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박근혜 전 대통령 특별사면, 한명숙 전 국무총리 복권을 전격적으로 결정한 가운데 이명박 전 대통령은 그 대상에서 제외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치권 곳곳에서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측에 이 전 대통령 측근들이 많이 포진돼 있는 상황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전직 대통령 사면 여부에 윤 후보에 대한 지지 가능성도 참고를 한 게 아니냐는 추정이다. 반면 청와대는 “두 대통령에 대한 여론이 전혀 다르다”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24일 친이계로 분류되는 한 관계자는 서울경제 취재진에 “이 전 대통령이 옥중에서 비공개 서한을 통해 윤 후보 지지 입장을 전했다”고 귀띔했다. 이어서 “이 전 대통령을 대선 전에 사면해줄 경우 윤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해 대선 판도를 흔들 우려가 있어서 박 전 대통령 사면 결정과 분리해 이 전 대통령은 이번 사면에서 제외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현 윤 후보 중앙선거대책위원회에는 이명박 정부에서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임태희 총괄상황본부장 등 친이계 인사가 상당수 포진해 있다. 이날 이명박 정부 청와대 비서실 참모들은 성명을 내고 “이번 사면은 그 시기와 내용 모두 국민 화합 차원이 아니라 정략적인 것”이라며 “이 전 대통령을 사면에서 제외시킨 것은 부당한 사법 처리가 정치 보복이었음을 다시 확인하게 하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사무총장은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결국 야권의 분열을 노린 더불어민주당과 문재인 정부의 정치적인 술수”라며 “김경수 전 경남지사만 사면했을 경우 정치적 비난을 피하기 위해 이 전 대통령을 남겨둔 게 아닌가”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선거 등 정치적 고려를 한 결정은 아니라며 선을 그었다. 다만 박 전 대통령과 이 전 대통령 간 차이가 무엇인지는 명확히 설명하지 않았다. 이 관계자는 “박 전 대통령과 이 전 대통령은 경우가 많이 다르다”며 “확연히 구분된다. 여론조사에 입각하지는 않았겠지만 내가 본 여론조사에는 두 분의 차이가 컸다”고 주장했다.
이번 사면 대상에서는 주요 기업인이 눈에 띄지 않는 점도 특징이었다. 특별사면 대상자 3,094명 중 경제 관련 인사는 소상공인·중소기업인 38명에 불과했다. 대기업 관계자는 사면 대상에서 애초부터 빠진 것이다.
특히 정치인들보다 사면 찬성 여론이 더 높은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부회장이 빠졌다. 현 정부 동안 사면 조치를 받은 재벌 총수는 지금껏 단 한 명도 없다. 이는 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부 기조와도 크게 다른 부분이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이 앞서 뇌물·알선수재·알선수뢰·배임·횡령 등 ‘5대 중대 부패 범죄’의 사면은 배제하겠다고 공약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해당 원칙을 정치인 등이 아닌 기업인들에게만 유독 엄격하게 적용하는 게 아니냐는 논란은 피할 수 없게 됐다.
자칫 ‘재벌 봐주기’ 여론을 촉발해 대선 정국에 악영향을 미칠까 봐 이 부회장을 사면 대상에서 제외한 게 아니냐는 시각도 제기된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대선 정국에서의 이 부회장 등의 사면은 재벌 편이라는 생각을 강하게 들게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