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개혁 골든타임 앞으로 5년 …재정 절벽 앞에 선택지는 없다” [청론직설]

◆이혁우 배재대 행정학과 교수
규제 혁파 ‘퀀텀점프’ 못하면 함께 못 사는 나라로 추락
정부, 민간보다 문제 해결 뛰어나다는 환상부터 버려야
‘착한 규제’는 없어…규제 개혁 회피·호도하는 프레임
대선후보, 개혁 진정성 있다면 ‘청부입법’ 근절 선언을




이혁우 배재대 교수는 “규제 개혁의 출발점은 정부가 민간보다 문제 해결 능력이 뛰어나다는 환상을 버리는 것”이라며 “규제는 원래 의도했던 정책 목표 달성이 어렵거나 부작용이 더 많으면 폐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승현 기자

역대 정부마다 규제를 혁파하자는 목소리는 높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규제 대못을 뽑겠다”고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규제를 ‘손톱 밑 가시’로 규정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붉은 깃발을 치우겠다”고 큰소리쳤다. 그럼에도 규제의 대못과 가시, 붉은 깃발은 그대로다. 블록체인과 공유 경제, 자율 주행 등 미래를 주도할 혁신 기술과 융복합 신산업은 여전히 규제 장벽에 막혀 신음하고 있다. 이번 대선 정국에서도 후보들은 규제 개혁을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우지만 또다시 ‘희망 고문’이 될지도 모른다. 최근 ‘규제를 규제한다’는 규제 행정 비판서를 발간한 이혁우 배재대 행정학과 교수를 29일 만났다.



-규제 개혁은 구호만 요란했지 체감도는 떨어진다.


△국민들은 일상 생활에서 규제가 없어진다 해도 잘 모르는 경향이 있다. 규제에 익숙해진 측면도 있다. 그래서 규제를 ‘방 안의 코끼리’라고 부른다. 방 밖에 있는 사람은 알아도 정작 안에 있는 사람은 코끼리의 존재를 모르는 것이다. 하지만 기업은 다르다. 민감도가 대단히 높다. 일상적으로 인허가와 맞닥뜨린다. 규제의 체감도는 덧셈이 아닌 곱셈의 법칙이 적용된다. 예컨대 골프장을 짓는 데 도장 900개가 필요하다는 말이 회자된 적이 있다. 그런데 899개의 도장을 받고 단 1개의 도장을 받지 못하면 골프장을 짓지 못한다. 공무원 입장에서 규제 개혁은 덧셈이지만 국민 입장에서는 곱셈인 셈이다.


-‘규제를 규제해야 한다’고 역설했는데.


△정부가 국민을 괴롭히려고 규제를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규제의 품질과 애프터서비스다. 규제로 인한 부작용이 더 크거나 원래 의도한 목표 달성이 안 된다면 멈춰야 한다. 정부와 국회는 곧잘 ‘착한 규제’와 ‘나쁜 규제’를 들먹인다. 이런 프레임을 씌우면 규제 개혁의 본질이 흐려진다. 합리적 규제와 비합리적 규제가 있을 뿐이지 착한 규제는 없다. 의도가 선하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결과를 낳지는 않는다. 부동산 대책이 대표적이다. 공급을 늘릴 방안을 찾아야지 규제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은 착각이다. 정부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정부 만능주의의 참담한 실패다. 규제 개혁의 출발점은 정부가 민간보다 문제 해결 능력이 뛰어나다는 환상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규제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규제 비용이 너무 높다. 세계경제포럼 (WEF)과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의 평가를 보면 높은 수준의 규제는 경직된 노동시장과 더불어 국가 경쟁력을 갉아먹는 요인으로 꼽힌다. 이달 초 발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상품시장규제지수는 회원국 가운데 여섯 번째로 높았다. OECD 회원국 중 우리만의 특징이 있다. 역대 정부마다 규제 개혁에 많은 공을 들여왔다. 그러면 당연히 규제 순위가 올라가야(규제 부담이 낮아진다는 의미) 하는 데도 답보 상태다. 이는 규제 개혁의 가성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규제 개혁의 비효율성은 왜 발생하는가.


△이해 관계자의 반발, 공무원의 보신주의 등도 원인이겠지만 규제의 틀을 바꾸지 않고 가지치기만 해서 그렇다. 규제의 뿌리를 쳐내지 않으니 규제가 계속 자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규제 개혁은 집안 청소와도 같다. 방안에 집기들이 잔뜩 있는 상태에서 청소하는 것과 이들을 치우고 청소하는 것의 효율성 차이는 무척 크다. 칸막이 규제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융복합 신산업이 자라나는 데 최대 걸림돌이 된다. 과거의 관행과도 절연해야 한다.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열거한 것만 허용하는 ‘포지티브’ 규제 시스템은 개발 시대의 유물로 박물관에 보내야 한다. 열거한 것 외에 모두를 허용하는 ‘네거티브’ 시스템은 모든 법령에 적용하기 어렵겠지만 의지만 있다면 기업 규제 등 경제 분야부터 적용할 수 있다.


