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임기가 넉 달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임기가 만료된 주요 공공기관장 자리에 현 정권 측 인사를 앉히려는 조짐이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차기 기관장으로 거론되는 인사들은 청와대 수석과 국가정보원 고위 간부 출신, 과거 문재인 캠프에 몸담았던 여권 정치인 등 면면도 다양하다. 현 정부가 기관장 임명을 강행할 경우 차기 정부 초기부터 정책 추진을 둘러싼 불필요한 갈등이 불거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1일 에너지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마감한 한국에너지공단 신임 이사장 공모에 김제남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이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녹색연합 사무처장과 통합진보당 의원, 정의당 원내수석 부대표 등을 거친 김 전 수석은 문재인 정부 들어 청와대 기후환경비서관과 시민사회수석으로 일해왔다. 특히 정의당 시절 탈핵에너지전환위원회 공동위원장을 지낸 대표적인 ‘탈원전’ 인사로 꼽힌다.
에너지공단은 당초 지난해 10월 초 이사장 공모를 시작했지만 서류 심사 결과 적격자가 없다는 이유로 11월 재공모에 들어갔다. 이를 두고 현 정권이 낙점한 인사를 위한 재공모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김 전 수석은 역시 차기 이사장 공모를 진행 중인 원자력안전위원회 산하기관인 원자력안전재단 이사장 후보군에도 이름을 올린 것으로 전해졌다.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 정부 들어 에너지 관련 기관장에 탈원전 인사들을 내리꽂는 경향이 역력한데 아무리 정권 말이지만 너무 심하다”고 비판했다.
채용 강요와 폭언 등 ‘갑질 논란’으로 김우남 회장이 중도 낙마한 한국마사회도 후임 회장에 여권 인사가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당초 농림축산식품부 차관을 지낸 이재욱 현 마사회 감사가 물망에 올랐지만 최근 선병렬 전 민주당 의원이 유력 후보로 급부상하는 분위기다. 2016년 새정치민주연합 분당 당시 국민의당으로 자리를 옮겼던 그는 공교롭게도 지난해 12월 더불어민주당에 복당했다.
한국공항공사도 현 정부에서 국가정보원 차장을 지낸 인사의 사장 임명을 앞두고 있다. 그는 공군 예비역 장성과 국토교통부 간부 출신들을 제치고 최종 추천돼 검증 절차만 남겨둔 것으로 알려졌다. A 씨가 사장에 임명되면 1993년 문민정부 출범 이후 첫 국정원 출신 공항공사 사장이 된다.
정권 말 잇따른 낙하산 인사에 대해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수석부대표는 “정권 교체기를 틈탄 문재인 정부의 ‘인사 알박기’가 도를 넘었다”며 보은 인사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손 교수는 “정권이 바뀌더라도 현 정책을 계속 유지하도록 하는 장치를 만들어 놓은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며 “차기 정부에도 굉장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