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가 지난 2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명문 와튼스쿨 경영전문석사(MBA),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에서 연구한 본인의 이력을 꺼냈다. 그는 “전 세계를 가장 크게 변화시킨 힘이 미국과 중국의 신냉전, 핵심은 과학기술의 패권 경쟁”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생존 전략도 과학기술에서 찾는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안 후보는 연간 약 30조 원의 혈세를 쓰는 국가 연구개발(R&D)을 대개조하겠다고 일갈했다. 모델은 정권을 넘어서도 혁신적인 연구를 지속하는 독일 막스플랑크연구회다. 그는 “성공률 98%로 새로운 게 아니라 성공할 연구만 하고 있다”며 “999명이 실패해도 1명이 노벨상을 타도록 혁신하겠다”고 강조했다.
-후보들 가운데 앞장서서 과학기술이 미래라고 강조하고 있다.
△지금 전 세계가 어떻게 흐르는지 봐야 글로벌 세상에서 우리나라가 어느 쪽으로 갈지 알 수 있다. 현재 세계를 변화시키는 힘은 미국과 중국의 신냉전이다. 핵심은 과학기술 패권 경쟁이다.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나. 생존 전략도 과학기술에서 찾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5개 분야(디스플레이, 2차전지, 차세대 원전, 수소, 바이오)의 초격차 과학기술을 우리가 확보하는 공약을 만든 것이다.
-지금도 국가가 막대한 돈을 R&D에 투자하고 있다. 안철수가 하면 달라지나.
△대선 후보 가운데 외국에서 학교를 다니거나 MBA 한 사람은 저밖에 없다. 우리나라(정치권)는 법률가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분들이 하던 일은 과거에 대한 응징이다. 과거만 보던 사람들은 미래를 볼 수 없다. 미래는 모르면 안 보이는 법이다. 제가 최고경영자(CEO) 할 때 정보기술(IT)이 어디로 발전할지 미리 알고 대비했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정치를 하면서도 세계의 흐름을 이제 다방면으로 보고 있다.
-어떻게 미래 먹거리를 찾겠다는 것인가.
△예산을 관리하는 방식을 바꾸겠다. 사람들은 다 ‘게임의 룰’에 따라서 최적화되고 그 안에서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 우리의 국가 R&D 사업은 관료들에게 맞춰져 있다. 패션처럼 인공지능(AI)이 뜨면 전부 AI 연구로 간다. 유행에 따라 미리 영역을 정하고 결과만 따진다. 또 결과만 보고 실패하면 다음 연구비를 끊어버린다. 그래서 정부 프로젝트 성공률이 98%다. 다 성공하는 것만 신청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노벨상도 못 받고 산업화도 못 한다. 정부 기술로 산업화에 성공한 예가 있느냐.
-개혁의 모델이 될 나라나 연구소를 예로 들어달라.
△제가 독일 막스플랑크연구회 본부에서 방문연구원을 했다. 프라운호퍼연구회는 당시 집 가까이에 있어서 가서 설명을 듣고는 했다. (※막스플랑크연구회는 전 세계에서 노벨상 수상자 23명을 배출한 노벨상 사관학교로 불린다. 프라운호퍼연구회는 민간의 연구를 돕는 독일 산업화의 요람이다.) 과정이 성실하면 결과에 대해서는 실패의 책임을 묻지 않아야 한다. 이렇게 하면 0.1%의 가능성에도 도전한다. 그렇게 999명이 실패하더라도 1명이 노벨상을 받으면 된다. 우리는 단기 성과 위주, 대통령 임기 5년 안에 성과를 낼 수 있고, 결과 위주의 감사라는 세 가지가 문제점이다. 기초과학연구원(IBS)에서 10년의 연구 기간을 준다지만 최근에 방문해보니 또 (정부 임기에 맞추는 방식으로) 점점 국책 연구소 형태로 관리되고 있다. 이래서는 0.1%의 실패 확률만 돼도 새로운 시도를 안 한다.
-핵심은 그 방식으로 미래 먹거리를 발굴할 수 있느냐다.
△현재의 리더십을 바꿔야 한다. (1960~1970년대)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할 때는 미래 예측이 가능했다. 어느 분야가 어떻게 발전할 거다 하면 거기에 맞춰서 준비하면 됐다. 이제는 한 분야가 워낙 복잡해졌다. 원전만 해도 탈원전, 소형모듈원자로(SMR) 등 세분화된다. 전 세계의 기술 흐름을 알고 그 방향에 맞는 전문가를 뽑아서 써야 한다. 현장에 가까이 있는 쪽에서 너무나 변화가 심하게 일어나고 빠른 반응이 필요하다. 전문가가 결정 권한을 가지고 대통령은 적극적으로 지원해주는 방식이다. 20세기 들어 이렇게 부강해진 나라가 두 곳 있다. 독일과 중국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라이프치히대 물리학 박사였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칭화대 화학공학과 출신이다. 이과의 리더십이 나라를 띄운 것이다.
