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이 연초부터 ‘투쟁’을 전면에 내세우며 오는 15일 서울 도심에서 대규모 집회를 강행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4일 신년사에서 “장기화되는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노동자·민중의 생존은 벼랑으로 내몰리고 있다”며 “불평등과 양극화 심화로 노동자·민중의 고통이 더욱 심해지고 있는 만큼 정권 교체를 넘어 더욱 강력한 투쟁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 위원장은 이날 A4 1장 분량의 신년사에서 ‘투쟁’이라는 단어를 무려 12번이나 사용했다.
새해에도 민주노총의 투쟁 일변도 정책에는 전혀 변화가 없는 것 같다. 민주노총의 이 같은 행보는 역설적으로 민주노총이 처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분석이다.
민주노총은 지난해 한국노총에 제1노총 자리를 내줬다. 3년 만이다. 비정규직과 공공 부문의 노조 가입률이 늘면서 전체 노조 조직률은 14%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한국노총이 대부분 흡수했다. 그럼에도 민주노총은 새해 벽두부터 ‘투쟁’을 전면에 내세우며 경영계와 정부에 날을 바짝 세우고 있다. 노동계에서는 민주노총이 대선을 2개월 앞둔 현시점에서 존재감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투쟁의 강도를 더욱 높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같은 행보가 민주노총에 약이 될까, 독이 될까. 어떤 방향으로든 민주노총에는 변곡점이 될 것이 분명하다.
민주노총을 주축으로 결성된 시민 단체 조직인 전국민중행동은 이날 서울 민주노총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5일 민중 총궐기로 노동자와 농민·빈민·민중의 분노를 표출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들은 불평등 해소, 기득권 양 당 체제 종식, 자주 평등 사회 관철, 집회 자유 보장 등을 요구했다. 노동계에서는 당일 집회에 약 10만 명이 집결할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 2015년의 민중 총궐기에도 13만여 명이 참석했다.
민주노총은 지난해 7월·10월·11월 대규모 집회를 강행해 불법 집회를 막겠다는 정부와 갈등을 빚었다. 올해도 같은 양상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하지만 양 위원장은 이날 신년사에서 “위기와 어려움 속에서 투쟁할 수 있는 조직은 민주노총뿐이다. 더욱 강력한 투쟁으로 실질적 성과와 체제 교체의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힘을 보탰다.
이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대선을 향한 정치적 목소리를 낼 계획이다. 전국민중행동은 이날 “여야 주요 후보들이 앞다퉈 우경화 경쟁을 하고 있다”며 “대선 후보들은 노동자·농민·도시빈민을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민주노총은 5개 진보 정당과 대선 후보 단일화도 논의 중이다.
민주노총의 ‘구호’는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할 보편적인 가치로 향한다. 하지만 이 가치가 당장 실현되지 않는다고, 상대방이 귀를 닫는다고 ‘투쟁’만 반복하는 건 대화가 아니다. 이미 민주노총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감에는 공감과 비판이 섞여 있다. 하루빨리 코로나19 사태가 끝나 손님이 북적이던 시절이 되돌아오기를 기대하는 자영업자에게 집회와 구호는 남의 이야기일 뿐이다. 과거 민주노총의 역할론에 대한 우리 사회의 공감대 회복이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 민주노총이 변화해야 하는 이유다.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복귀는 첫 단추가 될 수 있다. 지난해 말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장은 자체 토론회에서 “총파업 투쟁 계획이 연례 행사처럼 됐다”며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민주노총의 투쟁은 민주노총 스스로에 대한 투쟁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