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흔들리던 중앙선거대책위원회의 운전대를 잡았다. 가족 의혹과 내부 분열에 더해 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이라는 변수까지 덮치자 윤 후보는 28일 새벽 비상회의를 띄우며 선대위를 사실상 ‘전시체제’로 전환했다. 조국 사태와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의 갈등 등 위기 상황에서 존재감을 과시해온 윤 후보가 연말 정국을 정면 돌파하기 위한 정치에 나섰다는 분석도 나온다.
윤 후보는 이날 오전 7시 중앙당사에서 처음으로 총괄본부장단 회의를 소집했다. 윤 후보는 이 자리에서 “대선이 두 달 앞으로 다가온 만큼 선거대책위원회 간부들부터 심기일전해 선거운동에 임해야 한다”고 말했다. 선대위는 이날 회의를 기점으로 지방 일정 등이 없는 날을 제외하고는 매일 본부장단 회의를 연다. 회의는 윤 후보가 본부장들과 직접 만나 현안을 논의하고 메시지를 낸다. 본부장 회의가 생기면서 이준석 대표의 상임선대위원장 사퇴를 초래했던 비선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 논란은 설 곳을 잃게 됐다. 회의는 매일 오전 7시에 개최될 예정이어서 관련 논제 등을 정리하려면 선대위는 새벽부터 움직여야 한다. 선대위가 사실상 비상 체제로 전환한 셈이다.
윤 후보는 회의 후 참석한 방송기자클럽 주최 토론회에서도 단호한 모습을 보였다. 우선 사안에 대한 메시지부터 선명해졌다. 자신이 구속 수사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입장이 대표적이다. 지난 24일 사면 발표 당시 윤 후보는 “(건강을) 빨리 회복하기를 바라겠다”는 말 외에는 별도의 입장이 없었다. 또 경선 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의 수사를 묻는 질의에 “법리와 증거에 기반한 일로 사과한다는 것은 맞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이날 토론회에서는 “박 전 대통령 수사는 공직자로서 제 직분에 의한 일이었다 하더라도 정치적·정서적으로는 대단히 미안한 마음을 인간적으로 갖고 있다”며 공개적으로 사과했다. 이와 함께 ‘전두환 옹호’ 발언과 관련해 “호남인들의 트라우마를 건드리지 않았나 해서 깊이 사과를 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부인 김건희 씨를 둘러싼 허위 경력 의혹에 대해서는 “진정한 마음에서 (사과를) 한 것이라고 말씀드리겠다”며 몸을 낮췄다.
윤 후보는 특히 이 대표를 향해 “대단한 능력을 가진 분이고 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추켜세웠다. 이 대표는 선대위에서 사퇴한 뒤 연일 윤 후보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왔다. 이런 가운데 윤 후보가 직접 이 대표에게 “역할을 해달라”고 공개적으로 주문하면서 이 대표와의 갈등을 수습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윤 후보가 매일 주재할 본부장단 회의에는 이 대표의 보직인 홍보미디어총괄본부장이 공석으로 남아 있다. 이 대표가 복귀할 공간을 열어두고 화해의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나아가 방향이 모호하다던 ‘정책 메시지’ 역시 분명해졌다. 윤 후보는 특히 ‘금기어’가 된 연금 개혁에 대해 “초당적인 연금개혁위원회를 만들어 국민 대합의를 이끌어내겠다”고 공약했다. 또 미래 기대 수익이 높은 청년에게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을 높이는 방식을 제안하며 “로또 수준의 원가주택을 공급하겠다”고 약속했다.
당 안팎에서는 윤 후보가 현 국면을 전시체제로 규정하고 직접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윤 후보는 비상 회의를 시작해 토론회, 주한미국상공회의소 간담회, 국가균형발전 보고회, 내일이 기대되는 대한민국위원회 등 5개 이상의 일정을 소화했다. 연말을 앞두고 29일부터는 2박 3일간 대구·경북(TK)과 충청을 찾는다. 사과와 함께 TK 지역을 방문해 오는 31일 사면되는 박 전 대통령을 둘러싼 문제를 선제적으로 매듭지으려는 행보로 해석된다. 또 정치적 기반인 충청을 찾아 결속을 주문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윤 후보가 모든 리스크를 연말에 종식시키고 ‘원팀’으로 새해를 맞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김병민 선대위 대변인은 “윤 후보께서 선거 승리를 위해 적극적인 결의를 보이고 있다고 보시면 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