-규제 권한을 내려놓는 작은 정부가 돼야 한다는 말인가.
△마라톤 뛰어봤나. ‘페이스메이커’가 있다. 4시간을 쓴 풍선을 들고 달리는 사람을 따라 달리면 4시간 안에 들어간다. 그 사람은 3시간 안에 뛸 수 있지만 속도를 조절하며 희생해서 모두가 그 시간 안에 들어가게 만든다. 앞에서 달리지만 실제로는 뒤에서 밀어주는 역할이다. 다음 정부, 대통령도 페이스메이커 리더십을 해야 한다. 산업화 시대는 끝났다. 찾아보니 세계 100대 혁신 기업 가운데 40개가 한국에서 규제 탓에 시작도 할 수 없는 사업이다. 정부가 포지티브(법령에 가능·불가능을 열거하는 방식)에서 네거티브(일단 허용) 방식으로 규제를 풀어야 한다. 정부가 경제를 뒤에서 밀어줘야 한다.
-청년 실업과 고령화로 떨어지는 잠재성장률을 회복하는 청사진도 과학기술인가.
△그렇다. 지금 인구가 감소하고 있다. 그럼 그것도 기술 개발을 통한 신산업으로 생산성 증가와 여성 인력, 고령 인력의 문제점을 메울 수 있다. 그러면서 앞으로 가는 거다. 신산업만이 지금 미래 먹거리와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 그래서 공약 1호로 꺼냈다. 우리가 키울 신산업은 대기업의 낙수 효과가 줄어든 것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구글 모델로 가야 한다. 네이버처럼 안에서 머무는 게 아니라 구글을 통해 다른 사이트로 연결되는 식으로 산업 생태계가 만들어져야 한다. 그래야 글로벌 대기업이 있고, 주위에 건실한 협력 업체가 있고, 그 주위에 자영업자·중소상공인들이 잘살 수 있다.
-일자리 문제는 이중구조가 된 노동시장의 영향도 있다.
△노동 개혁은 제가 지난 2017년부터 말했다. 당시 전 세계의 흐름을 보니 플랫폼 노동자가 나오기 시작했다. ‘긱이코노미(일시적 계약 노동자 선호 경제)’가 그때 나왔다. 그때 비정규직 일자리를 보다 안정적이고 대우받는 형태로 바꾸는 공약을 냈다. 하지만 들어선 문재인 정부는 기득권 노동자들의 기득권을 강화해주는 것으로 갔다. 시장과 싸우면 그게 이길 수가 있나. 그 피해자는 실업에 빠진 청년들과 협력 업체 노동자들이다. 전체 노동자 중 기득권 10%만 보호했다. 제가 집권하면 고용 유연성과 (사회보장 강화를 통한) 안전성을 합치는 노동 개혁을 하겠다.
-개혁에 앞서 차기 정부는 코로나 피해 회복이라는 큰 과제가 있다.
△30조 원을 특별회계를 통해 지원하겠다. 현 정치권은 사안마다 추경에 추경을 한다. 중소기업 회계도 이렇게 안 한다. (지출처가 정해진) 특별회계로 관리하면 포퓰리즘도 막고 목적에 맞게 지원할 수 있다. 차기 정부가 아니라 지금이라도 해야 한다.
-‘미친 집값’과 ‘세금 폭탄’으로 대변되는 부동산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하나.
△현 정부는 공급이 넘친다고 봤고 공급도 공공이 하려 해서 실패했다. 이 정부 사람들은 세상을 모른다. 돈 벌고 월급 줘본 적이 없고 세금을 쓰기만 한 사람들이다. 우선 5년간 250만 가구를 공급하겠다. 수도권은 150만 가구, 지역은 100만 가구다. 이 가운데 100만 가구는 토지임대부, 이 중에 절반은 또 청년 몫이다. 또 ‘세금 폭탄’이라는 말은 신중해야 한다. 세금은 사회에 대한 기여다. 세금 내는 사람들은 존경하지 못할 거면 사회적으로 인정이라도 해야 한다. 보유세와 거래세가 다 높은 상황이다. 거래세를 한시적으로 낮춰서 시장 거래의 길을 터야 한다.
-후보 가운데 가장 먼저 연금 개혁도 약속했다.
△2020년 기준 특수 직역 지원을 위한 연금 충당 부채만 1,045조 원이다. 오는 2055년이 되면 국민연금이 소진돼 현재 33세 청년에게 지급할 연금이 없다. 개인과 가정 파탄 차원을 넘어 국가 공동체가 붕괴될 수 있다. 여야 정치권, 중립적인 시민사회, 연금 재정 전문가로 구성된 개혁추진위원회를 통해 전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개혁 방향을 정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