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고요의 바다' 배두나 "송지안의 얼굴, 제가 잘 표현할 것 같았어요"

'고요의 바다' 배두나 / 사진=넷플릭스 제공

한국 첫 SF 드라마인 ‘고요의 바다’는 기존의 SF물과는 결이 다르다. 기술력이나 과학적인 부분이 부각되기보다 사람의 심리를 따라가는 드라마적 요소가 주가 된다. 그 중심에는 섬세한 감성으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배우 배두나가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고요의 바다’(감독 최항용)는 필수 자원인 물의 고갈로 황폐해진 근미래의 지구에서 특수 임무를 받고 달에 버려진 연구기지로 떠난 정예 대원들의 이야기를 담은 SF 미스터리 스릴러로, 최항용 감독의 졸업 작품이었던 단편을 시리즈화한 것이다. 배두나는 ‘고요의 바다’ 시나리오를 보기 전부터 최 감독의 단편을 보고 단숨에 매료됐다. 그러면서 인물들의 심리를 따라가는 영리한 방법으로 몰입도를 높이는 새로운 SF물이 탄생됐다고 생각했다.


“저는 이미 외국에서 2144년 미래 이야기인 ‘클라우드 아틀라스’라는 SF물을 찍으면서 어마어마한 예산의 차이와 그들이 실제로 구현해 내는 것을 경험해 봤어요. 그래서 그동안 ‘한국 영화 예산으로 SF물을 만드는 것이 가능할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죠. 그런데 최 감독님의 단편을 보고 ‘왠지 이 사람이라면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작품 안에서 제가 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요. 배우의 얼굴과 심리를 따라가는 묘사라면 제가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원작 단편이 시 같은 느낌이었다면 8부작으로 늘어난 시리즈 ‘고요의 바다’는 소설 같았다. 더 커진 예산으로 좀 더 많은 것을 구현해 낼 수 있고, 볼거리가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차별점은 ‘배우들’이었다. 좋은 배우들이 있었기에 더 풍부해졌고, 매력은 배가됐다.




‘클라우드 아틀라스’를 통해 SF물을 경험해 본 것이 ‘고요의 바다’에 큰 도움이 되기도 했다. 리얼리즘이 바탕이 된 일상 연기를 주로 했던 그는 블루 스크린 앞에서 상상력만으로 채워나가야 하는 연기가 낯설게 느껴졌지만, 그런 훈련을 미리 한 덕분에 힘들지 않았다.


“‘고요의 바다’는 이미 많은 것이 구현돼 있었어요. 발해 기지 내부에 갇혀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CG 같은 것이 거의 없기도 했고요. 달 지면에서 연기하는 것 정도가 블루 스크린 앞에서 하는 것이었거든요. 그래서 상대적으로 다른 SF물 보다 연기하기 편했어요.”


“이전에 몸을 쓰는 역할도 많이 해봐서 힘들다는 생각은 안 했어요. 양궁이나 탁구, 격투기도 해보고 몸 고생하는 역할은 진짜 많이 해봤거든요. 바다에서 수중 촬영도 해봐서 멘탈이 강해요. 이번 작품에서 가장 힘들었던 건 무게감이었어요. 우주복이 갖고 있는 무게가 커서 승모근이 발달하더라고요. ‘입다 입다 이제 내가 우주복까지 입는구나’라며 감사한 마음이었어요.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해봐서 좋았습니다.”(웃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마음’이었다. 배두나가 연기한 송지안 박사는 우주 생물학 분야에서 손꼽히는 과학자로, 5년 전 친언니의 죽음의 진실을 밝히고자 발해 기지 프로젝트에 합류한 인물. 감정선으로 시청자들을 따라오게 해야 하는 포지션에 있는 캐릭터였기 때문에 “그걸 놓치면 끝장이다”라는 생각으로 장면마다 공을 들였다.


“송지안이 우주선을 타고 가면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잖아요. 그녀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진행해야 하니까 ‘내가 섬세하게 가져가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강박이 있었어요. 또 송지안은 사회성이나 사교성이 없고 공부만 잘하는 은둔형 외톨이 같은 스타일이라 그런 송지안과 언니와의 관계에 집중했어요.”


