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시에서 ‘기업 분할’을 둘러싼 논란이 거세다. 상장사가 회사를 분할하는 이유는 지주회사를 만들거나 특정 사업부를 독립시켜 경쟁력을 높이는 등 회사의 가치를 키우기 위해서다. 모두 회사의 미래를 위한 긍정적인 판단처럼 보이지만 기업을 쪼개는 방식을 두고 투자자들의 희비가 엇갈린다. 신설된 회사의 주식을 모회사가 전부 소유하는 ‘물적 분할’은 필사적으로 반대해야 할 악재로 인식되는 가운데 신설 회사의 주식을 기존 회사 주주들이 나눠 갖는 ‘인적 분할’은 호재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과연 투자자들의 인식대로 주가가 움직였을까. 기업 분할 사례들을 통해 기업 분할 유형별 주가 추이를 알아봤다.
◇물적 분할은 단기적 악재=12일 서울경제가 에프앤가이드에 의뢰해 지난 2020~2021년 기업 분할을 발표한 기업 94곳의 주가 추이를 조사한 결과 공시 시점부터 한 달 뒤까지는 인적 분할을 택한 기업(11개사)들의 주가 상승률이 12.99%로 압도적으로 높았다. 물적 분할을 택한 기업 84개사의 평균 상승률은 0.8%에 그쳤다. 기간을 더 늘려도 물적 분할과 인적 분할 간의 주가 차이는 좁혀지지 않는다. 분할 공시 한 달 뒤로부터 분할 기일까지의 수익률을 비교했을 때 물적 분할은 7.1%, 인적 분할은 39%를 기록했다.
물적 분할은 기업 입장에서 보면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전략이다. 모회사가 지배력을 잃지 않고 신설 법인의 상장이나 지분 매각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기가 쉽다는 이점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 성장성 있는 사업을 떼내는 경우가 많아 기존 주주들에게는 부정적으로 평가받는다. 예컨대 애플이 유망한 아이폰 사업부만 똑 떼어서 신설 법인을 만들면 기존 주주들은 신설 회사 주식을 받지도 못한 채 기존 회사의 가치만 떨어지는 것을 지켜봐야하는 셈이다. 만도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말 물적 분할을 통해 신설 법인은 부품·자율주행로봇·모빌리티 서비스 등 자율주행 사업을 맡고 존속 법인은 전기차(EV) 솔루션 전문 기업으로 전환했다. 공시 시점부터 한 달간 만도의 주가는 15.94%나 추락했다.
인적 분할을 택한 종목들의 수익률이 더 높았던 것은 개미들의 투자 선택권이 보장된다는 점이 한몫한 것으로 풀이된다. 최민하 삼성증권 연구원은 “인적 분할 방식은 주주들이 존속 및 신설 투자회사의 지분을 동일하게 나눠 갖는 방식으로 주주들에게 투자 선택권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주가에 긍정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인적 분할이 늘 호재로 인식되는 것은 아니다. 경영권 승계에 이용되거나 분할 비율에 따라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요소도 크다. 2020년 분할을 발표한 DL(대림산업)의 경우 주가가 16% 가까이 내렸다. 당시 시장에서는 DL의 분할을 이해욱 대림산업 회장의 지배구조 강화로 해석했고 배당 정책 등 주주 환원 정책에 대해서는 발표하지 않아 소액주주 가치 제고가 미흡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분할 시점부터는 인적 분할이 불리=그러나 물적 분할과 인적 분할의 투자수익률이 뒤집히는 구간도 있다. 분할 기일로부터 한 달 뒤의 수익률을 비교했을 때 인적 분할 종목들의 평균은 마이너스(-6.3%)로 전환됐다. 반면 물적 분할 기업들의 상승률은 6.3%로 치솟았다.
이 같은 변화는 그간 상승장에 대한 차익 실현 매물이 반영된 것이다. 실제로 분할 발표 시점부터 한 달간 급등했던 현대두산인프라코어(29.46%), LG(10.10%), 화승코퍼레이션(2.27%) 등은 분할 기일부터 한 달간 하락세를 보이며 각각 17.4%, 3.69%, 20.92%씩 내렸다. SK텔레콤의 사례도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6월 인적 분할과 액면 분할에 대한 기대감이 선반영되면서 52주 신고가를 기록했지만 신설 법인 상장일로부터 한 달간 0.69% 오르는 데 그치며 정체했다. 당시 하나금융투자는 “단기 인적 분할 이슈가 부각되면서 SK텔레콤 주가가 크게 상승한다면 일정 부분 차익 실현할 것을 권한다”는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장기적으로는 모두 상승…결국 기업가치가 관건=단기적으로 변동성을 자극한다는 측면에서 물적 분할이 투자에 불리하지만 장기적으로 기업 분할은 유형을 가리지 않고 주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분할 발표 시점으로부터 분할 한 달 뒤까지의 주가를 봤을 때 인적 분할 종목들의 평균 상승률이 46.9%로 물적 분할(14.2%)보다 3배가량 높았지만 양쪽 모두 두 자릿수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기업 분할이 수급 측면에서 주가 상승의 모멘텀을 더한다고 분석한다. 강송철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기관투자가의 매도 압력으로 저가 매수 기회가 발생해 이를 발견한 자금이 유입되면서 중장기적 강세를 시현하게 된다”면서 “분사를 통한 경영 독립성 제고, 더 직접적인 인센티브 체계 수립 등으로 펀더멘털 개선을 이끌 수 있다”고 말했다.
주가가 결국 분할 이슈보다는 펀더멘털과 사업 성장성에 따라 움직이며 결국 기업가치에 수렴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원은 “기업 분할이 사업 경쟁력으로 이어진다면 주가가 상승하는 효과가 나타나는 것은 분명하다”면서도 “물적 분할의 경우 분할 발표 이전에 기업가치를 보고 투자한 기존 주주들의 이익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