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이하 코심)와 KBS교향악단(KBS향)이 2022년 새 음악감독과 함께 힘찬 항해를 시작했다. 코심은 벨기에 출신의 다비트 라일란트(43), KBS향은 핀란드 출신의 피에타리 잉키넨(42)을 선장으로 맞았다. 라일란트는 프랑스 메스 국립오케스트라, 스위스 로잔 시포니에타의 음악감독이자 독일 뮌헨 심포니 오케스트라 객원 수석 지휘자 등 유럽 무대에서 활약을 펼치고 있다. 잉키넨도 독일 도이치 방송 교향악단과 일본의 재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수석 지휘자로 활동하며 유럽은 물론 아시아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높다. 두 사람 모두 40대의 젊은 에너지로 세계 무대에서 활약해온 만큼 파란 눈의 두 마에스트로가 코심과 KBS향의 음악에 향후 3년간 어떤 변화를 불러올지 관심이 쏠린다.

“음악이 낯선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연주로 보답하겠습니다.”

지난 25일 서울 서초동 국립예술단체 연습동에서 만난 라일란트 감독은 최근 성공리에 마친 취임 연주회를 회상하며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전석 매진’이라는 관심과 공연 후 쏟아진 호평까지. 코심 창단 후 첫 외국인 예술감독을 향한 응원은 뜨거웠고, 그 기대를 이어가야 한다는 책임감 역시 더욱 커졌다. 코심과는 국립오페라단의 ‘코지 판 투테’(2018)와 ‘마하고니 도시의 번영과 몰락’(2019), 교향악축제(2021)로 호흡을 맞춘 바 있다. 세 번의 만남을 통해 받은 코심의 강점은 ‘개방성’이었다. “유럽의 경우, 교향악이나 오페라 둘 중 하나에 특화한 음악을 강점으로 내세우는데 코심은 굉장히 유연하게 공존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새로운 프로젝트에 열려있는 자세를 보면서 개방적이라 느꼈죠.” 지휘자 콩쿠르나 작곡가 양성 프로그램 등 젊은 음악가 발굴에 적극적인 모습도 “함께 성장을 이끌고 싶다”는 의욕을 자극했다.

라일란트는 “오케스트라 전체의 역량이 성장해 있어야 객원 지휘자든 새로운 지휘자를 만났을 때 충분히 좋은 음악을 선보일 수 있다”며 “작은 부분을 수정하면서 장기적으로 최고의 음악을 선보이도록 하는 것이 음악감독의 책임”이라고 자신의 미션을 명확히 했다.

세번의 시즌을 통해서는 하이든과 모차르트로 대표되는 빈 악파, 슈만과 바그너, 베토벤, 브루크너에 이르는 독일의 낭만주의, 베를리오즈와 드뷔시, 라벨 등 19세기 중반과 20세기의 프랑스 음악을 선보인다. 그는 “빈 악파는 오늘날 특화된 전문 앙상블들의 전유물로 여겨지지만, 현대의 교향악단도 이 시기 음악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며 레퍼토리 확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밖에도 한국인 작곡가의 곡을 지속적으로 선보이며 관객과 현대 음악의 거리를 좁혀나가겠다는 계획이다.

최근 코심은 ‘국립’이라는 표현이 들어가도록 명칭 변경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전신이 ‘국립교향악단’인 KBS교향악단이 공개적으로 반발하며 ‘자격 논란’에 불을 댕긴 상황이다. 라일란트는 구체적인 언급은 피하면서도 “국립이라는 말이 갖는 상징성과 의미는 무거운 것이고, 책임을 동반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며 “국립 오케스트라에 걸맞은 프로젝트나 활동을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세계 여러 나라를 돌며 음악으로 연주자, 관객과 호흡하고 교감해 온 그는 ‘문화권의 특수성을 잊게 하는 보편성’을 음악의 힘으로 꼽았다. 그러면서 “첫 외국인 감독이라는 수식어 대신 그저 오케스트라와 열정을 공유하는 한 명의 음악인이 되겠다”고 전했다.

“악단의 음악적 발전을 꾀하면서 차세대 음악가 양성에도 힘쓰겠습니다.” 잉키넨은 26일 여의도 KBS 아트홀에서 열린 취임 기자 간담회에서 ‘더 다양한 무대’와 ‘더 많은 만남’을 강조했다. 세 번의 시즌을 통해 지휘 공연 횟수를 늘리고, 국내 주요 도시를 돌며 대면으로 더 많은 관객을 만나겠다는 것이다. KBS향과 2006년 객원 지휘로 처음 인연을 맺은 그는 “2009년과 2020년 총 세 번의 만남을 통해 음색과 변화에 능숙한 악단의 연주에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며 “더 많은 사람이 이들의 진면목을 발견하고 팬이 되어 동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내게 주어진 사명감”이라고 말했다.

3년간 고전시대 레퍼토리부터 현대음악에 이르는 다양한 시대의 작품을 무대에 올린다. 그 첫해인 올해는 자신의 고국 핀란드 레퍼토리를 대거 선보인다. 12회의 정기연주회 중 6회 포디엄에 오르는 잉키넨은 핀란드 거장 시벨리우스 작품 중 그동안 국내에선 접하기 힘들었던 ‘카렐리아 서곡’과 ‘레민카이넨 모음곡’, ‘합창교향곡 쿨레르보’ 등을 들려준다. 악단은 레퍼토리를 확대하고 관객은 ‘정통파가 들려주는 진짜 핀란드 음악’을 만끽할 기회다.

잉키넨은 미래를 위한 투자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음악 아카데미 개설’이다. 그는 “나는 운 좋게 어릴 때부터 다양한 음악 교육의 기회를 얻은 편”이라며 “한국에서 이런 기회를 만들어 차세대 음악가, 특히 지휘자 발굴에 힘쓰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 프로젝트에서는 정명훈, 드리트리 키타옌코, 요엘 레비 등 KBS향을 거쳐 간 역대 지휘자들을 ‘명예 지휘자’로 위촉해 이들의 공연 참여와 아카데미 출강을 도모할 계획이다.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며 네트워킹을 구축해온 만큼 해외 유수 악단과의 교류도 기대를 모은다. 잉키넨은 “한국과 유럽 작곡가에 공동으로 곡을 의뢰해 양쪽 오케스트라가 합동으로 공연을 펼치는 프로젝트를 하고 싶다”고 전했다. 코로나 상황이 진정될 경우 2024년께 해외 투어도 구상하고 있다.

다양한 나라와 문화, 그 속의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음악이 지닌 위대함 느낀다는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음악은 사람을 통합할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언어죠. 이 공통의 언어로 소통하면서 ‘평화’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북한에서도요.” 잉키넨은 오는 2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29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취임 연주 무대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