“저는 캐릭터를 연구하거나 분석하지 않고 그때그때 영감을 받는 타입이었는데, 최국장(길해연)에게 골드카드를 받는 장면이 첫날 촬영이었거든요. 시간 순서대로 찍었던 게 연기하는 데 큰 도움이 됐죠. 그 신이 너무 충격이고 큰 상처여서 몰입이 바로 됐어요. 송지안의 톤앤매너와 애티튜드, 인간을 바라보는 눈빛이 그 신 하나로 시작됐어요.”


이렇게 기존 SF물의 공식을 따르지 않은 ‘고요의 바다’는 공개된 뒤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렸다. 누군가는 ‘늘어지는 전개 때문에 지루하다’고 했고, 다른 누군가는 ‘긴장감 덕분에 몰입해서 봤다’는 평했다. 배두나는 ‘굉장히 느리게 가는 것 같으면서도 긴장감이 쪼여와 다음 편을 안 볼 수가 없다’는 글을 보고 가장 기분이 좋았다고.


“제가 여백이 있는 시나리오 자체를 좋아해요. 1화에서 자극적인 걸로 시선을 잡고 가는 골든타임이 있어야 한다는 평을 봤는데 우리는 그런 공식을 따라가지 않았어요. ‘고요의 바다’는 고요하지만 안에서 소용돌이가 치는 것을 보는 드라마이지 외부에서 파도가 치는 드라마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다른 관점으로 생각하시면 안 맞으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완성본은 굉장히 만족합니다. 물론 아쉬운 점이 없는 건 아니에요. 모든 제작진들이 ‘이보다 더 잘 나온 작품은 없어’라고 하는 경우는 없을 거예요. 더 여건이 좋았다면 하는 장면도 있지만 우리가 갖고 있는 한정된 시간과 조건 속에서 피 땀 흘려 최선의 작품을 만들어냈다는 것에 만족감이 있습니다.”




1999년도에 데뷔한 배두나는 20여 년간 한국 콘텐츠의 눈부신 발전을 고스란히 체감했다. 그는 한국에서 톱 배우가 된 것은 물론, 미국과 일본, 프랑스까지 무대를 넓히며 성장해 왔다. 전 세계에서 동시에 공개되는 넷플릭스와의 작업 또한 ‘센스8’, ‘페르소나’, ‘킹덤’ 등으로 K-콘텐츠의 위상이 높아지기 전부터 계속됐다.


“해외 일을 해보고 나면 더 ‘내가 한국 영화인으로서 이들과 이런 게 다르구나’ 느끼면서 자아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더라고요. 그런 게 좋았어요. 더 넓게 보게 되는 거죠.”


“데뷔 당시가 한국 영화계 르네상스 시대였어요. 참 운이 좋았죠. 눈부시게 발전하면서 변화도 빨랐고요. 지금으로부터 20년 뒤에 또 달라지겠지만 그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좋았어요. 좋은 쪽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 같아요.”


배두나는 전방위로 활동 무대가 넓혀졌지만 국내 활동도 쉬지 않고 있다. 그 덕분에 국내 팬들은 공백기를 느끼지 않고 있다. 그는 “어느 순간부터 작품에서 내가 몸을 사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많이 부딪히고 더 많은 경험을 하는 것이 결국은 나의 전투력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될 수 있으면 많이 경험치를 쌓으려는 것도 있고, 해외에 나가서 작품을 찍고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작품을 찍고 그런 것이 정말 재밌어요. 해외에서 느끼지 못하는 국내 작품의 재미가 있죠. 제 자신에게 힐링이 되기도 하고요. 농담 한마디도 잘 통하는 우리 문화를 공유하는 현장에서 일하는 것이 재밌고, 나가서 새로운 것을 배우고 경험하는 것도 재밌어요. 그래서 지난 10년 동안 바빴어요. 지금도 장르를 가리거나 선호하는 장르, 역할, 주연이나 조연 딱히 기준으로 두지 않아요. 좋은 작품이 있으면 저예산이든, 독립 영화이든, 블록버스터든 가리지 않고 하고 싶은 것 다할 거예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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