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NDC 40%' 외치면서 책임은 회피…'20조 탄소세' 나몰라라

■'탄소세 초안' 대선 후로 미룬 정부…稅부담 줄줄이 떠넘겨
이재명, NDC 50%까지 추진…세수 언급없이 장밋빛 전망만
佛·호주도 탄소세 도입 후 저항 만만찮아 결국 폐지하기도
"탄소중립 정책 투명하게 공개하고 국민 설득 과정 거쳐야"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 내 탄소 감축에 속도를 내왔다. 지난해 2050년 탄소 중립(국가의 탄소 순배출량이 0인 상태) 달성을 공언한 데 이어 지난 10월에는 중간 목표 격인 2030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40%까지 끌어올렸다. 유력 대선 주자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한발 더 나가고 있다. 탄소 중립 달성 시점을 10년 더 당기고 NDC도 50%까지 인상하겠다는 게 이 후보의 생각이다. 하지만 장밋빛 목표치를 내놓으면서 그 누구도 탄소 감축에 따를 비용은 일절 언급하지 않고 있어 비판의 목소리가 많다.


정부의 탄소세 용역 보고서가 주목받는 것은 이 같은 배경에서다. 보고서에는 사회 각 부문에 부과될 탄소세 수준과 이를 통해 걷힐 세금 규모가 담길 것으로 전망된다. 탄소세 명목으로 걷히는 총세수는 우리 사회가 탈탄소 사회로 가기 위해 감당해야 할 비용이다. 보고서는 현 정부와 여당이 밀어붙여온 탈탄소 정책의 청구서인 셈이다.


하지만 올해 말까지 연구 용역을 마치겠다던 정부는 말을 뒤집고 공개 시점을 미뤘다. 특히 연구 만료 시점을 내년 3월 이후로 잡은 것을 두고 정치적 고려를 한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된다. 전기료와 가스요금 인상에 이어 탄소세 초안 공개 일정까지 대선 이후로 미루면서 정부가 정책에 따른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NDC 설정에 관여한 한 인사는 “현 정부가 설정한 40% 감축 목표치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수준”이라면서 “안 되는 것을 되게 하겠다며 세금을 매긴다면 사회적으로 감내하기 어려운 수준의 비용이 들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정부가 보고서 공개에 부담을 느끼는 이유 중 하나는 탄소세 세수 규모가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돼서다. 사회 전 부문에 배출된 탄소에 과세를 한다고 단순 가정해 2030년 국가 온실가스 예상 배출량(4억 3,660만 톤)을 기준으로 세수 규모를 추정하면 한 해 탄소세 세수는 18조 3,000억~19조 9,000억 원(환경연구원 배출권 가격 전망 인용, 톤당 36.5~39.7달러)으로 추산된다. 다만 정부 관계자는 “톤당 얼마의 세금을 부과할지는 사회적 합의 등을 고려해 결정되기 때문에 세수 규모를 예단하기는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연간 20조 원에 달하는 세금을 추가로 더 걷어야 한다면 조세저항이 커질 수밖에 없다. 실제 탄소세 도입을 추진했던 주요국 사례를 보면 2018년 프랑스를 휩쓸었던 노란 조끼 시위대의 발단은 에마뉘엘 마크롱 행정부가 도입한 탄소세 성격의 유류세 인상이었다. 호주는 2012년 탄소세를 도입한 후 에너지 소비자에 따른 부담이 커지자 시행 2년 만에 폐지를 결정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이 같은 사례를 거론하며 “각국의 탄소세 시행·논의를 보면 탄소세 도입 시 급격한 조세 부담 증가, 배출권거래제와의 중복 규제 문제, 조세저항 등의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한 논의의 필요성을 시사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현 정부에 이어 여당 대선 후보까지 ‘묻지 마 탈탄소’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는 터라 탄소세의 윤곽이 드러나면 당정을 향한 비판이 커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정부는 용역 과정 중 감축 목표가 달라진 데 따라 불가피하게 용역 기한을 연장했다는 입장이다. 정부가 10월 NDC를 40%로 상향 조정하면서 발전과 산업·수송 등 부문별 감축 목표치도 재설정됐는데 이를 달성하기 위해 탄소세를 얼마나 더 부과해야 할지 다시 따져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탄소세 도입 시 배출권거래제 등 기존 제도와의 상충 여지도 두루 살펴야 하는 점 역시 일부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기재부 관계자는 “연구 용역 시점을 미루는 일은 빈번하다”며 “(탄소세 연구 용역 시점을 연기하는 데) 정치적 고려가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탄소세 초안 공개 일정마저 늦춰지면서 정부가 그간 밀어붙였던 정책의 후폭풍을 회피하고 있다는 지적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전날 전기요금을 내년 4월과 10월에 인상하겠다고 밝힌 것 역시 비판을 키우는 대목이다. 탈원전과 신재생에너지 확대 등 현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전기요금 인상을 부추겼음에도 정부는 내년 1분기 전기요금만은 현 수준으로 묶어뒀다. 정부는 가스요금을 인상하겠다면서도 인상 시기는 내년 5월 이후로 정했다.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민심의 이반을 우려해 요금을 동결했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국책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모든 정책에는 득실이 함께 따르기 마련”이라면서 “반드시 추진해야 할 일이라면 그 과정에서 감내해야 할 부분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국민을 설득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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