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비해 미국을 위시한 서방권이 군 병력 투입 등으로 러시아 저지에 나섰다. 특히 24일(현지 시간) 미국은 8,500명의 병력에 동유럽 배치 명령을 내리는 한편 냉전 종식 이후 처음으로 항모타격전단까지 동원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해상 훈련에 돌입했다. 미국과 유럽이 대(對)러시아 연합 전열을 가다듬는 모양새다. 일촉즉발 위기 속에 26일에는 프랑스·독일·우크라이나·러시아 4개국의 ‘노르망디식 회담' 등 파국을 막기 위한 최후 담판도 열린다.
美, 2014년 크림반도 병합 때와 달라
24일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동유럽 지역에 대한 병력 증강 계획을 세우고 있다”며 “미국과 나토는 금융·경제·수출 통제와 함께 우크라이나의 방위력을 높이기 위한 지원을 이어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도 이날 미군 8,500명에게 유럽 배치 준비 태세를 강화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5,000여 명의 해군이 승선한 해리트루먼 항모타격전단의 대서양 해상 훈련도 지시했다.
미국은 군사 대기 조치와 동시에 연합 전선 구축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이날 유럽 지도자들과 군사·경제 제재 방안을 논의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유럽 정상들과 80분간 화상 통화를 한 직후 “미국과 유럽이 러시아 침공 저지에 완전한 의견 일치를 봤다”고 밝혔다. 그간 러시아와의 협상 주도권을 놓고 프랑스 등과 미국 간에 불협화음이 빚어지고 있다는 세간의 문제 제기를 일축한 것이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도 “우크라이나 남동쪽에 전투부대 배치를 고려하고 있다"며 “필요한 조치를 모두 강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나토는 이미 우크라이나 국경에 탱크와 방공망, 정보·감시부대 지원 하에 4,000여 명의 군사를 배치한 상태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지난 2014년 3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합병 때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당시 미국과 유럽은 하루 전까지도 제재 수위를 높이며 러시아와 대립각을 세웠지만 막상 러시아가 크림반도 병합에 나서자 물리적 조치를 외면했다.
러, 초계함 출항…중남미 세력 규합도
러시아는 서방의 군사력 증강을 좌시하지 않겠다며 방위를 강화하고 있다. 25일 러시아는 중국과 아라비아해 서쪽에서 연합 해상훈련을 벌였다. 러시아 측에선 태평양 함대 소속 1만1,000t급 미사일 순양함 '바랴크' 등이 참가했고 중국은 미사일 구축함 '우룸치' 등을 보냈다. 앞서 나토가 동유럽에 전력을 증강한다는 발표가 나온 직후 러시아 발트함대는 곧바로 함대 소속 초계함 2척도 출항시켰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미국과 나토의 군사 활동이 긴장을 높이고 있다"며 대응을 예고했다.
반미 세력 규합에도 적극적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날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전략적 파트너십 원칙과 양국 간 공조 문제를 논의했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협력을 약속한 데 이어 미국의 뒷마당으로 통하는 남미 공략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앞서 13일 세르게이 랴브코프 러시아 외무차관은 협상에 실패할 경우 러시아가 쿠바나 베네수엘라에 군사 인프라를 배치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내의 전쟁 위기가 고조되면서 러시아 경제도 충격을 받고 있다. 러시아 통화인 루블화는 이날 1달러당 79.3루블까지 빠졌다. 달러 대비 루블화 환율이 79루블을 넘은 것은 2020년 11월 이후 처음이다. 유로 대비 루블화 환율도 전날 종가보다 1.8루블 오른 89.7루블을 기록했다.
숄츠 총리, 2월 美와 가스 논의
미국과 독일 간 정상회담도 다음 달에 잡혔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러시아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천연가스 등의 문제를 바이든 대통령과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독일은 노르트스트림2 가스관 신설 등에서 보듯 러시아와 가스 동맹 체제를 구축해왔다. 최근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가 유럽행 가스관을 추가로 잠그는 비상사태에 맞서 카타르로부터 유럽에 가스를 공급하는 방안을 강구해왔다.
이 같은 행보와 별개로 러시아와 서방 간 회담도 계속된다. 26일에는 4개국 간 노르망디식 회담이 열리고 주말에는 러시아와 프랑스 양국 대통령의 전화 회담이 예정돼 있다. 다만 그간 러시아의 침공 가능성을 경고해 왔던 우크라이나 정부는 전쟁 위기감으로 국내외 혼란이 가중되자 당장은 침공 가능성이 없다고 한발 물러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