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년간 공들여 쌓은 탑이 한순간에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21일 열린 전국승려대회를 앞두고 만난 한 종교계 원로가 이 같은 심경을 전했다. 불교계가 정부를 상대로 벌이는 대규모 항의 집회가 자칫 종교계 전반의 이미지 추락으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 찬 말이었다.
이 같은 걱정스런 시선에도 조계종은 대규모 전국승려대회를 강행했다. 이날 전국 사찰에서 조계종으로 모여든 승려는 3,500여 명. 전국승려대회가 열린 것은 1994년 서의현 총무원장 3선 저지를 위한 집결 이후 28년 만이다.
불교계가 문제 삼은 것은 문재인 정부의 종교 편향이다. 천주교 신자인 문 대통령은 취임 후 프란치스코 교황과 두 차례 만남을 가졌고, 공식 석상에서 수차례 미사를 드리는 장면이 외부에 공개되는 등 특정 종교에 치우친 행보를 보였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종교 주무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가 천주교 서울대교구 ‘캐럴 캠페인’ 예산을 지원했다는 점도 불교계의 불만을 키웠다. 결정적으로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사찰의 문화재 관람료를 ‘통행세’로 규정하고 사찰을 ‘봉이 김선달’에 비유한 일은 불교계의 불만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이번 전국승려대회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린다. 스님들이 집중 수행하는 동안거 기간이자 코로나19 시국에 무리하게 대회를 강행해 그동안 어렵게 쌓아온 불교의 이미지를 크게 실추했다는 주장이 있다. 한편 정부의 사과를 제대로 받아내지 못한 만큼 이번 기회에 정부의 종교 편향과 불교 폄훼를 뿌리 뽑아야 한다는 주장이 있어 팽팽하게 맞선다. 불교계는 전국승려대회에 이어 오는 2월 대규모 범불교도대회도 예고하고 있다. 적절한 정부 조치를 이끌어낼 때까지 기존 입장을 굽히지 않겠다는 분위기다.
사회적 갈등이 불거질 때마다 불교가 가장 먼저 꺼내왔던 화두는 화쟁(和諍)이다. 화쟁은 대립과 갈등을 봉합해 화합한다는 불교 사상이다. 조계종 총무원장인 원행 스님은 임인년 신년사를 통해 “다름과 차별에 집착하는 갈등과 정쟁은 버리고 불이(不二)와 화쟁의 정신으로 함께 희망을 만들자”고 밝혔다. 새해가 밝았지만 대선을 앞두고 사회적 분열이 심화하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불교계가 갈등의 수단을 내려놓고 몸소 화쟁을 실천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