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도 하고 마술사도 하다 보니 칭찬을 많이 받고 자부심도 느낄 수 있어 너무 좋습니다. 하루하루가 정말 행복합니다. 세상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9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 강선마을 자택에서 만난 ‘94세 할아버지 마술사’ 조용서 할아버지의 얼굴에는 한 번도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입으로는 ‘행복하다’는 자랑이 끊임없이 나왔다. 구순(九旬)을 훌쩍 넘긴 일반 어르신들에게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 아니었다.
조 할아버지는 만능 엔터테이너다. 어린이집에 있을 때 조 할아버지는 마술사가 된다. 마술 공연을 보며 어린이들이 지르는 환호성과 박수는 그에게 활력 그 자체다. 코로나19 때문에 지금 보지 못하는 게 아쉬울 뿐이다. 그래도 크리스마스 때는 산타로 변신해 아쉬움을 달랜다. 라디오 실버스타 방송단에 있을 때는 DJ로 옷을 갈아입는다. 전통 가요를 틀고 동료 할머니·할아버지와 같이 놀다 보면 온갖 시름이 다 사라진다.
영화도 만든다. 지난 2012년에는 자신의 영화에 대한 열정을 담은 ‘집념’이라는 작품으로, 얼마 전에는 ‘94세 코로나 일기’라는 7분 14초짜리 다큐멘터리 영화로 서울노인영화제에서 입선의 영광을 안기도 했다. 조 할아버지는 “200~300편 출품작 중에 30편만 입선작으로 선정된다”며 “코로나 일기는 내년 상반기 국내 개봉관 등에서 상영이 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젊었을 때부터 이런 재능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먹고사는 데 바빠 이런 것들은 신경조차 쓰지 못했다. 평양에서 태어난 그는 1951년 1·4 후퇴 때 남으로 내려오면서 어머니·누이동생과 생이별했다. 남으로 내려와 제일 먼저 한 일은 입대. 이후 먹고살기 위해 돼지도 키워 보고 자동차 부품 가게도 해보는 등 치열하게 살았지만 모두 실패했다. 결국 대한통운에 취직해 베트남에서 3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7년 등 10년을 뜨거운 열대 국가에서 보냈다. 그는 “먹고살기 위해서는 해외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며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1차 경제 부흥을 일으킨 일꾼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조 할아버지가 삶의 또 다른 의미를 느끼기 시작한 것은 78세 때인 2006년 노인복지관에 나가면서부터다. 복지관에서 관련 교육을 받다 보니 재미가 있었고 한 번 시도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조 할아버지는 “마술사가 된 것은 80세가 넘어 고양실버인력뱅크에서 관련 교육을 받은 후”라며 “영화감독과 DJ 활동을 한 것도 서울노인복지센터에 다니면서부터”라고 덧붙였다.
몸을 움직이다 보니 나쁜 것보다 좋은 것이 더 많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우선 잡념이 없어지고 재미가 생겼다. 게다가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게 되면서 자부심까지 느꼈다. 그가 “하루하루가 즐겁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삶도 긍정적으로 변했다. 조 할아버지는 “한 번은 한 사찰에서 템플스테이를 했는데 스님으로부터 ‘돈 걱정 자식 걱정 말고 오늘 하루를 즐기라’는 말을 들었다”며 “그것이 생활 지침이 되면서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뀌었다”고 전했다.
그는 존경하는 사람이 두 명 있다. 102세 철학자로 널리 알려진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와 95세의 연예인 송해가 주인공이다. “나보다 나이가 더 많은데도 더 왕성한 활동을 하는 것을 보면 존경스럽다”며 “나도 저렇게 일하고 싶다”고 부러움을 표시했다.
가장 행복한 때가 언제인가 하고 물었다. 망설임 없이 ‘지금’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지금 아프기는 하지만 할머니와 함께 60년 넘게 같이 밥 먹고 지낼 수 있다는 게 행복합니다. 봉사를 많이 할 수 있는 것도 즐겁습니다. 이런 시간을 보내는 지금 이 순간이 정말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