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상논단] 경제 위기의 징후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나랏빚 늘어 국내 자산 불안한데
美 금리인상에 환율·증시도 위태
부동산·재정 정책 다 실패한 정부
지출 줄이고 시장 정상화 노력을



최근 외환시장이 불안하다. 경상수지도 흑자이고 외환 보유액도 충분한 상황에서 환율이 달러당 1,200원 수준을 웃돌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히 외환 수급의 문제가 아니라 국내 자산의 안전성에도 문제가 있음을 보여준다.


당장 문제가 된 것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의지다. 공급망의 일시적 병목현상으로 물가가 상승하는 경우 통화 당국은 당장 금리를 올리지는 않는다. 미 연준은 의사록에서 양적 축소로 금리 정상화의 속도를 내겠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물가 상승 기대가 형성되면서 물가 문제가 장기적으로 심각해질 것을 우려한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코로나19 사태로 전 세계가 돈을 풀었지만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터키의 저금리 정책 연장이 통화가치 폭락과 물가 폭등을 초래했고 남미와 유럽, 그리고 아시아 등 세계 곳곳에서 물가 상승으로 경제가 휘청거리고 있다. 우리나라도 물가 상승률이 중기 물가 상승률 상한을 넘었다.


미국의 금리 인상이 가시화되면 우리나라와의 금리 차이가 축소돼 자금이 유출되고 환율이 오른다는 분석은 일차원적이다. 올해 미국이 1%까지 기준금리를 올렸을 때 자산 유출을 막을 수 있는 우리나라의 금리 수준이 얼마인가가 더 필요한 질문이다. 과거 금리 차가 역전됐어도 자금 유출이 없었던 점을 보면 국내 자산의 안전성 여부가 중요하다. 현재 상황은 과거와 달리 매우 불안하다.


첫째, 국채 시장은 이미 신뢰를 잃고 있다. 국고채 발행 규모는 2019년 102조 원 정도였으나 2020년에는 174조 5,000억 원, 2021년에는 180조 5,000억 원으로 증가했다. 2022년 발행 계획 규모도 166조 원으로 기준금리 인상과 상관없이 시장 금리는 상승할 것이다. 코로나 시대의 글로벌 유동성 확대로 외국인의 국고채 보유 규모가 2019년 98조 3,000억 원에서 2021년 11월 말 현재 159조 9,000억 원으로 급증해 국고채 수급에 도움을 줬다. 2022년 외국인 순투자 규모가 2019년 외국인 순투자 규모인 12조 원으로 축소되거나 순유출로 전환되면 국고채 시장 자체가 무너질 수도 있다. 문재인 정부가 늘려놓은 국가 채무로 인해 지금부터 재정지출을 동결해도 국가 채무가 늘어나는 상황이 됐다. 국가 신인도가 떨어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고 저성장과 재정 적자로 국채 시장이 불확실한 상황이다. 미국의 금리 인상은 우리나라 국채 시장에 치명적일 수 있다. 이에 따라 환율이 먼저 반응하고 있고, 불안이 현실화하면 환율은 더 오를 가능성이 있다.


둘째, 증권시장의 조정이 불가피하다. 유동성 폭증 현상은 통화 공급 증가뿐 아니라 부동산 가격 및 주가 상승에 따른 신용 창출에 기인한다. 금리 상승으로 신용 창출이 제한되면 증권시장의 예탁금 수준이 2021년 12월 67조 5,000억 원에서 2019년 12월의 27조 원 수준으로 떨어질 수 있다. 증권시장의 수급이 불안정해지면서 외국인 투자 자금이 이탈하면 주가 조정은 불가피하다. 환율 상승과 주가 하락의 악순환이 형성될 수 있다.


셋째, 물가 상승이 악성화하고 있어 기준금리 인상과 경기 위축이 예상된다. 탈원전 및 감원전 정책과 신재생에너지 정책으로 에너지 공급 체제가 고비용 체제로 전환됐다. 유가 상승이 지속될 경우 전기료 및 교통비·공공요금을 비롯한 생활 물가가 더 급등할 수 있다. 공급망의 장기적 불안정으로 물가 상승은 악화한다. 풀린 유동성과 자산 효과로 인한 수요 견인 물가상승도 한몫하면서 물가 상승이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공짜 점심은 없다’라는 것은 철의 법칙이다. 정치인들이 ‘경제는 정치다’라는 구호로 국민을 속일 수는 있어도, 경제는 과학이다. 저금리를 유지하는 터키의 정치와 빚을 안 갚겠다는 남유럽의 정치, 그리고 남미식 반미 사회주의 정치가 결합되면 우리나라에서도 경제 위기가 발생한다. 부동산 정책과 재정 정책, 그리고 가계 부채 및 유동성 관리 정책이 모두 실패했다. 이제 정책 실패의 대가를 치러야 할 때가 왔다. 방만한 재정지출을 정리하고 자산 시장을 정상화하면서 물가를 잡는 길만이 경제 위기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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