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약·바이오기업이 개발한 신약들이 올해 역대급 흥행을 예고했다. 유한양행(000100)과 한미약품(128940), 대웅제약(069620) 등 연매출 규모가 1조 원이 넘는 대형 제약사들이 지난해 허가 받은 신약으로 처방의약품 시장 영향력 확대에 힘을 쏟을 전망이다. 국산 신약 타이틀과 오랜 기간 축적해 온 영업·마케팅 노하우가 더해지며 시장 돌풍에 성공할 수 있을지 관심을 모은다.
24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제약·바이오기업들은 총 4개의 신약을 배출했다. 유한양행의 표적항암제 ‘렉라자’(성분명 레이저티닙)가 지난해 1월 EGFR(상피세포 성장인자 수용체) 표적항암제 복용 후 T790M 돌연변이가 생긴 국소 진행성 또는 전이성 비소세포폐암 환자에 대한 2상 임상을 근거로 조건부허가를 받으며 2년 넘게 끊겼던 국산 신약의 명맥을 이었다. 유한양행이 2005년 항궤양제 ‘레바넥스’에 이어 두 번째로 배출한 신약이다. 식약처 허가 이후 약 6개월 만에 일사천리로 보험급여 목록에 등재되며 처방권에 진입했다.
2월에는 셀트리온(068270)의 코로나19 항체치료제 ‘렉키로나(성분명 레그단비맙)’가 조건부 허가를 획득하며 바톤을 넘겨받았다. 렉키로나는 코로나19 완치자의 혈액에 존재하는 중화항체 유전자를 선별한 다음 대량 생산이 가능한 숙주 세포에 삽입하고 세포 배양을 통해 대량으로 생산하는 유전자재조합 중화항체 치료제다. 바이오시밀러 개발에 집중하던 셀트리온이 전 세계 세 번째로 상업화에 성공한 코로나19 항체 치료제란 점에서 화제를 모았다. 셀트리온은 이후 코로나19 중등증 및 고위험군 경증 성인 환자 대상의 임상 3상 시험을 완료하며 식약처의 정식 품목허가를 획득했다. 이달 초 중앙방역대책본부 보고에 따르면 렉키로나는 지난 1년간 약 3만 6,900명에게 투약이 이뤄졌다. 먹는 코로나19 치료제 도입 전까지 백신과 함께 감염병 위기 대응에 효과적으로 기여했다는 평가다.
한미약품은 작년 3월 호중구감소증 치료제 ‘롤론티스(성분명 에플라페그라스팀)’의 식약처 허가를 받고 같은 해 11월 처방의약품 시장에 도전장을 냈다. 롤론티스는 바이오의약품의 생체 내 지속성을 최장 월 1회까지 늘려주는 한미약품의 랩스커버리 플랫폼기술이 접목된 첫 바이오신약이다. 항암화학요법을 진행하는 암환자들에게 호중구감소증을 예방하는 용도로 처방된다. 지난 2012년 계약을 체결한 글로벌 파트너사 스펙트럼을 통해 연내 미국식품의약국(FDA) 허가에도 재도전할 전망이다.
대웅제약은 지난해 12월 칼륨 경쟁적 위산분비억제제(P-CAB) 계열 위식도역류질환 치료제 ‘펙수클루(성분명 펙수프라잔)’의 허가를 받으며 국산 신약 34호 타이틀을 획득했다. 지난 2007년 펙수클루 개발에 뛰어든지 14년 만에 거둔 성과다. 대웅제약은 허가 직후 약가신청에 돌입했다. 신속하게 보험급여 등재 절차를 완료하고 상반기 중 발매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대웅제약의 가세로 지난해 국내 제약·바이오업계는 1999년 SK케미칼의 항암제 ‘선플라주’ 허가 이후 역대 가장 많은 신약 배출 기록을 세웠다. 2015년 동화약품의 퀴놀론계 항생제 ‘자보란테’와 함께 동아에스티가 항균제 ‘시벡스트로’ 정제 및 주사제, 당뇨병 치료제 ‘슈가논’ 등을 허가 받았지만, ‘시벡스트로’의 경우 제형만 다른 같은 성분이란 점에서 3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업계에선 단순히 국산 신약 허가건수가 증가한 데 그치지 않고, 상업화 결실이 기대된다는 데 의미를 부여한다. 한때 대다수의 국산 신약들은 처방의약품 시장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30개가 넘는 국산 신약이 등장하는 동안 의미있는 매출을 거둔 제품은 2010년 9월 허가받은 보령제약의 ARB(안지오텐신II수용체차단제) 계열 고혈압 치료제 ‘카나브(성분명 피마사탄)’와 2012년 6월 허가받은 LG화학의 당뇨병 치료제 ‘제미글로(성분명 제미글립틴)’ 2종에 그쳤다.
하지만 최근 국산 신약들의 시장 평가가 달라지고 있다. 보령제약과 LG화학은 단일제 성공에 힘입어 새로운 조합의 복합제를 추가 발매하며 처방 상승세를 지속했다. 보령제약이 카나브 기반으로 선보인 복합제는 △카나브플러스 △듀카브 △투베로 △듀카로 △아카브 등 5종에 이른다. 올해는 듀카브에 이뇨제 성분 히드로클로로티아지드를 결합한 듀카브플러스를 선보일 예정이다. LG화학도 제미글로에 메트포르민 성분을 결합한 복합제 ‘제미메트’로 단일제보다 높은 수익을 올리고 있다.
2019년 3월 발매된 HK이노엔(195940)의 '케이캡'은 지난해 1,096억 원의 원외처방액으로 역대 국산 신약 중 최단 기간 내 연 1,000억 원 이상의 처방실적을 거두는 블록버스터로 등극했다. 단일 제품으로만 연 1,000억 원을 벌어들인 국산 신약은 케이캡이 유일하다. 올해는 대웅제약이 동일 기전으로 작용하는 펙수클루의 발매를 예고하면서 빅매치를 펼칠 예정이다. 대웅제약은 일찌감치 H2 저해제 ‘알비스’와 프로톤펌프억제제(PPI) ‘넥시움’ 등을 판매하며 국내 소화성 궤양제 시장에서 막강한 영업력을 구축하고 있다. 케이캡 공동판매를 맡고 있는 종근당(185750)까지 국내 기업 3사간 치열한 시장 경쟁이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유한양행이 발매한 렉라자의 시장 성과도 큰 관심사다. 렉라자는 미국 얀센과 1조 4,000억 원 규모의 대형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하며 상업화 전부터 높은 관심을 받았다. 계약금과 마일스톤으로 벌어들인 금액은 1,800억 원에 육박한다. 유한양행은 렉라자 처방이 본격적으로 발생하는 올해 매출 목표를 300억 원으로 잡았다. 글로벌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의 ‘타그리소’와 전면승부를 통해 경쟁력을 입증하겠다는 포부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과거 다국적 제약사에서 도입한 신약 판매에 집중하던 국내 기업들이 연구개발 투자를 적극 확대하면서 상업화 결실을 맺고 있다”며 “국산 신약들이 허가 이후 국내외 시장에서 좋은 성과를 내길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