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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철한 국정원 간부(MBC ‘검은 태양’)와 권력을 쥐기 위해 범죄도 서슴지 않는 법무부 장관(tvN ‘악마판사’), 선한 간호사의 얼굴을 한 사이코패스(tvN ‘사이코지만 괜찮아’) 등 드라마 속 강렬한 캐릭터와 인상적인 연기로 시청자의 눈을 사로잡아 온 배우 장영남(사진)이 4년 만에 자신의 뿌리인 연극 무대로 돌아온다. 2018년 공연 당시 묵직한 울림과 에너지로 호평받은 ‘리차드 3세’를 통해서다. 영국 리처드 3세를 모티브로 셰익스피어가 탄생시킨 이 작품은 명석한 두뇌와 언변을 가졌지만 신체적 결함과 추한 외모로 외면당하며 자란 ‘리차드 3세’(황정민)가 권력욕을 갖게 되면서 벌이는 피의 대서사시다. 장영남은 이 피의 군주의 형수이자, 권력을 사이에 두고 그와 팽팽한 경쟁 구도를 이루는 엘리자베스 왕비 역을 맡았다. 오랜만의 연극 공연을 앞둔 그는 최근 진행된 온라인 인터뷰에서 “뭔가 허전할 때, 새로운 에너지가 필요할 때 찾는 것이 연극”이라며 “리차드 3세가 바로 그 헛헛함을 채워줄 작품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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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달아 드라마를 끝내고 숨 고를 시간이 필요한 때였다. 휴식이 절실할 법도 했지만, ‘리차드 3세’ 출연 제안에 장영남은 주저 없이 “하고 싶어요”라고 답했다. 연극과 셰익스피어, 황정민이라는 조합도 매력적이었지만, 17년 전 참여했던 작품을 그때와 같은 무대(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에서 다시 선보인다는 게 “배우로서 영광스럽고 그래서 더 욕심나는 기회”였다. 그는 2004년 동일 작품에서 리차드 3세를 증오하지만, 음모에 넘어가 철저하게 이용당하고 파멸의 길로 들어서는 미망인 ‘앤’을 연기했다. 장영남은 “그 사이 나 역시 결혼해 아이의 엄마가 됐다”며 “엄마로서 모든 것을 이겨내고 지켜내려는 강인한 엘리자베스 캐릭터가 더 와 닿는다”고 말했다. 그가 꼽은 엘리자베스의 명대사 역시 강인한 모성이 느껴지는 다짐이다. ‘파괴여, 죽음이여, 학살이여! 내게서 소중한 것을 빼앗아 갈 것이라면 차라리 어서 다가와라. 나 어머니라는 신성한 이름으로 버텨낼 테니.’
무대에서 불꽃 튀는 권력 투쟁과 연기 전쟁을 펼칠 상대는 배우 황정민이다. 장영남은 “초연 때 선배의 에너지가 매우 좋았기에 재공연에서 ‘누가 되지 않게 치열하게 해야겠다’는 생각 뿐”이라며 “연습 때마다 선배가 뿜어내는 열정에 더욱 용기를 얻게 된다”고 강한 신뢰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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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드라마와 영화에서 활약하는 장영남의 뿌리는 연극 무대다. 1995년 극단 ‘목화’ 단원으로 데뷔한 그는 “무대는 나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어 준 공간”이라고 자부한다. “대사가 많지 않던 시절에도 할 때마다 설레고 무대에 선 것만으로도 신나서 죽겠더라”는 그는 연극판에서 자란 여느 배우들처럼 무대가 곧 고향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연극은 장면 별로 촬영하는 방송이나 영화와 달리 한 무대가 끝날 때까지 모든 배우와 스태프가 함께 부여잡고 가는 긴 호흡이 있다”며 “그 호흡과 에너지를 잊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올 한해 ‘다작(多作)’하며 쉼 없이 달려왔다. 스스로에게 ‘영남아, 수고했어’라고 칭찬해주고 싶다는 그는 “내년에도 최선을 다해 새로운 캐릭터를 고민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