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사는 사람이 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추산한 지난해 한국 미술시장 전체 규모는 9,157억원으로 집계를 시작한 이래 최대치였다. 그림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이유로 코로나19 이후의 보복소비와 ‘취향 소비’로 정체성을 드러내는 MZ세대의 유입과 함께 미술품을 대체투자처로 보는 ‘아트테크’(미술품 재테크)의 경향이 꼽힌다.
그러다보니 15년째 미술현장을 뛰는 기자에게 ‘어떤 그림을 사야 하는가’라는 질문부터 ‘돈 되는 그림을 추천해 달라’는 주문이 쏟아진다. ‘어디서 사느냐’ ‘얼마면 되느냐’ ‘사 두면 돈이 되느냐’는 어렵고 다채로운 물음들이 결국 하나로 통한다. 그림을 사고 싶다는 얘기다. 2022년 새해 첫 주부터 연재하는 ‘그림이 머니(Money)’는 미술품 구입에 관한 여러 궁금증들을 풀어가기 위해 마련됐다. 미술의 본질적 가치를 중시하되, 재화적 가치가 만들어내는 투자적 속성도 간과할 수 없기에 ‘그림이 뭐니?’라는 근본적 질문과 함께 ‘그림이 돈’이라는 재테크적 분석을 동시에 추구한다.
“그림을 사고 싶은데…”로 시작되는 물음들에 공통되는 첫 질문은 “그림을 사려면 돈이 얼마 정도 있어야 하는가?”다. 속 시원하게 얼른 답부터 얘기하자면 200만 원 이하는 투자용이라기 보다는 ‘장식용 그림’일 뿐이다. 그림으로 돈을 벌겠다는 기대감보다는 200만 원짜리 비싼 벽지를 골랐다 셈 치고 그 만족감을 누리는 게 낫다는 얘기다. 미술투자로 접근한다면 점당 최소 500만 원 이상이어야 하고, 500만 원이라는 것 또한 10년 이상 장기보유할 경우라야 ‘손에 쥐어지는’ 수익성을 거둘 수 있다. 이건 평균치의 정답이다. 500만 원에 산 그림이 1년 만에 3,000만 원으로 ‘벼락 상승’하는 경우도 있지만(실제로 있었지만), 그것은 투자라기 보다는 투기에 가까웠으니 추천하고 싶지 않다. 빨리 오른 만큼 금세 떨어졌기 때문이다. 500만 원 짜리였던 그림이 10년 후에 300만 원 짜리가 되는 일도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물론 존재한다.
우리보다 일찍이 미술시장이 발달한 서구의 미술투자 교과서에서도 대략 200만 원을 기준으로 ‘장식미술(decorative art)’과 ‘순수미술(fine art)’을 가른다. 적어도 3,000~5,000달러 이상, 즉 500만 원 이상은 되어야 본격적인 미술투자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물론 투자 비용이 1,000만 원 이나 3,000만 원 이상인 경우에는 수익 가능성이 더욱 높아진다. 작정하고 미술 투자에 뛰어든 젊은 컬렉터에게 전문 컨설턴트가 가장 많이 추천하는 금액대는 5,000만 원 수준이다. 3년 미만 단기로 수익을 실현하기에 안전한 가격대다. 연봉과 맞먹는 부담스러운 금액인 탓에 혼자 구입하지 않고 5~6명이 함께 일종의 ‘투자 클럽’을 결성해 그림을 사는 일도 드물지 않다. 이것이 발전해 최근 성행하는 ‘미술품 공동구매’로 이어졌다.
맘 먹고 그림 좀 사보려 했는데 한두 달 월급을 다 털어야 하는 ‘500만 원’을 최소한의 비용이라고 하니, 시작부터 찬물 끼얹는 소리를 한 것 같은 걱정이 밀려든다. 그래서 이왕이면 좀 더 적은 금액으로 번듯한 작품을 구입할 방법을 찾아봤다.
