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도 토지세 개혁에 18년 준비… 文정부 부동산세 개편 너무 무리” [청론직설]

[오현환 논설위원의 淸論直說] ◆노영훈 전 한국조세재정연구원 부원장
종부세, 조세형평·부동산 안정 달성 못하고 ‘괴물’로 전락
노무현정부 실패 교훈 잊고 무경험 인사에 시장 못 읽어
주택분 종부세 재산세와 통폐합하고 토지분만 남겨야
초고령화 앞당겨져…조세 및 건강보험 동시 개혁 절실

노영훈 전 한국조세재정연구원 부원장이 5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 정책에 실패한 것은 노무현 정부의 교훈을 잊고 시장을 제대로 읽지 못한데다 인사도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호재 기자



‘세금 폭탄’을 만들어낸 부동산 세제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여야 대선 후보들이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를 인정하고 개선 방안을 내놓고 있지만 혼란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노영훈 전 한국조세재정연구원 부원장은 5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세종대왕이 조세제도의 핵심인 전세(田稅)를 개편하는 데 18년을 준비했다”며 “문재인 정부는 너무 무리하게 부동산 세제를 개편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빨라진 초고령화 시대에 대비해 세원 확충을 위한 조세개혁이 절실하다”면서 주택분 종합부동산세를 폐지해 재산세와 합치고 토지분 종부세만 남기는 방안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그는 종부세법 1조에 조세 형평성 제고와 부동산 가격 안정 등이 규정됐다고 소개하면서 “종부세는 이 같은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괴물이 돼버렸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 2004년 노무현 정부 시절 종부세 도입 논의 당시 연구원 신분으로 종부세 제도를 비판했다가 직위 해제됐지만 2008년 부당 징계 소송을 내 대법원에서 승소했다.


-문재인 정부는 수많은 부동산 정책을 내놓았으나 최악의 실패를 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실패를 시인했고 여당 대선 후보도 고치자는 입장을 내놓았다. 고가 주택자, 저가 주택자, 집을 구하려는 사람 등 모두가 불만을 갖고 있다. 실패의 원인은 세 가지다. 우선 시장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 가격 안정을 목표로 삼았으면 정확히 시장을 진단했어야 했다. 하지만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은 자기네 주장과 산하기관에서 나온 수치가 다른 점도 설명하지 못했다. 두 번째는 과거의 교훈에서 배우지 못했다. 노무현 정부 때도 집값이 오르자 종부세 도입 등 세법 문제를 제일 먼저 꺼냈다. 그래도 안 잡히자 규제를 강화하고 나중에 금융정책을 쓴 뒤에야 안정됐다. 문재인 정부는 이를 교훈으로 삼아 금융 차단막을 먼저 활용했어야 했다. 세 번째는 인사의 문제다. 정치인 출신의 김 전 장관은 관련 경험도 없었지만 신임하는 충신이라는 점만 믿고 그에게 맡긴 게 큰 잘못이다. 청와대 정책실장도 마찬가지였다.





-조세정책은 더욱 신중해야 한다는 뜻인가.


△세종은 조세제도의 핵심인 전세(田稅)에 공법(貢法)을 도입하기 위해 18년 동안 준비했다. 공법은 토지세 징수 때 3년치 수확량을 평균해 1결(1㏊ 내외)당 30두의 백미나 현미를 바치게 하는 것이다. 중국의 고전에서 다양한 과세법의 장단점을 파악한 뒤 토지 비옥도와 풍·흉년에 따라 달라지는 경우들을 염두에 두고 삼남 지방에서 실험 과세도 했다. 현 정부는 600년 전의 고위 정책 결정자들보다 훨씬 질 떨어지게 일했다는 얘기다.


-수십 채의 주택을 소유하는 등 투기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는데.


△자기자본은 굉장히 적지만 차입금과 주택을 담보로 엄청난 레버리지를 일으켰다. 그렇다면 임대차 보호를 위해 관련 지방자치단체나 국세청 등이 세무조사라도 했어야 했다. 그런데 아무 일도 안 했다. 대신 부동산 거래자 대부분을 투기 세력으로 몰아붙였다. 사람 사는 세상에는 수만분의 1 확률로 투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들 때문에 집값이 급등했다고 하기에는 시장이 너무 크다.


-노무현 정부 당시 도입한 종부세에 대해 부분적으로 헌법 불합치 판정이 났었는데.


△2008년 당시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은 헌법의 기본정신인 기본 인권, 행복추구권, 거주 이전의 자유 등의 측면에서 종부세가 수용 정도를 넘는지를 판단했다. 위헌이라고 하는 데는 무리가 있었다. 다만 과세하되 예외 조항이나 조정 장치 등 보완 장치를 두라는 게 헌재 결정의 핵심이었다. 현 정부의 종부세 정책에 대한 위헌 소송 판결은 올해 11월쯤 나올 것이다. 과거 헌법 불합치 결정 기준으로 보면 다주택자에 대한 차등 세율 부분은 빠져나갈 수 없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종부세를 어떻게 보는가.


△1993년 김영삼 정부가 금융실명제를 도입한 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청와대 내에서 부유세 도입 논의를 시작했다. 노무현 정부는 토지를 합산해 누진과세한 종합토지세에다 주택분까지 넣어 종부세로 개편했다. 도입 당시 제대로 만들려면 시행을 늦추고 보완 작업을 하라고 대통령에게 건의했지만 정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현 정부는 노무현 정부의 부실한 종부세에다 다주택자에 대한 차등 세율까지 추가해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버렸다.


-과거에는 다주택자의 임대주택 사업을 지원했는데 문재인 정부는 투기꾼으로 몰아붙였다.


