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철민의 경알못’은 학부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10년 넘게 경제 기사를 썼지만, 여전히 ‘경제를 잘 알지 못해’ 매일매일 공부 중인 기자가 쓰는 경제 관련 콘테츠 입니다.
아랍에미리트(UAE)가 한국이 건설한 바라카 원전을 기반으로 청정수소 생산에 나선다. 반면 우리 정부는 ‘탈원전 도그마’에 갇혀 원전을 활용한 수소생산 방안을 전혀 검토하지 않고 있다.
이 와중에 청와대는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의 원전기술 활용 방안은 내팽겨쳐두고 UAE 측에 ‘수소경제 활성화’ 관련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전문가들은 수소 생산에 원전을 활용할 경우 수소 생산 단가를 절반 이하로 낮출 수 있다고 지적한다. UAE가 한국기업이 건설한 원전으로 수소를 생산하면, 한국이 이를 다시 청정수소 도입 명목으로 한국에 들여오는 ‘촌극’이 벌어질 수 있는 셈이다.
20일 로이터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모하메드 이브라힘 알함마디 UAE원자력공사(ENEC) 대표는 최근 아부다비에서 열린 에너지 콘퍼런스에 참석해 “ENEC는 미래 청정 에너지인 수소생산을 위해 원자력을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며 “바라카 원전 4기(5.6GW규모)가 가동되면 매년 100만톤의 수소 생산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ENEC 대표가 언급한 바라카 원전은 한국수력원자력 등 국내 기업이 건설한 원전으로 지난해 9월 2호기까지 가동됐으며, 나머지 2개 호기도 순차 가동 될 예정이다. ENEC는 58개의 원전을 운영중인 프랑스전력공사(EDF)와 손잡고 원전을 활용한 수소생산 기술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UAE는 이같은 원전을 활용한 수소생산을 기반으로 오는 2030년까지 글로벌 청정수소 시장의 25%가량을 차지한다는 방침이다. UAE는 원유와 천연가스 매장량이 각각 세계 7위에 해당하는 ‘에너지 부국’이지만, 탄소발생이 없는 원전을 기반으로 ‘에너지 정책’ 전환을 꾀하고 있다.
반면 우리 정부는 원전을 활용해 생산되는 수소를 ‘옐로 수소’라고 부르며 원전을 활용한 수소경제 방안을 일절 검토하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옐로수소라는 표현은 ’국적불명’의 네이밍이다. 세계경제포럼 등 해외 주요기구 홈페이지에 따르면 △그레이수소(화석연료에서 생산한 수소) △블루수소(화석연료에서 85~99% 가량의 탄소를 포집해 생산한 수소) △그린수소(신재생을 활용해 생산한 수소)로 수소를 구별해 놓았을 뿐이다. 구글에서 ‘Yellow hydrogen(옐로수소)’를 검색하면 ‘화석연료와 태양광발전을 혼합해 생산된 수소’로 정의되며, 관련 문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정부가 원전을 활용한 수소에 대해 ‘황색 프레임’을 덧씌웠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는 부분이다.
탈원전에 발목이 잡힌 우리정부는 수소경제 활성화를 위해 신재생 강국으로 불리는 호주 등 해외 의존을 높일 수밖에 없다. 정부는 앞서 수소경제 활성화를 위해 그린수소 생산량을 오는 2030년 25만톤에서 2050년 300만톤까지 늘리기로 했지만, 호주 등 해외에서 들여오는 수소가 대부분이다. 정부는 한국 기술로 설치한 신재생 및 수전해 설비를 기반으로 해외에서 수소를 생산해 한국의 친환경선박에 실어 국내에 들여오는 만큼 국내에서 수소를 생산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 전문가들은 해외에 설치된 설비를 활용하는 만큼 ‘에너지 안보’ 문제로 이어질 수 있는데다, 운송 및 생산비 등을 감안하면 경제성도 크게 낮다고 지적한다.
무엇보다 한국은 그린수소 생산에 불리한 기후 및 지형을 갖고 있다. 실제 국내에서는 낮은 경제성 때문에 그린수소 생산을 위한 실증 작업만 한창일뿐, 그린수소를 활용한 시설이 없다. 현재 국내 기술력으로는 신재생에너지를 통해 그린수소를 만들 경우 발전효율은 10%가 채 되지 않는 수준으로 전해졌다. 무엇보다 국내 신재생 설비는 미국이나 호주 등과 달리 ‘규모의 경제’를 갖추지 못한데다 풍력이나 태양광 등의 발전효율도 해외 주요국 대비 낮기 때문에 수소 생산 시 원가가 높을 수밖에 없다.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원전은 신재생 발전을 활용하는 것과 비교해 절반도 안 되는 가격에 수소를 생산할 수 있으며 초고온 가스로를 활용한 수전해 방식 또한 경제성이 높다”며 “무엇보다 기후나 시간대에 따라 발전량이 널뛰기 하는 신재생 대비 24시간 가동이 가능하기 때문에 안정적 수소확보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 같은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16일(현지시간) UAE를 방문해 “한국 정부는 양국 수소협력에 대한 지원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며 UAE 정부도 같은 마음으로 힘써 줄 것이라고 믿는다”며 ‘수소 세일즈’에 나서고 있다.
지난 18일에는 사우디를 방문해 “그린·블루 수소 등 청정수소 생산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사우디와 상호 보완적인 관계로 글로벌 수소경제를 선도할 수 있도록 양국이 긴밀히 협력해 나가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같은 날 문대통령은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와 만나 “한국의 원전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의 경제성과 안전성을 가지고 있다”며 ‘원전 세일즈’에 나서기도 했다.
사우디는 2030년 정도에는 연 400만톤의 수소를 생산한다는 방침이다. 세계 1위 석유 수출국인 사우디는 화석연료에 대한 경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신재생 등 신규 에너지 설비 확충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원전만 하더라도 2032년까지 16기의 원전(총 17.6GW 규모)을 건설한다는 방침이다. 압둘라지즈 빈살만 사우디 에너지 장관은 최근 광업 관련 행사에서 “사우디아라비아는 조만간 소위 ‘그린수소’라 불리는 에너지를 가장 저렴하게 생산하는 국가가 될 것이며 이와 관련한 에너지 전략을 조만간 발표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사우디 또한 24시간 가동 가능한 원전을 활용해 값싼 수소 생산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 세계 최고 원전 기술을 보유한 한국이 국내는 내팽겨쳐둔 채 해외에서 수소 협력망 구축에 매진하는 사이, UAE를 비롯한 중동 국가들은 한국산(産) 원전이 생산한 수소를 바탕으로 ‘글로벌 수소경제 리더’로의 도약을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 국내 원전 기술은 프랑스, 미국, 러시아 등 원전 강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거나 일부 기술은 앞서있다. 국내에서 현재 연구되고 있는 미래 원전 기술은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i-SMR) △소듐냉각고속로(SFR) △초고온가스로(VHTR) △납냉각고속로(LFR) △히트파이프원자로(HPR) 등이다. 한국형 원전(APR1400)이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인데다, 안전성은 크게 높이고 폐기물 처리부담은 크게 낮춘 이들 기술까지 상용화 될 경우 한국의 원전 경쟁력은 경쟁국을 압도할 전망이다.
반면 탈원전 도그마에 빠진 청와대는 미래 에너지 시장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기회를 눈앞에서 놓치고 있는 모습이다. 탈원전이라는 잘못 끼워진 ‘첫 단추’가 국내 에너지 생태계 뿐 아니라 산업 생태계 전반의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것이란 앞선 우려가, 현 정부 집권 말기인 2022년에 빠르게 현실화 되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