작을 소(小), 물건 품(品) ‘소품’, 즉 작은 작품은 저렴하다. 종로구 인사동의 한 유명 화랑은 ‘200만 원 그림전’을 기획해 10년 이상 이어오고 있다. 명성있는 작가에게 특별히 의뢰해 평소 그림보다 작더라도 200만 원에 맞춰 작품을 제작한다. 크기는 작으나 작가의 특성이 분명히 드러나는 원화를 소유할 좋은 기회다. 참신한 기획이 확산돼 요즘은 다른 화랑에서도 이 같은 이벤트성 특별 기획전을 열고 있다.
유명 미술가의 작품을 30만 원 이하에 구입할 기회도 있었다. 지난 2016년 이화여대가 창립 130주년을 기념해 가로·세로 13인치 크기 작품 2,600점을 균일가 26만 원에 판매했다. 단, 작가 이름을 밝히지 않은 ‘블라인드 아트페어’였다. 초고가의 ‘블루칩’ 작가와 대학생 예비작가까지 뒤섞여 있었으니 안목이 중요했다. 강서경·김보희·김종구·노충현·문성식·우순옥·이광호 등 이화여대 교수 및 강사를 지낸 ‘유명 작가’의 작품을 보는 눈만 좋으면 시중가 10분의 1도 안 되는 헐값에 구입할 수 있었다.
다 지나간 전시가 아닌 ‘현재진행형’인 파격 특가 미술품 구입을 찾아 백방으로 수소문한 끝에 단돈 10만 원에 유명 작가 작품을 소장할 수 있는 기막힌 곳을 발견했다. 지난해 첫 선을 보인 ‘10의 n승’이다. 회화는 10×10㎝, 조각은 10×10×10㎝ 크기로 특별 제작해 10만 원부터 판매한다. SNS와 온라인 홈페이지를 통해 작품을 구입할 수 있다. 지난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예정됐던 전시가 줄줄이 취소·연기되자 뜻있는 한 미술관 큐레이터가 “작가가 작업을 지속하게 하기 위한 기회를 마련해 작업의 맥락이 끊어지지 않고, 제작과 유통이 동시에 가능한 플랫폼을 운영하고자” 기획, 제안했다. 아직 블루칩은 아니지만 미술관·비엔날레 등지에서 실력을 검증한 ‘옐로칩’ 이상의 명성있는 작가들이 참여했다. 10배 이상이어도 사둘 법한 작품들이 눈에 띈다. ‘착한 가격’이니 한 점만 살 게 아니라 △사진작업 △구상회화 △ 추상회화 △조각과 설치 등 장르별로 혹은 내용과 주제별로 3~4점을 묶어서 구입하는 ‘큐레이션’을 접목하시라 추천한다. 만약에라도 나중에 되팔 경우 개별 매각도 가능하겠지만 아니라 소장했던 패키지를 한꺼번에 내놓는다면 더욱 매력적일 듯하다. 이 ‘10의 n승’에서는 NFT미술품도 소개하고 있다.
다시 500만 원 이야기로 돌아가자. 500만 원이면 갓 데뷔한 20대 작가의 꽤 큰 그림을 구입할 수 있으며, 30~40대 젊은 작가의 집에 걸기 좋은 그림을 장만할 수도 있다. ‘집에 걸기 좋은 그림’은 전통적인 캔버스 크기로 15호 안팎이며, 가로·세로가 50~60㎝ 내외여서 거실의 소파 뒤나 침대 머리맡에 걸기 적합한 크기로 상정했다. 시장성을 확보한 인기작가라면 500만 원에 소품이나 종이에 그린 드로잉, 판화를 구입할 수 있겠다.
500만 원을 은행에 넣거나 주식에 투자한다면 이자나 배당금이 있겠으나, 미술은 대신 다른 ‘재미’를 준다. 일단 걸어놓고 곁에서 바라보는 ‘눈맛’이 있고, 미술관 전시나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작가가 성장하고 활약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흐뭇함이 있다. 경매 거래를 들여다보고, 아트페어에서 작품값을 살펴보면 이자 못지 않은 짭짤한 맛을 기대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