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설강화' 논란 ...집단주의 우려에도 MZ세대 보이콧 확산

가치소비·적극 의견표명 특성 반영
방영중지 청원에 협찬기업 압박
'조선구마사' 이어 또 비슷한 사례
표현의 자유 위축 우려 목소리 커져

드라마 설강화 홍보 포스터. /JTBC 홈페이지

청와대 국민 청원에 이어 방영 중지 가처분 신청까지 제기되는 등 드라마 ‘설강화’를 둘러싼 보이콧이 거세지고 있다. 설강화는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지난 1987년을 배경으로 한 로맨스 드라마다. 하지만 간첩을 운동권 학생으로 오인해 구해주는 등의 내용으로 민주화 운동을 폄훼하고 국가안정기획부를 미화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가치 소비를 중시하며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명하는 MZ세대의 특성이 반영됐다는 게 학계의 대체적인 평가다. 반면 드라마 ‘조선구마사’가 역사 왜곡 논란으로 폐지된 지 9개월 만에 비슷한 사례가 나오자 자칫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23일 청와대 홈페이지에 따르면 설강화 폐지 요구 국민 청원이 게재된 지 3일 만인 이날(오후 4시 기준) 약 34만 명의 동의를 받았다. 이는 18일 첫 회가 방영된 지 나흘 만이다. 청원자는 “근거 없이 간첩으로 몰려 고문을 당하고 사망한 운동권 피해자들이 분명히 존재한다”며 “그런데도 저런 내용의 드라마를 만든 것은 민주화 운동의 가치를 훼손시키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간첩이 섞여 있다’며 민주화 운동을 탄압한 당시 정권의 논리가 드라마에 녹아 있다는 주장이다.


설강화 보이콧은 제작 지원 기업 목록이 각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온라인 커뮤니티로 퍼지는 등 확대일로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드라마 보이콧이 협찬 기업 제품 불매로 번질 조짐을 보이자 결국 다이슨과 푸라닭 등 10여 개 기업은 협찬, 제작 지원을 철회했다. 특히 청년 단체 ‘세계시민선언’은 22일 서울서부지법에 설강화 상영 금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네티즌들은 또 설강화의 문제점을 다룬 글을 영문으로 작성해 해외 커뮤니티에 배포했다.



치킨 프랜차이즈 브랜드 '푸라닭'이 설강화 제작지원을 철회한다는 입장을 밝혔다./푸라닭 공식 인스타그램

방송사 항의를 넘어 다양한 형태로 보이콧 활동이 전개되는 데 대해 학계에서는 가치 소비를 중시하는 MZ세대의 특징이 반영된 결과로 분석한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요즘 소비자들, 특히 MZ세대는 가치관에 따라 적극적으로 소비 혹은 불매를 결정하고 이를 표명하는 특징이 있다”며 “인터넷을 잘 다루는 만큼 의견을 모으고 이슈화하는 데도 능숙해 문제 제기가 많은 공감을 얻기만 한다면 보이콧운동으로 쉽게 확대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신속성과 적극성을 골자로 한 최근 보이콧운동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이들 움직임이 기업의 자정을 이끌어내는 순기능도 있지만 자칫 집단주의의 오류에 빠질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인터넷이 워낙 짧은 시간 안에 의견이 모이다 보니 잘못된 주장이 퍼지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억울한 희생자가 나올 수도 있다”며 “집단행동이 항상 좋은 결과를 내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최근 드라마 분야에서 역사 왜곡을 문제 삼은 보이콧 행위가 잇달아 나오며 자칫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수 있다는 의견이 상당하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민주화 운동을 시대 배경으로 가볍게 다뤘다는 비판은 충분히 제기할 수 있지만 곧바로 폐지를 요구하는 것은 콘텐츠 발전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조선구마사 폐지 과정에 대한 논문을 쓴 주창윤 서울여대 언론영상학부 교수도 “광고주를 압박해 드라마를 중단시키는 식으로 보이콧이 이어지면 창작자들의 자기 검열이 심해질 수 있다”며 “드라마가 아직 2화까지밖에 방영되지 않았는데 더 지켜보고 판단해도 늦지 않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