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25년차 무명 배우에서 트로트 서바이벌 우승자로. 2020년은 박세욱에게 잊을 수 없는 해였다. ‘보이스트롯’이 MBN 개국 이래 역대급 시청률을 달성했고, 고스란히 그 스포트라이트는 박세욱에게 왔다. 타 방송국의 트로트 서바이벌 출신 가수들의 인생이 바뀐 것처럼, 곧 그렇게 되겠다는 생각에 부풀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코로나19라는 직격탄이 오면서 박세욱은 다시 초심 찾기에 나섰다.
지난 2020년 9월에 종영한 ‘보이스트롯’은 MBN이 야심차게 내놓은 200억 프로젝트로, 톱스타 80명이 트로트 가수에 도전한다는 점에서 여타 트로트 서바이벌과 차별화를 뒀던 프로그램이다. MBN 개국 이래 18.1%(닐슨코리아/전국유료)라는 역대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며 국민 프로그램으로 거듭났다. 이후 박세욱의 고향인 경기도 안양에 플래카드가 안 걸린 곳이 없을 정도였고, 인터뷰 요청도 쇄도했다. 그는 ‘인생앨범 - 예스터데이’ ‘트롯파이터’ 등 MBN 음악 예능에도 꾸준히 출연했다. 그러나 대중의 관심은 오래가지 않았다.
“다음 방송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순서가 계속 밀리다 보니 일이 잘 안 풀렸어요. 행사도 계속 없었죠. ‘보이스트롯’ 팀 전국투어 콘서트와 개인적으로 서울에서 콘서트 계획이 4회 정도가 있었는데, 1회만 하고 아예 콘서트를 못했어요. 프로그램이 끝나고 나면 콘서트를 하면서 팬들과 친밀도도 높아지고 팬층도 다양해지는 것인데 그런 시간을 못 가져서 아쉽더라고요. 어쩌겠어요. 코로나19는 재앙이고 재난인데.”
당시에는 트로트 서바이벌의 물꼬를 튼 TV조선 ‘미스터트롯’과 ‘보이스트롯’이 항상 함께 언급되면서 박세욱을 보고 ‘제2의 임영웅’ ‘MBN의 임영웅’이라는 타이틀로 부르는 이도 있었다. 박세욱은 이런 수식어가 부담과 기대로 다가왔지만, 그에 걸맞은 후폭풍은 없었다고 털어놨다.
“‘나도 이제 세상에 내 이름을 알릴 수 있구나’라고 많은 기대를 했었죠. 그때는 ‘미스터트롯’이 정말 난리였기 때문에 ‘미스터트롯 인기의 절반 정도만 되더라도 내 사생활은 없다’ 정도로 생각했었거든요. ‘이제 동네에서 술 한 잔도 못 먹겠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동네에서 편하게 먹어요. 원래 살가운 성격이라 팬들이 알아봐 주면 사진도 찍어주고 사인도 해주고 하는데 너무 몰리지 않고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팬들만 알아봐 주고 있어요.”(웃음)
‘보이스트롯’에서 선의의 경쟁을 펼쳤던 준우승자 김다현은 그 사이에 ‘미스트롯2’에 출연해 3위를 차지했다. 서바이벌 준우승자가 타 방송사 경쟁 프로그램에 출연한다는 것은 파격적이었기에 많은 관심이 쏠렸고, 박세욱 또한 함께 마음 졸이며 지켜봤다.
“혹시나 ‘다현이가 그런 이유만으로 잘 안되면 어떡하나. 정말 잘하는 아이인데’ 싶었어요. 그런데 역시 실력을 이기는 건 없더라고요. 정말 잘했고, 딱 맞는 자리에 섰다고 생각했어요. 요즘에는 다현이와 따로 연락하지는 않는데 SNS로 간간이 ‘좋아요’를 눌러주고 있어요.”(웃음)
기대가 컸을 뿐이지 박세욱의 인생에도 큰 변화가 온 것임에는 틀림없다. 초등학생 때 처음 연기를 시작한 뒤로 25년간 연극이나 뮤지컬 무대에 섰지만, 무명에 가까운 생활을 이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1억원의 상금으로 학자금 대출도 갚을 수 있었고,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며 아들 노릇도 할 수 있었다. 회사와도 나눈 뒤 남은 금액으로 본인에게 선물을 하기도. 박세욱은 “난 이 시계만 남았다”며 손목에 있는 시계를 보여주며 웃어 보였다.