-국회발 규제 입법 남발이 심각한데.


△국회가 스스로 의원 입법에 대해서도 정부 입법처럼 규제 심사를 받도록 하는 게 최선이지만 국회가 법을 만드니 그렇게 될지 의문스럽다. 더 우려되는 것은 정부마저 규제 심사를 회피하기 위해 국회에 법안 발의를 청탁하는 ‘청부 입법’ 관행이 만연해 있다는 점이다. 대선 주자들이 바로잡아야 한다. 규제 개혁의 진정성을 보여주고 싶다면 청부 입법부터 근절하겠다고 선언해야 할 것이다.



‘타다 금지법(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이 지난해 4월 총선을 한 달 앞두고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이 법은 이른바 ‘청부 입법’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연합뉴스

-역대 정부의 규제 개혁을 평가한다면.


△학계에서는 김대중(DJ) 정부의 개혁을 높이 평가한다. 규제 개혁의 틀은 대부분 그때 만들어졌다. 대통령 직속 규제개혁위원회가 탄생했고 행정규제기본법도 만들어졌다. 국가 권력 차원에서 열심히 챙겼고 성과도 있었다. 그다음이 박근혜 정부라고 본다. 다만 세월호와 국정 농단 사태로 임기 막판에 동력을 상실해 아쉽다.


-문재인 정부는 어떤가.


△역대 최악 정부이다. 박근혜 정부가 한 일을 부정하면서 규제 개혁 측면에서 잘못된 길로 갔다. 이념과 가치를 지향해 ‘착한 규제’라는 이름으로 덩어리 규제를 양산해 개혁 의지조차 의심받는다. ‘규제 프리존(규제자유특구)’은 수도권을 배제하면서 지역균형발전론에 매몰됐다. 사실상 배분 정책이다. 규제 샌드박스에 거의 ‘몰빵’한 것도 패착이다. 신산업 분야에 국한된 규제 샌드박스는 사회적 논란 사안이 있으면 제외돼 광범위한 개혁 수단이 되지 못한다. 한시적 규제 유예라는 한계도 있고 한 건 해결하는 데 반 년씩 걸리는 비효율성도 있다. 그 결과 정작 해야 할 것은 손도 대지 못했다. 코로나19 사태로 필요성이 부각된 원격 진료와 원격 교육은 규제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규제 개혁의 성패는 결국 대통령의 일관된 의지에 달린 것 같은데.


△그렇다. DJ 정부 때 성과를 낸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당시 김종필 총리의 의지가 높았다. 그러니 규제개혁위에 힘이 실린 것이다. 집안 청소를 며칠만 하지 않아도 먼지가 쌓인다. 규제 개혁도 그렇다. 일관되게 추진할 거버넌스 구축이 중요하다.



1998년 10월 규제개혁위원회 회의를 주재하는 고(故) 김종필 전 총리. 지금의 규제 개혁 거버넌스는 김대중 정부 시절 대부분 만들어졌다./연합뉴스

-규제 개혁 체계를 어떻게 정비해야 하나.


△정부 내 규제 개혁 DNA를 심어야 한다. 규제 개혁에 친화적인 공무원 집단을 만들자는 말이다. 현재 전담 기구인 규개위가 있지만 비상임 조직이고 사무국도 법률로 명시돼 있지 않다. 국무조정실 내 규제개혁실(1급)에서 그런 역할을 하지만 순환 보직으로 공무원의 전문성 확보와 현장 경험 축적이 어렵다. 국무총리실에 규제 개혁 전담 차관을 두고 사무국을 관장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이렇게 되면 공무원은 공직을 시작할 때부터 과장-국장-실장-차관에 이르기까지 규제 개혁만 전담하면서 전문성을 키울 수 있다.


-규제 개혁을 외치는 대선 후보들에게 조언한다면.


△규제 개혁의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앞으로 5년이 마지막 결정적 순간이라고 본다. 저출산·고령화로 재정 여력이 점차 소진되고 있다. 인구도 줄어들고 잠재성장률도 갈수록 떨어진다. 재정 여력이 고갈되는 상황에서 국가 경쟁력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대안은 과감한 규제 혁파밖에 없다. 대충 시늉만 한다면 미래가 없다. 다 함께 못 사는 나라로 추락할 것이다. DJ 정부 때를 능가할 ‘퀀텀점프’가 필요하다. /권구찬 선임기자 chans@sedaily.com





He is…

1974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고려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규제 이론 분야의 행정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배재대 행정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당시 대통령 직속 규제개혁위원회 전문위원을 거쳐 국토교통부·식품의약품안전처 규제개혁위원, 한국규제학회 연구위원장으로 활동했다. 현재 대통령 직속 규제개혁위 비용전문위원과 특허청·산림청 규제개혁위원 등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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