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전 세계 증시는 경제 권역별로 수익률이 극명하게 갈렸다. 미국 S&P500지수가 신고가를 70번 돌파하며 26.9% 치솟을 동안 대표적인 신흥국인 한국과 중국 증시는 각각 4.8%, 3.6% 오르는 데 그쳤다. 코로나19 회복 속도에서 비롯한 경제 성장률 격차와 강 달러 현상 등으로 지난 하반기 이후 신흥국 증시는 험난한 길을 걷고 있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분산 투자는 더이상 고민거리가 아니라고 전제하면서 임인년 새해에도 선진국 위주의 포트폴리오 구성이 바람직하며 그중에서도 미국이 가장 유망하다고 입을 모았다.
2일 서울경제가 국내 주요 6개 자산운용사를 대상으로 올해 유망 투자처를 설문 조사한 결과 미국이 최선호 투자 지역으로 꼽혔다. 6개 운용사 중 4곳(신한·한국·삼성·KB)이 미국을 단독으로 추천했고, 미래에셋자산운용과 한화자산운용은 각각 미국·유럽, 중국이 올해 글로벌 증시의 주인공이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새해 글로벌 증시가 당면한 가장 도전적인 과제로 인플레이션이 지목된다. 미국의 11월 소비자물가 상승률(6.8%)이 40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고 최근에는 유럽 내 천연가스 가격이 폭등하면서 물가 상승세가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고물가 부담에 글로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경기선행지수는 4개월째 하락하면서 경기 모멘텀도 꺾이는 모습이다. 물가 대응을 위해 올해 미국이 3차례의 금리 인상 추진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기축 통화국으로 달러의 안정성과 높은 정책 여력을 보유한 미국은 불확실성이 제한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경기가 안정세를 보일 때마다 변이 바이러스가 출현해 찬물을 끼얹고 있지만, 백신 공급 우선권과 인프라 투자 등 재정 부양 여력을 갖춘 미국은 이연된 경제 재개 국면에서 차별화된 경기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정상진 한국투자신탁운용 주식운용본주장은 “올해 글로벌 경제의 패러다임은 ‘코로나19 충격 회복’으로 (정책 수단이 고갈된 신흥국과 달리) 미국은 충분한 부양 여력을 갖췄다"며 “새해 신흥국 증시가 기저효과를 누릴 수 있겠지만 물가 부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이 부담이다. 지난 1920년대 미국 증시가 10년간 독보적 호황을 누렸는데, 현재 이 현상이 되풀이되고 있다”고 말했다. 나중혁 신한자산운용 투자전략센터장도 “전 세계 성장 엔진이 됐던 중국의 성장률 둔화, 가계 부채 부담이 올해 신흥국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며 “주식·채권을 막론한 선진국 지역으로의 자금 쏠림은 올해도 계속될 공산이 높다”면서 미국, 일본·호주, 유럽, 아시아 신흥국 순서로 추천했다. 이외 인플레이션 국면에서도 시장 지배력을 바탕으로 가결 결정력을 갖춘 우량 기업이 다수 포진해 있다는 점도 미국을 선호하는 이유로 거론됐다.
규제·전력난 등 악재 쓰나미가 몰아친 중국에서 부의 기회를 발견할 수 있다는 소수 의견도 있다. 부의 집중화를 막기 위한 중국 당국의 규제 기조는 계속될 테지만 규제 정점은 통과했고 경기 경착륙을 막기 위한 재정 정책도 나오면서 하반기로 갈수록 지수 상승 탄력이 커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또한 성공 투자의 기본 원칙은 ‘저렴할 때 산다’는 것인데 현재 중국 증시 밸류에이션은 미국 대비 30% 할인된 상태이며 투자 심리가 약해질 대로 약해져 작은 호재에서 크게 화답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변재일 한화자산운용 WM솔루션운용팀장은 “오는 4분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3기 출범을 위한) 전당대회를 앞두고 사회·경제 안정 도모를 위한 정책이 기대되며 실제 전당 대회 직전 1년간 중국 증시는 평균 30% 뛰었다”며 “친환경 에너지·첨단기술 산업이 성장을 이끌고 부동산 섹터의 위험이 적절히 관리된다면 중국 증시는 재평가 기회를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