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3일 오전 청와대에서 신년사 발표와 함께 정·재계 주요 인사 외에 소상공인 대표, 일반 국민 등과 비대면으로 ‘2022년 신년 인사회’를 진행했다. 이날 신년 인사회에서는 화상 연결된 국민들의 모습이 공개된 가운데, 문 대통령의 등 뒤를 총천연색 호랑이가 꽉 채워 눈길을 끌었다.
호랑이의 해 임인년(壬寅年)을 맞아 청와대가 선택한 호랑이 작품의 주인공은 ‘반전 사진’으로 유명한 현대미술가 고상우의 ‘운명’이다. 지난 2019년 7월 서울 은평구 사비나미술관이 기획한 ‘우리는 서로의 운명이다-멸종위기 동물, 예술로 허그(Hug)’ 전시를 통해 처음 공개된 작품이다. 고 작가는 네거티브 필름의 명암을 뒤집는 반전에 디지털 드로잉을 융합한 자신만의 기법을 고안했다. 그의 동물 연작은 멸종위기 동물을 택해 그 눈동자와 관람객이 정면으로 응시하게 만들어 환경문제를 자각하게 만든다. 이 호랑이 이미지를 통해 지구 온난화 극복을 위해 탄소중립 등을 강조하는 문 대통령의 환경 정책을 암시하는 것으로도 분석된다.
고상우 작가는 이날 서울경제와의 통화에서 “올해가 ‘호랑이의 해’이다 보니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 작품을 이용하고 싶다는 협업 제안이 많았다”면서 “11월 쯤 청와대에서는 연락이 왔기에 기쁘게 수락했고, 작품 제작과 같이 3×4m 크기로 출력해 설치한 것”이라고 말했다. 작품 옆에는 “현대미술가 고상우작가 한국의 멸종된 호랑이를 사진 회화로 탄생시킨 작품으로 ‘생물다양성 보존’이라는 인류의 당면과제를 예술적 시각으로 제시하고 그 해답을 찾기 위한 시도입니다”라고 적은 설명이 붙었다.
고 작가는 사비나미술관의 ‘멸종 위기 동물’ 기획전 참여를 제안받은 후 역사책 등을 조사해 일제강점기 한국의 호랑이 600마리가 일본인들에 의해 사살됐다는 것을 파악했고, 이 작업에 착수했다.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 화려한 무지개 빛 호랑이는 죽지 않고 영원히 살 것 같은 생명력을 과시한다. 얼굴 위를 날아다니는 나비떼에 대해 작가는 “자유의 상징이자 환생의 의미”라고 설명한 바 있다. 당시 작가는 호랑이 외에도 사자,곰,코끼리 등 인간의 욕심에 의해 죽어가는 동물들을 작품에 담았다.
고 작가는 이 작품을 발표한 직후인 2019년 9월 키아프(한국국제아트페어)에서도 같은 주제로 퍼포먼스를 선보였고, 멸종위기 동물을 소재로 관객과 함께 드로잉을 진행하는 등 참여형 작업도 진행했다. 당시 키아프에 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가 다녀가기는 했으나 고 작가와 특별한 인연이 있는 것은 아니다. 청와대 대변인 출신인 더불어민주당 고민정 의원이 KBS 아나운서이던 지난 2006년 부부가 함께 고상우 작가의 인물작업에 모델로 참여한 적 있으나 이번 ‘청와대 호랑이’와는 무관하다. 고 작가는 “고민정 의원은 이번 청와대 신년행사에 제 작품이 사용된 것을 모르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 작가의 호랑이 작품 ‘운명’은 지난해 하반기 전 세계 출시된 삼성전자의 ‘Z플립’ 휴대폰 광고를 위한 콘텐츠로 제공되기도 했다. 작가는 오는 6월 지구온난화에 맞서 야생동물 보호를 위해 활동하는 국제환경단체 WWF와 함께 사비나미술관에서 호랑이 주제의 기획전을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