△박근혜 정부는 전세를 제도권 내로 끌어들이려고 임대주택 등록을 하면 당근을 많이 줬다. 다주택자와 임대사업자는 동전의 양면이다. 10채 보유자라면 한 채는 자기가 살고 나머지는 임대한다. 현 정부는 집권 전에 다주택자가 투기꾼이고 공공의 적이라고 했으니 임기 초에 지원을 계속할지 결정했어야 했다. 하지만 상당 기간 인정해오다 중간에 뒤집고 혜택을 모조리 없앴다.


-재분배가 필요하면 보유세가 아니라 소득세로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는데.


△주역에 ‘손상익하(損上益下)’라는 말이 있다. 위에서 손해를 끼쳐 밑에 이익을 준다는 뜻으로 재분배와 관련된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재분배는 소득과 재산으로 구분해서 봐야 한다. 사유재산권을 부정하지 않는 한 재산 재분배는 하기 힘들다. 어느 나라에서든 부동산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한 사례가 많다. 그렇다고 불로소득이라며 정부가 빼앗아갈 수는 없다. 최대한 할 수 있는 게 세금으로 거둬가는 것이다.





-유럽의 선진국들은 개인 소득세율을 높여 재분배를 하는데.


△우리나라는 각종 공제로 근로소득자가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면세점(4인 가족 기준)이 연봉 기준으로 4,000만 원에 가깝다. 개인 소득세율을 높여 재분배를 하기가 쉽지 않다. 자영업자 등의 소득 파악을 위해 세무행정을 강화하지는 않고 손쉽게 근로소득자의 면세점을 올리는 방법으로 조세 형평을 맞추려고 했다. 소득세를 정상화하려면 1975년에 만든 종합소득세를 포함한 조세 전반을 개혁해야 한다. 그런데 조세개혁을 하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소득 재분배를 하려 한다. 건강보험이 대표적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어떤 문제점이 있다는 것인가.


△은퇴하면 제일 무섭게 느껴지는 것이 건보료다. 건보료가 많아 차라리 국민연금과 퉁치고 싶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건보료의 기준이 되는 공시가가 오르고 종합소득(금융소득)이 늘었기 때문이다. 근원적인 문제는 건보가 스스로 지출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적자가 나도 해마다 지출에서 10%가량은 중앙정부가 메워준다. 기금화하지 않아 4대 보험 가운데 유일하게 국회의 예결산 심의도 받지 않는다. 대체로 대선 과정의 전리품 보상 차원에서 임명된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과 보건복지부 소속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가 주요 정책을 결정한다. 감사원이 지난해 건보공단의 재정을 감사해보니 ‘문재인 케어’ 정책이 실시된 후 적자가 급증했다. 최근 5년 동안 연평균 지출 증가율은 무려 8.4%에 이른다. 건보공단은 예전에 해오던 5년 단위 중장기 재정 전망조차 2017년부터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집에는 한국 통계가 없다. 민간의 실손보험을 활용하고 건보의 영역은 기초 부분으로 제한하는 게 바람직하다.


-우리나라 건보가 다른 나라에 비해 잘 만들어졌다는 얘기도 있는데.


△한마디로 돈은 적게 내는데 의료 서비스는 많이 받는다는 것이다. 소시민들에게 국가 재정 문제는 관심 사항이 아니다. 공공 부문은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다. 정부가 적정 분야에서 통제할 것은 해야 하고 시장 실패를 교정해야 할 것은 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을 대체하겠다고 정부가 직접 개입하면 필패한다. 정부가 들어설 때는 정말 내가 시장보다 잘할 수 있는지 깊이 고민해야 한다. 민간에 외주를 줘 규제를 제대로 하는 게 낫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국토보유세 도입을 주장한다.


△국토보유세의 핵심은 토지로부터 발생하는 개발이익에 과세한다는 점과 기본소득 재원 확보를 위해 만드는 목적세라는 점이다. 토지 개발이익을 세원으로 삼는 데는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평가를 고도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러나 특정 목적을 위해 이 재원을 사용하는 방안에는 반대한다. 목적세로 만들면 딴 곳에 쓰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기본소득은 국내외에서 검증되지도 않았다.





-바람직한 세제 개편 방향을 정리한다면.


△우선 주택분 종부세에서 주택 수를 기준으로 세율을 달리하는 부분은 없애야 한다. 가액을 기준으로 한 부분도 가격이 너무 올라 세 부담 상한을 제대로 조정하지 못한다면 폐지하는 게 낫다. 주택분 종부세는 재산세와 합치고 토지분 종부세만 남기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재정 여건이 좋지 않아 조세개혁이 절실히 요구된다. 소득세와 관련해 세정 당국은 탈세·지하경제 등을 철저히 조사해 누수를 막는 각고의 노력을 펼쳐야 한다. 개인 소득세에서는 굉장히 조심스럽게 각종 공제를 줄여 면세점을 낮춰야 한다. 세제 개혁이 없으면 늘어나는 국가 예산을 위한 세원을 확보할 수 없다. 세제에 소득 재분배 요소가 들어가는 게 바람직하지만 본말이 전도되면 꼬리가 몸통을 흔들 수 있다. 영연방 국가 중에 캐나다와 뉴질랜드 등이 성공적인 조세개혁을 단행했다. 총리가 전국을 돌며 타운미팅을 갖고 설득해 개혁했다. 대부분 야당으로 있을 때 ‘섀도캐비닛(예비 내각)’을 구성해 충분히 연구했다. 우리나라는 이런 게 없다.



He is...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중앙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3년부터 한국조세재정연구원에서 25년 동안 연구원과 부원장 등으로 일한 조세 전문가다. 2018년 퇴직 후에도 세제와 국민건강보험 개선 방안 등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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