“사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누군가에게는 저도 꿈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서바이벌에서 우승해서 음반을 내고, 드라마 주인공을 하고, 대중에게 얼굴을 많이 알리게 됐잖아요.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앞만 볼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를 잘 다독이면서 한발 한발 차분히 나아가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초심 잃지 않고 평생 가겠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팬들을 직접 만날 수 있는 행사나 콘서트는 줄었지만, 박세욱은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었다. 지난 1월에는 코로나19로 힘든 시국에 대중에게 즐거움을 주겠다는 마음으로 신나는 댄스 트로트 ‘백프로’를 선보였고, 지난 7일에는 주특기인 감성 발라드 곡 ‘메모리’를 발표했다. 이미 박현진 작곡가와 박박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녹음해 놓은 곡들임에도 1년간 공백을 가진 것은 이유가 있었다.
“트로트 같은 경우에는 곡을 내면 한 곡으로 활동을 오랫동안 해요. 원래 7월에 신곡을 내려고 했는데, ‘백프로’를 대중에게 알리려고 하다 보니 늦어졌죠. 그러다가 발라드다 보니까 늦가을이나 겨울로 날짜를 미루는 게 좋다는 의견이 나와서 이제서야 발매하게 됐어요. 두 곡 말고도 한 곡이 더 남아 있어요.”
최근에는 연기도 다시 시작했다. 갈등을 빚는 부부들의 이야기를 각색한 드라마 ‘사랑과 전쟁’의 새 시즌에 합류했다. 연극 무대에 서던 시절 알고 지낸 대표가 카카오TV ‘NEW 사랑과 전쟁’ 제작자가 됐고, 노래하면서 연기할 수 있는 남자 배우를 찾던 와중에 박세욱이 눈에 띄게 된 것이다. 한동안 연기를 하지 않았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다른 좋을 일들이 생기길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제가 단국대학교 연기 전공이고, 그동안 단편이나 독립영화를 많이 했었는데 드라마 연기를 한 건 초등학교 때 ‘TV는 사랑을 싣고’ 이후 처음이에요. ‘사랑과 전쟁’이라고 하면 약간 극적인 연기를 생각했는데 이번에 스타일이 많이 바뀌었더라고요. 그래서 실생활 연기를 할 수 있게 됐어요. 확실히 오랜만에 카메라 연기를 하다 보니까 어색했어요. 감독님들도 잘 리드해 주신 덕분에 열심히 따라갔어요.”
이제 다시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박세욱. 생각지도 못했던 코로나19라는 장애물로 인해 우승의 기쁨을 너무 짧게 맛봐야 했지만 아직 실망하기엔 이르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평생 어디든지 도전하겠다”는 열정과 패기로 앞으로 나아갈 예정이다.
“젊은 나이에 경험이 재산이잖아요. 계속해서 도전하는 선배님들 모습을 보면 존경스러울 뿐이거든요. 좋은 선배님들 뵙고 많은 걸 배웠기 때문에 그 모습을 따라가고 싶어요. 노래와 연기 중에 뭐가 더 중요하다고 하긴 어렵지만, 많은 분들이 저를 가수로 알고 계시잖아요. 그래서 가수로서 역할을 충실할 거예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면 두배, 세배로 더 열심히 뛰어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고요.”
“코로나19 시국에 많은 분들이 지쳐계실 것 같아요. 우리가 이럴 때일수록 희망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 희망은 결국 가장 옆에 있는 소중한 사람에게 나오는 것이고, 내가 곧 누군가에게 소중할 사람일 수도 있고요. 다들 희망을 잃지 않도록 오늘도 힘을 내서 행복하게 사셨으면 합니다. 저도 희망을 잃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