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에 세계 산업계로부터 두 가지 눈길을 끄는 소식이 전해졌다. 미국 애플과 일본 도요타자동차 이야기다. 3일 뉴욕 증시에서 애플 주가가 장중 한때 182.88달러까지 치솟아 세계 최초로 시가총액 3조 달러(약 3,585조 원)를 돌파했다. 2020년 기준 영국의 국내총생산(GDP) 2조 7,077억 달러를 뛰어넘고 우리나라 GDP 1조 6,382억 달러의 두 배에 육박한다. 전 세계 상장 기업 시총의 3.3% 수준이다. 뉴욕타임스는 “애플 시총은 월마트·디즈니·넷플릭스·엑손모빌·코카콜라·모건스탠리·맥도날드·AT&T·보잉·IBM·포드 등 각 업종의 대표 기업을 모두 합친 것보다 많다”고 썼다.
바로 다음 날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미국 언론들은 미국 자동차 업계 대표 주자인 제너럴모터스(GM)의 ‘90년 아성’이 무너졌다고 보도했다. GM은 1931년 포드를 제치고 선두에 올라선 뒤 계속 미국에서 ‘넘버1’ 자리를 지켜왔다. 하지만 지난해 1위를 일본 도요타에 내줬다. 도요타는 전년보다 10.4% 증가한 233만 2,000대를 팔았으나 GM은 12.9%나 줄어든 221만 8,000대 판매에 그쳤다.
두 회사의 성취는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애플은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한 발 앞선 초격차 기술을 아이폰 등에 적용해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했다. 매년 고성능 카메라, 얼굴 인식 기능, 인공지능(AI) 비서 기능 등을 제품에 추가하며 전 세계에서 충성 고객을 끌어모았다. 2007년 애플이 아이폰을 처음 공개했을 때 시가총액은 734억 달러에 불과했다. 도요타는 트레이드마크였던 ‘저스트 인 타임(JIT·Just In Time)’ 생산 방식을 과감히 수정했다. JIT는 차량을 필요한 만큼만 만들어 필요한 재고를 최대한 줄이고 비용을 절감하는 생산 방식이다. 도요타는 이를 1950년대 이래 60여 년 동안 제품 생산의 원칙으로 지켜왔다. 하지만 자동차 산업 환경이 급변하자 유사시에 대비해 부품과 재고를 상시 확보하는 전략으로 전환했다. 시대 변화에 맞춰 수십 년 고수한 원칙을 버리고 변화를 택한 것이다. 이는 전 세계적인 공급망 위기 속에서 빛을 발했다.
글로벌 시장의 생태계는 경쟁에서 지면 죽고 이기면 살아남는 치열한 전쟁터다. 어느 한 나라 또는 한 기업이 특정 산업이나 품목을 영원히 지배할 수는 없다. 조선업은 영국→미국→일본→한국과 중국, 자동차는 영국→미국→독일과 일본, 메모리 반도체는 미국→일본→한국, 섬유는 영국→미국→일본→한국→중국 등으로 옮아갔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 차이가 있을 뿐 경쟁력은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마련이며 이 세상에 영원한 강자는 없다. 이른바 ‘경쟁력 이전의 법칙’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반도체(메모리)·스마트폰·자동차·철강·TV·배터리 등을 수출해서 먹고살고 있다. 이 품목들은 우리가 창조한 것이 아니라 글로벌 전쟁에서 경쟁력을 쟁취한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영원할 수 없다. 2년 전 고동진 전 삼성전자 IM부문장(사장)은 “경쟁사들이 빠르게 따라오고 있다. 졸면 죽는다”고 경고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기술을 선보이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손바뀜이 더욱 빨라질 수 있다. 5년, 10년 후를 내다보며 새로운 먹거리가 될 산업과 제품 발굴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다. 이를 위해서는 연구개발(R&D) 등에 대한 막대한 투자로 초격차 기술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그 분야의 세계 최고 인재 육성과 영입을 병행해야 한다. 여기에는 기업, 정부가 따로일 수 없다. 기업이 앞장서지만 정부도 조세 및 재정 지원 정책으로 그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앞으로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공급망 재편도 빨라질 것이다. 정권을 누가 잡든 차기 정부의 어깨가 그만큼 무겁다. ‘국력 세계 5위(G5) 목표’ ‘잠재성장률 4% 목표’ 등 두루뭉술한 약속만 외치지 말고 ‘어떻게(How)’가 들어간 구체적인 미래 경쟁력 강화 방안을 빨리 마련해야 한다. /shi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