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상장사 역사상 최대 규모의 횡령 사건 발생으로 새해 증시가 삐걱거리면서 출발했다. 시가총액이 2조 원이 넘는 오스템임플란트에서 1,900억 원 횡령 사건이 발생해 소액주주 2만 명이 날벼락을 맞았고 횡령범이 회삿돈을 빼돌려 주식을 매수한 것으로 추정된 동진쎄미켐의 주가도 급락하면서 연초 시장이 혼란에 빠졌다.
3일 오스템임플란트는 1,880억 원의 업무상 횡령 사고가 발생했다고 금융감독원에 공시했다. 자금관리부장 이 모 씨가 자금을 빼돌린 것으로 규모가 자기자본의 91.8%, 연간 영업이익의 2배다. 회사 자금 담당자인 이 씨는 잔액증명서를 위조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개인 은행 및 증권 계좌로 이체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스템임플란트 측은 “한 직원의 단독 일탈 사건”이라며 “경찰서에 고소장을 제출했으며 자금 회수를 위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코스닥 시가총액 22위인 오스템임플란트의 주식 거래도 이날 즉시 중단됐다. 상장사로서의 존속 가능성을 평가하는 상장 적격성 실질 심사 여부가 결정 날 때까지 주권 매매는 불가능하며 이달 24일 이전에 결론이 나온다. 향후 오스템임플란트의 생사여탈은 ‘회수 가능한 자금 규모’가 쥐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상장폐지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데 무게가 실린다. 서근희 삼성증권 연구원은 “기업의 영속성, 투자자 보호 등을 감안하면 상폐 가능성은 낮다”고 전망했다.
발이 묶인 투자자들은 누구보다 당혹스럽다. 오스템임플란트는 시총 2조 원대 우량 기업으로 최근 임플란트 수출액이 역대 최대를 경신하면서 ‘실적주’로 이목을 끌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주들은 회계 감시 시스템이 작동하는 상장사에서 발생한 이번 사건이 상식적이지 않다고 비판하면서 투명한 소통을 요구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오스템임플란트가 기사회생에 성공해도 예전 주가를 회복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한다. 서 연구원은 “자금 회수가 미비하다고 가정해도 이는 지난해 순이익에 반영되기 때문에 실적 추정치 변동은 미미하다”면서도 “다만 거버넌스 리스크로 인한 할인을 반영해 투자의견을 ‘매수’에서 ‘중립’으로 낮춘다”고 밝혔다.
이달 오스템임플란트가 상장 적격성 실질 심사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와도 가시밭길이 끝났다고 안심하기는 이르다. 오는 3월 나올 감사보고서에서 오스템임플란트가 비적정 감사의견을 받으면서 주권 매매 중단 기간이 장기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한 금융투자 업계 관계자는 “예단하기는 이르지만 회계법인이 해당 건에 관련해 내부관리제도, 회계 리스크 등에 대해 평가한 뒤 비적정 의견이 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 씨는 횡령한 돈으로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업체인 동진쎄미켐의 주식을 매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업계에서는 지난해 10월 동진쎄미켐 지분 1,430억 원(지분율 7.62%)어치를 한 번에 사들여 화제가 된 1977년생 슈퍼개미가 이 씨와 동일 인물인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씨는 주요 주주가 된 지 한 달 만에 주식을 곧바로 현금화했다. 지난 11~12월 이 씨는 6차례에 걸쳐 주식 337만 주를 처분했고 이를 통해 현금 1,112억 원을 챙겼다. 다만 이 씨의 평균 매도 단가(3만 3,025원)는 평균 매수 단가(3만 6,492원)를 밑돌아 117억 원의 손실을 봤다.
횡령 사건에 시장의 시선이 집중되고 투자 심리가 냉각되면서 이날 동진쎄미켐은 8.43% 급락 마감했다. 이날 하루 동진쎄미켐의 거래대금은 4,278억 원으로 국내 종목 중 세 번째로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