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킹메이커' 설경구 “DJ 역할 중압감…가명 쓰자고 했죠”

처음 시나리오선 '김대중' 실명
김운범으로 바꾸고 그나마 안정
목포 연설 장면 스트레스 특히 커
변성현 감독 차기작도 함께 해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는 캐릭터 이름이 ‘김대중’이었습니다. 이름이 주는 무게감이 너무 커 감독에게 실명을 쓰지 말자고 요청했어요. ‘김운범’으로 바꾸고 나니 그나마 부담이 조금 덜어지더군요”


내년이면 데뷔 30주년을 맞는 배우 설경구(55·사진). 2000년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으로 영화계에 배우로서 존재감을 확실하게 각인시킨 후 국내외 영화제에서 연기상 트로피를 숱하게 받았고, 주연작 중 두 편을 천만 관객 영화 반열에 올린 충무로 대표 배우다. 그런 그에게도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역할을 맡는다는 건 큰 부담이었다. 세간에 너무나 잘 알려진 한국 정치의 거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시나리오를 내민 이가 변성현 감독이었다. 2017년 ‘불한당 : 나쁜 놈들의 세상’으로 설경구에게 제2의 배우 인생으로 가는 문을 열어준 변 감독은 차기작으로 정치 드라마를 구상했고, 김 전 대통령 역의 배우로 오로지 설경구만 고집했다. 두 사람의 줄다리기 끝에 결국 감독이 이겼고, 그 결과 영화 팬들은 오는 26일 개봉하는 ‘킹메이커’를 통해 김 전 대통령으로 변신한 설경구를 볼 수 있게 됐다.


설경구는 “감독이 저를 ‘그 역할'로 찍어 놓고는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다른 배우를 추천하기도 했는데 어느 순간 제가 작품을 찍고 있었다”며 “하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봐도 저는 배역을 수락한 적이 없다”고 웃었다. 그 만큼 감독과 배우의 끈끈한 관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불한당’의 촬영·조명·미술·음악· 의상 등 주요 제작진 역시 모두 ‘킹메이커’ 촬영 현장에 합류했다.





설경구는 ‘김대중’이라는 실명을 ‘김운범’으로 바꾸고 익숙한 제작팀이 합류하면서 그나마 마음이 편해졌지만 일부 장면은 지금 다시 생각해도 촬영 당시 스트레스가 생생하게 떠오를 정도라고 했다. 가장 힘들었던 장면으로 ‘목포 연설’을 꼽았다. 설경구는 “영화 속 모든 연설 장면이 힘들었지만 감독이 거듭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목포 연설 장면은 촬영 두 달 전부터 스트레스를 받았을 정도"라며 “CG가 어떻게 덧입혀질지 상상이 잘 되지 않는 상황에서 카메라 움직임을 계산하면서, 설득력 있게 연설을 해야 했다. 그 뿐 아니라 폭염 속에 덥지 않은 척 연기도 해야 했다”고 회상했다. 배우의 정신적·물리적 스트레스에 대한 보상이라고 해야 할까. 목포 연설은 영화의 핵심 장면으로 ‘제대로’ 만들어졌다.


너무 잘 알려진 인물을 연기할 때의 고충도 전했다. 설경구는 “지난 해 개봉한 전작 ‘자산어보’의 정약전은 실존인물이기는 하지만 세간에 알려진 정보가 별로 없어 배우가 캐릭터를 재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았다”며 “그에 비해 김운범은 배우로서 운신의 폭이 너무 좁은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그런 점에서 배우 이선균이 맡은 ‘서창대’ 역이 부러웠다고도 덧붙였다. 서창대는 1960~70년대 정치판에서 ‘선거의 귀재’로 불렸던 엄창록이라는 실존 인물을 모티프로 한 캐릭터다. 오늘날까지 미스터리에 휩싸여 있는 인물이라 배우 입장에서는 연기자로서의 기량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매력이 있다. 다시 말해 변 감독이 설경구에게 연기하기 ‘어려운’ 역을 믿고 맡겼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설경구는 변 감독의 다음 작품 ‘길복순’에도 출연한다. “그냥 계속 함께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분량과 상관 없이 함께 하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요. 또 다른 변성현의 맛이 나올 것 같은 기대감 때문이라고 하면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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