생활치료센터 사무실. 3평 남짓한 공간에 있는 것이라고는 조그만 냉장고와 침대, 책상과 컴퓨터 한 대가 전부인 이곳에서 한 의사가 코로나19 확진으로 입소가 결정된 확진자와 전화로 숨 가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입소자는 이날만 7명째. 센터의 44병상은 이미 확진자들로 초만원이다.
이 생활치료센터의 책임자는 서명옥(61) 전 서울 강남보건소장. 하루 7,000~8,000명의 확진자가 나오는 요즘은 매일매일 전쟁 그 자체다. 서 전 소장은 “확진자가 발생하면 전화 인터뷰로 입소시킬지를 결정하고 판정이 끝나면 처방을 내린다”며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7시까지 하루 10시간씩 일하고 집에 와서도 휴대폰을 켜두다 보니 녹초가 되기 일쑤”라고 설명했다.
그뿐 아니다. 일부 센터 입소 환자들의 불평도 들어야 한다. “왜 자꾸 전화하느냐”고 호통치거나 막무가내로 “나가겠다”고 할 때는 참 난감했다고 한다. 그래도 반입이 금지된 황도 통조림을 먹고 싶다는 환자를 위해 플라스틱 그릇에 복숭아를 담아 올려주고 나서 “고맙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피로가 가신다.
서 전 소장은 사실 이런 일이 이미 일상이 된 지 오래다. 그는 지난해 2월 26일 오후 2시 KTX를 타고 신천지발 집단감염으로 극심한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던 대구 의료진을 지원하기 위해 달려갔다. 코로나19 사태 지원을 위해 달려온 1호 자원봉사 의사다. 대구시장과 남구청장, 서울 강남구청장으로부터 감사장을 받은 것도 이 무렵이다. 이후 코로나19가 약간 소강상태에 진입했던 석 달을 제외하고는 거의 매일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최전선을 지켰다. 이렇게 보낸 시간이 거의 600일 가까이 된다.
지난 1년 10개월 동안 그의 손을 거쳐 간 코로나19 환자도 검사자를 포함해 약 5만 명에 달한다. 요즘도 그가 맡은 생활치료센터 2곳에 하루 적게는 100여 명, 많게는 300~400명이 그를 찾아온다. 피곤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그는 지금까지 감기조차 걸린 적이 없다. 그만큼 몸 관리를 철저히 하고 있다는 의미다. 의사가 본보기를 보이지 않으면 어느 환자가 믿겠느냐는 생각에서다. 가끔 경락 마사지를 받는 것도 피곤하지 않기 위해서다. 그는 “가장 좋은 컨디션을 유지해야 내가 감염이 안 되고 환자에게도 집중할 수 있다”며 “내 모든 스케줄은 생활치료센터 출퇴근에 맞춰져 있다”고 덧붙였다.
서 전 소장은 지난 1985년에 의사, 1989년에 전문의 자격증을 땄다. 의사 생활만 벌써 32년째다. 자원봉사에 나선 의사들 중 최고참에 속한다. 지난해에는 14년간 지냈던 강남보건소장에서 정년 퇴임을 맞기도 했다. 남들 같으면 편히 쉬고 싶은 나이에 왜 자원해서 힘든 일에 나섰는지 궁금했다. 돌아온 대답은 감염병의 심각성과 파급 효과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나서는 게 맞는다는 것이었다.
자신이 의사 면허증을 갖게 된 데 대해 매우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서 전 소장은 “코로나19가 급속히 확산하면서 여기저기서 의사들이 너무 부족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며 “의사로서 국가 위기 상황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할 뿐”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코로나19, 특히 백신 정책과 관련해서는 진한 아쉬움을 표했다. 감염병은 ‘두려움과의 전쟁’인 만큼 논리적으로 접근할 게 아니라 정부가 국민을 최대한 다독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상황이 워낙 급하다 보니 10년에 걸쳐 만들었어야 할 백신을 1년 만에 내놓았고 그 결과 부작용도 많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정부가 백신 접종 후 사망한 사례에 대해 무조건 인과성이 없다고 주장할 게 아니라 적절한 보상을 해줘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