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까지…정부의 도넘은 가격개입 논란

‘용도별 차등가격제’ 도입 추진에 생산자 반발
28일 공운위서 낙농진흥회 공공기관 지정 논의
필수공공재 아닌 우유시장에 과도한 개입 지적
“뜻대로 안되면 公기관 지정” 잘못된 선례 우려
지나친 정부 지원 의존도 개선 필요성도 제기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우유를 고르는 시민의 모습. /연합뉴스

정부가 낙농 업계의 반대에도 낙농진흥회를 공공기관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밀어붙인다. 원유 가격 결정 체계 개편이 낙농 업계의 반대에 가로막히자 생산자 단체의 영향력을 무력화하겠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전기·가스와 같은 사회간접자본도 아닌 우유 가격 결정에 정부가 인위적으로 개입하는 데 대한 부당성과 함께 ‘정부 뜻대로 안 되면 공공기관으로 만든다’는 잘못된 선례를 남길 수 있다고 우려한다.


26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28일 공공기관운영위원회를 열고 낙농진흥회 공공기관 지정 방안을 논의한다.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정부 지원액이 총 수입액의 2분의 1을 초과하는 기관은 공공기관으로 지정할 수 있다. 낙농진흥회는 수입의 약 89%를 정부 지원에 의존하고 있어 공공기관 지정 요건을 충족한다.


정부가 낙농진흥회를 공공기관으로 지정하려는 것은 원유 가격 결정 구조를 개편하기 위한 조치의 일환이다. 정부는 원유를 음용유와 가공유로 분류하고 가격을 달리 책정하는 ‘용도별 차등가격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생산자·수요자·학계·소비자 대표 등이 참여하는 낙농진흥회 이사회 의결이 필요하지만 생산자 측의 반대로 이사회가 열리지 않는 상황이다.


정부가 우유 시장의 가격 결정권을 갖게 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통상 공공 부문이 시장에 개입하는 경우는 전기·수도·가스 등 생활에 꼭 필요해 과도한 수익을 내서는 안 되는 필수 공공재에 한정되기 때문이다. 해외에서도 정부가 공공기관을 통해 우유 시장에 개입하는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정부는 공공기관의 경영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한다는 입장이지만 신재생에너지 확대와 누적된 전기료 동결 등으로 대규모 적자에 내몰린 한국전력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인위적 가격 개입의 부작용이 우려된다.


정부 뜻대로 안 되면 공공기관으로 만들어버리는 그릇된 선례를 남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낙농진흥회를 공공기관으로 보기도 어렵고 방향성 측면에서도 부적절하다”며 “정부가 시장의 가격을 통제하려 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다만 낙농진흥회의 정부 지원 의존도가 89%에 달할 만큼 낙농 업계의 자립도가 낮은 것은 문제점으로 꼽힌다. 농식품부의 한 관계자는 “매년 정부가 가격 차 보전에 336억 원, 급식 지원에 400억 원을 지급하는 데도 낙농진흥회에 공공성을 요구할 수 없는 구조는 불합리하다”며 “낙농진흥회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의사 결정 구조가 합리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