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통령 선거인가, 지방의원 선거인가

여야의 유력 대선 후보들이 놀이터·주차장 건설 등 동네 개발 공약들을 쏟아내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전국 226개 기초자치단체별로 ‘우리동네 공약’ 시리즈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이 후보는 23~24일 경기도를 돌아다니며 ‘화성행궁 앞 지하주차장 건설’ ‘경찰대 부지에 시민공원 조성’ ‘기흥호수 둘레길 완성’ ‘여주 마을급식소 신설’ 등을 공약했다. 기초의원·자치단체장 선거에서나 나올 법한 공약들을 제시한 셈이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도 ‘아파트 단지별’ 공약을 준비하기 위해 지방의원·당협위원장 등을 통해 의견을 듣고 있다. ‘재개발·재건축을 원하는 아파트’ ‘보육 시설 확충이 필요한 아파트’ ‘펫공원 조성’ 등 주민의 요구를 반영한 맞춤형 공약을 내놓겠다는 것이다.


‘생활 밀착’을 내걸고 국민들의 일상과 관련된 ‘틈새 공약’을 제시하겠다는 취지 자체는 바람직하다. 하지만 특정 동네의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표를 주면 지역 개발 등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하겠다는 식의 포퓰리즘 공약 제시라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역대 최악의 비호감 선거’로 불리는 이번 대선에서 흠집이 많이 난 후보들이 나랏돈을 쌈짓돈처럼 쓰는 선심 공세로 약점을 덮겠다는 발상으로 보인다.


더욱 큰 문제는 한 표라도 더 얻기 위한 ‘마이크로’ 선심 공약은 갈수록 풍성해지는 반면 나라의 미래를 위한 비전 등 ‘매크로’ 정책 공약은 너무 부족하다는 점이다. 미니 공약에 가려 정작 차기 정부가 수행해야 할 국가 과제를 위한 공약들은 보이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지속 가능성 여부가 달린 절체절명의 과제들인 연금·노동 개혁과 국가 부채 축소 방안을 담은 공약은 찾아보기 어렵다. 글로벌 기술·경제 패권 전쟁 속에서 자칫 방심하면 우리는 선진국 문턱에서 미끄러지고 생존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 양대 정당 후보들은 국가 어젠다와 관련된 공약부터 먼저 제시해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